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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언타운 Jul 22. 2020

#2 우리는 혼자이기도, 함께이기도

지금, 타운에서 홀로서기

- 손으로 꾸려나가는 ‘나의 


 이제 막 독립했다지만 사실 독립에 관해서라면 할 말이 많다. 그동안 나의 삶은 가족주의적이고 가부장적인 부모님의 생활방식 틈에 끼여 제대로 모양조차 갖추지 못했다. 내 집에 어떤 가구를 놓고 싶은지, 어떤 향기가 나고, 어떤 분위기이면 좋을지 한 번도 구체적으로 고민해보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그저 막연하게 로망만 가득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업플로하우스에 입주 상담을 받으러 간 날 친절한 하우스 매니저님께서 여러 개의 방을 보여주셨다. 방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분위기’를 컨셉으로 각기 다른 컬러에 각기 다른 소품들로 꾸며져 있었다. 



비오는 날의 먹구름 방


 첫번 째 방은 다크 그레이 톤의 깔끔하고 심플한 느낌의 방. 장대비가 쏟아지는 날, 뽀송한 이불 속에서 빗소리를 듣던 날을 재현한 방이라고 했다. 전체적으로 먹구름같은 색의 방이지만, 어둡다는 생각보다 안정감이 먼저 느껴졌다. 포근한 나만의 동굴을 갖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방이었다.



빛나는 아침 햇살의 방


 두번 째 방은 코랄 톤의 화사한 방이었다. 상쾌한 아침, 창으로 들어오는 아침 햇살을 모티브로 꾸며져 들어가자마자 기분이 좋아졌다. 매일 아침을 설레는 에너지로 시작하고 싶은 사람에게 잘 어울리는 방!


노을 지는 갈대밭의 방

 세번 째 방, 611호가 내가 선택한 아이보리/우드 톤의 차분한 방이다. 611호를 보자마자 내가 그동안 추상적으로만 꿈꿔왔던 ‘나의 방’이 구체화되었다. 딱 이런 분위기에, 이런 가구, 이렇게 해가 반쯤 드는 방이 딱 내가 원했던 나만의 방이었다. 


초라한 나으 짐
이제부터 한 달 간, 611호 넌 내 거야!

 

 다른 여러 선택지가 더 있었지만 이미 마음은 611호로 굳어졌다. 곧바로 계약을 하고 매니저님께 추가적인 설명들을 들었다. 냉장고도 서랍장도 쉐어이지만 나의 구역이 확보되어 있고, 원룸에 살았다면 절대 쓸 수 없었을 널찍한 주방과 라운지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었다. 세탁기며 청소기, 냉장고처럼 비싸고 커다란 집기들부터 밥솥, 전자레인지, 냄비나 그릇, 컵 같은 작은 집기들까지. 나의 취향을 미리 알고 있던 것처럼 모든 것들이 잘 정돈되어 있었다.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초강력 청소기!

  

 이미 갖춰져 있는 것들 위로 차곡차곡 나의 삶을 쌓아나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곳은 나에게 딱 알맞다. 

 ‘외부 게스트 출입은 카운터에 말씀하시고 한시적으로만 가능합니다.’


 업플로하우스에 처음 입주한 날, 이곳이 부모님도 들어올 수 없는 ‘나의 집’이라는 걸 깨달았다. 부모님으로부터, 이전의 생활로부터의 온전한 분리는 새롭게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을 주었다.


 손으로 직접  삶을 꾸려나간다는 업플로하우스에서는 서툴지만 가능하다



-우리는 느슨하게 연결된 존재들


 참 아이러니한 삶이다. 분명 막 입주했을 때까지만 해도 온전히 혼자만의 삶이 시작되었다는 것에 환호성을 질렀는데, 막상 정말 혼자가 되었다고 느끼는 순간 곧바로 외로워졌다. 갑자기 본가에 대한 향수 아닌 향수가 솟구치고 코 끝이 찡해지면서 마음이 센치해졌다.


 나의 물건들로만 가득 채워진 방이 좋으면서도 고독하게 느껴지는 건 참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은 대체 왜 함께일 때면 혼자이고 싶다가도 정말 혼자가 되면 외로워지는가. 괜스레 울적해진 마음에 잠이 오질 않았다.


 그런 생각에 쓸쓸히 라운지로 나갔을 때, 테이블 구석에 작은 바구니가 눈에 들어왔다. 하우스에 지내는 사람들, 잠시 머물다 가는 사람들이 간단한 요기거리를 나누는 상자였다.


따뜻한 차와 다정한 한 마디

 

 누가 두고 간지도 모르는 이국의 차 한 잔에 우리는 ‘느슨하게 연결된 존재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지도 모를 사람에게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눈다는 건,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면서도 따스한 마음은 건넬 수 있는 사이이지 않을까. 그런 사람들과 업플로하우스에 함께 살아간다. 그 느슨한 연결이 주는 안락함에 들쭉날쭉하던 마음도 어느새 차분해졌다. 


 때마침 일과를 마친 하우스의 사람들이 하나 둘 라운지로 모여들었다. 602호의 나무 깎는 쉐프님, 703호에 사는 회사 동료 디자이너분, 8층 호스텔에 머무는사진 작가님, 709호의 여성분. 편한 옷만큼 주고 받는 말들도 자연스러웠다. 


 때마침 602호에 사는 쉐프님이 개발 중인 신 메뉴를 시식해보겠느냐 물었고, 먹을 거라면 빼는 일이 없는 한국인들이 모두 OK를 외쳤다. 602호 쉐프님이 요리를 하는 동안 회사 동료인 703호님이 입주 기념으로 와인을 선물해주자, 너도 나도 방에 가서 무언가를 바리바리 싸들고 왔다. 사진작가님이 주신 바디샤워부터, 709호 분이 주신 우드 향의 향초까지. 대책없이 퍼주는 이웃들에 둘러쌓여 고독이니 외로움 따위는 싹 잊혀졌다.


감사하고 과분한 입주 선물
쉐프는 쉐프...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굴소스 파스타

 

쉐프님의 엔다이브 샐러드와 파스타에 선물받은 달콤한 와인 한 병까지 곁들여 완벽하고도 완벽한 첫 날밤.



-따로 같이


 거실을 공유하지만 각자의 방이 있기에 우리는 따뜻하고 싶은 만큼만 따뜻할 수 있다. 거리를 유지하기에 더욱 다정한 사람들은 함께 설거지를 하고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내일 일찍 일어나는 사람들끼리 지하 1층에 있는 <업핏>에서 아침 운동을 하자고 약속 아닌 약속을 했다. 느슨한 관계만큼 느슨한 약속이었지만 덕분에 내일에 대한 기대가 20% 올라갔다. (운동은 커녕 늦잠   안비밀)


혼자만의 밤

 

 고요한 혼자만의 시간, 선물받은 초를 켜놓으니 방안에도 온기가 가득했다.

 우리는 혼자이기도, 함께이기도 해야한다. 이 모순적인 문장이 유니언타운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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