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인을 친구로 만들어주는 위스키
스코틀랜드 증류소 투어 중 기억에 오래 남는 투어는 발베니 증류소 투어다. 인상 깊었던 장면들도 많고, 여운이 남는 감정들을 많이 느꼈기 때문이다. 특히 투어객들과 정이 들어 더 특별했다.
발베니 증류소에서는 투어객들끼리 아이스브레이킹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서 투어 내내 보다 편하게 서로를 사귈 수 있다. 편안한 라운지에 앉으면 따뜻한 티를 내어주고 각자 소개하는 시간을 갖는다. 함께한 투어객들은 오크셔 부부, 홀랜드 부자, 미국 커플, 이렇게 6명이었다. 유난히 날 귀여워해 주시던 오크셔 아주머니 외에도(네일아트, 플랫 구두, 제스처, 영어 발음을 특히 좋아해 주셨다.) 다들 성격이 좋아서, 투어 이후에 테이스팅이 끝나고서도 다음 팀이 올 때까지 이야기가 계속되었다. 볼 키스로 작별인사를 하며 아쉬워하는 우리를 보며, 가이드 찰리가 한 말이 공감되는 하루였다.
"위스키는 세계를 다 모으고 함께하게 하고 친구로 만들어주죠!"
가이드 찰리가 다른 증류소는 어디를 가보았냐고 물어봐서, 어제 멕켈란을 갔고, 굉장히 현대적인 증류소의 모습에 놀랐다고 답했다. 그러자 찰리는
"pooohhh~,(야유 같은 소리) 그게 멕켈란이 추구하는 바죠.
돈을 펑펑 쓰는 거요."
라고 반응했다. 무슨 연유인지 모르겠지만, 멕켈란과 반대인 점이 참 많은 발베니가 더 애정이 갔고, 찰리의 반응마저도 합당하고 저런 반응의 원천인 자부심과 역사가 멋있어 보이기까지 했다.
멕켈란 투어 다음날이어서 더더욱 반대되는 발베니의 특징들이 눈에 들어왔다.
첫째, 발베니는 전통적인 것을 중요시한다. 대기업에 인수되지 않고 가족경영으로 계속 운영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만큼 오래된 근속연수의 직원 개개인을 아끼는 듯하다. 직원들 사진과 소개가 곳곳에 있고, 각자의 의견을 반영하여 새롭고 도전적인 위스키를 출시하기도 한다. 최근 전설적인 인물 발베니 몰트 마스터 데이비드 스튜어트 후계자로 젊은 여성 켈시 멕케치니가 선정되었고 그녀의 새로운 시도의 위스키가 한국 팝업 때 선보이기도 했다.(발베니 12-더 스위트 토스트 오브 아메리칸 오크) 한 세대 이상을 근속하며 발베니 전통을 이끌어간 데이비드 스튜어트와 그의 후계자가 견습생으로 함께하는 이 시기에 발베니를 방문하게 되어 느낌이 오묘했다.
둘째, 사람이 위스키에게 주는 영향을 크게 생각한다. 인건비가 비싸기 때문에 많은 증류소들이 사람을 더 이상 쓰지 않는 생산과정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발베니는 핸드몰팅하기, 석탄 태우기, 오크통 만들기 부분에서는 사람의 힘을 고집하며, 자유자재로 다양하게 만들어낼 수 있음에 자부심을 가진다. 특히, 직접 쿠퍼들이 오크통을 보완하는 작업현장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전문기술자 아우라의 상징인 단단한 체형의 쿠퍼들이 쉴 새 없이 반복적이지만 철저히 절제되고 완벽한 동작으로 오크통을 생산하는 모습에서, 전문성, 열정, 자부심이 느껴졌다. 실제로 쿠퍼가 되기 위해서는 수년간의 도제수업을 받아야 하고, 여느 전문직업보다 연봉마저도 센 직업이라고 한다.
셋째, 넓은 숲 속 부지 속 증류소임을 자랑한다. 증류하기 최적의 자연환경임이 틀림없다. 투어를 하면서 레인지로버를 타고 이동을 해야 할 정도로 부지가 넓은데, 오크통이 보관된 창고 앞을 바람을 일으키며 지나자, 가이드가 "우리가 방금 이 창고 안 위스키들의 온도를 바꾸었어!"라고 농담을 던졌다.
증류소 투어에서 가장 좋아하는 웨어하우스 투어. 발베니 웨어하우스 투어는 좀 더 특별하다. 왜냐하면 웨어하우스에서 보관되고 있는 오크통에서 바로 퍼내어 시음을 하고 마음에 들면 작은 유리병(그래도 250ml나 한다)에 직접 담아 가져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병당 80파운드 정도) 라벨도 직접 쓰면 된다. 당연히 캐스크 넘버, 바틀 넘버도 알 수 있어서 100% 프라이빗 CS 위스키다. 아메리칸 버번 13년 산(54.9%), 리필 버번 15년 산(56.6%), 쉐리 13년 산(62%) 이렇게 3가지 오크통에서 위스키를 가져왔다. 쉐리 13년 산은 62%나 되는데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고, 부드럽고 달콤했던 기억이 강렬하다.
또한, 여기서 우리는 'Copper dog'를 만나볼 수 있다. 진짜 강아지가 아니고, (^^) 위스키 오크통에서 시음을 해볼 때 사용하는 대형 나무 스포이드(?)이다. 직접 병입 할 때도 쿠퍼독을 사용하는데, 중세시대 무기 같기도 하고, 간지(?)가 나서 매우 탐이 났다.
모든 투어가 종료되면, 다시 처음 만났던 장소로 돌아온다. 커다란 테이스팅 룸에 앉아 본격적인 시음이 시작된다. single barrel 12년 산, caribbean cask 14년 산, Doublewood 13년 산, Doublewood 17년 산, Portwood 21년 산 총 5잔이 준비된다. 희귀한 라인업은 아니라서 실망할 순 있지만, 얘기가 계속되고, 질문을 하다 보면, 가이드 찰리가 설명을 위해서 혹은 수다쟁이 열정 투어객의 새로운 경험을 위해서, 찬장에서 희귀 바틀을 꺼낸다. 처음에는 Doublewood 25년 산 한정판을 꺼내 주었고, Week of Peat(발베니는 보통 피트를 사용하지 않지만, 증류소가 쉬는 1주일 동안 피트로 위스키를 생산해 한정판을 선보이곤 한다.)를 설명해주기 위해 피트 발베니도 시음하게 해 주었고, 마지막 클라이맥스로 심지어 유통되지 않는 병에 담긴 sherry cask CS 36년 산을 선보였다.
발베니는 엠버서더 제도를 운영하는데, 증류소 직원, 가이드, 세계 곳곳 발베니 홍보대사들이 지명되며 적극적인 SNS 활동도 한다. 가이드 찰리도 엠버서더여서, 인스타 친구를 맺고, 좋아요와 댓글로 아직까지 소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