지금, 타운에서 홀로서기
커피 할인으로 시작하는 상쾌한 아침! 유니언타운 1층엔 베이커리 카페 <설리번>이 자리하고 있다. 유럽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바게트를 살 수 있다. 샤랄라 원피스에 바구니 달린 자전거를 타고 가는 건 아니더라도, 엘리베이터만 타면 갓 구운 빵을 살 수 있다는 건 분명 엄청난 행복이다.
먹을 거 이야기는 차치하고(오늘의 주제는 음식이 아니다), 오늘은 강남에서 외부 미팅이 있는 날.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신경 써서 준비를 했다.
여담이지만 <업플로>에는 방마다 전신 거울이 있어서 OOTD를 체크하기에 정말 편하다. 전신거울은 로망 속에는 늘 있지만, 어쩐지 내 돈 주고 사진 않게 되는 가구 중 하나였는데 이미 갖춰져 있다니 어째 돈 굳은 기분이다.
타운에서 나오자마자 보이는 건 2, 9호선 당산역의 3번 출구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 3초 컷. 폭우가 쏟아져도 우산없이 뛰어 들어올 수 있을 정도의 거리다. 흔히 자취방이 한강 뷰라고 하면 건물 사이로 한강 물이 한 방울 정도 보이고, 역세권이라고 하면 전력질주로 5분은 뛰어야 역에 도착하기 마련인데 <업플로>는 정말로 뻥 뚫린 한강 뷰에 초역세권이다. 이제는 더 포기할 것도 없는 N포 세대인 내가 이런 방에 살 수 있다고는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다.
9호선을 타고 신논현역까지 한 번에 가는데 겨우 18분. 핫 뉴스를 좀 보다보니 어느새 도착해 역을 지나칠 뻔했다. 이정도 거리면 맛있는 점심을 먹으러도 올 수 있을 것 같다.
오후엔 합정에서 친구들과의 약속이 있었다. 업플로하우스에서 여유롭게 나와 2호선을 탔다. 당산에서 합정은 딱 한 정거장. 집에서 노래를 틀고 출발해도 한 곡이 채 끝나기 전에 도착한다. 잠실에 살 때는 약속보다 한 시간씩 일찍 나와도 마음이 조급했는데 여기서는 다리만 건너면 합정이다.
합정엔 참 맛집도, 분위기있는 가게들도 많다. 오늘 방문한 곳은 밖에서부터 풍부한 재즈 사운드가 발길을 끄는 싱글몰트바, ‘리슨’이다.
켠 듯 안 켠 듯한 어두운 조명 아래로 분위기있는 재즈가 흐른다. 입구의 바에서부터 하이앤드 빈티지 스타일의 대형 탄노이 스피커가 시선을 빼앗았다. 베이스가 좋은 스피커가 쿵쿵 울리며 분위기에 녹아들게 만들었다. 오늘은 날씨가 선선하니 테라스 자리에 앉아도 좋겠다. 특히 밤 공기를 마시며 마시는 싱글몰트 위스키는 깔끔하면서도 시원한 맛이 일품이다. 그 시원한 맛이 한 잔으로는 조금 섭섭해서 세 잔이나 마신 건 안비밀이다.
술이 들어가고, 적당히 취기도 올랐겠다. 기분과 분위기에 친구들과 느긋하게 양화대교를 건넜다. 강 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오는 게 좋았다. 업플로까지 천천히 걸어도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밤의 양화대교가 한강에 비쳐 일렁였다.
벌써 며칠 째 본가가 전혀 그립지 않았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지만, 그때를 아쉬워하기엔 이 삶이 너무 좋다. 이토록 독립적이고 쾌적한 삶. 줄곧 꿈 꿔왔던 삶이 이제 막 완성되었다.
인간은 생각보다 주변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삭막한 사무실에 굳이 굳이 화분 하나를 가져다 놓게 되는 이유도 바로 그런 것이다. 아무리 도시형 인간이라도 한 줌의 초록은 필요한 법이니까. 시야에 자연이 있고 없고는 우리의 감정, 생각, 스트레스 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부모님과 함께 사는 것을 힘겨워하면서도 집을 떠날 수 없었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내가 살던 곳이 ‘살기 좋은 송파’였기 때문이었다. 잠실 인근에 살면서 양옆으로 석촌호수와 올림픽공원을 누리는 것만으로도 삶의 질이 +3 되기 때문에 그걸 쉽게 포기할 수가 없었다. 부모님 집이 아니고서야 내가 이런 좋은 환경을누릴 수 없다는 걸 너무 잘 알았으니까.
그러니 이렇게 한강 바로 옆에 살게 되는 행운을 가지게 된 건 기적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나에게 굴러들어온 이 기적을 소중히, 아주 아깝게 대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