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악!'
4년 전 R을 만나러 하와이에 왔을 때 놀라웠던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 으뜸은 '바퀴벌레'였다.
R 혼자 살고 있던 때라 한국 원룸같이 자그마한 방에서 지냈는데 화장실은 바깥에 있었고 다른 세입자들과 함께 사용해야 하는 공용 화장실 겸 샤워장이었다. 변기 하나, 샤워부스 하나, 세면대 하나 있는 화장실이었는데 생각보다 다른 세입자들과 시간이 겹치지 않아서 나름 편안하게 사용했다. 하지만 그 작은 화장실에 상주하며 살고 있는 존재들이 있었는데 크기도 곧 새끼 쥐만큼 커질 것 같은 대왕 바퀴벌레들이었다.
샤워를 다 마치고 몸의 물기를 닦고 있었는데 슬리퍼 신은 발가락 사이로 뭐가 툭 떨어지지 않겠는가..
별다른 생각 없이 뭐지? 하고 고개를 내려 발가락을 봤을 때 발을 털어내며 소리를 질렀고 이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집에 있던 R이 이 소리를 듣고 바깥에 있는 화장실 문 앞까지 와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었다.
'여기에서 살게 되면 어떨 것 같아?'
하와이로 이사 가기 전 가끔 R은 이런 질문을 했다. 그럴 때마다 내 대답은 늘 같았다.
다른 건 다 괜찮아. 수많은 대왕 바퀴벌레들만 걱정될 뿐이야.
물론 정말 다양한 벌레와 곤충들이 있지만 그것들 때문에 소지를 지르거나 두려움에 떨진 않는다. 특히 모기도 정말 많아서 현관문도 최대한 적게 열고 재빠르게 닫는다. 이상하게도 윗집 중국인 관리자 부부가 여행하느라 집을 비웠던 기간에 우리 집에 모기가 너무 많아져서 곤욕을 치른 적도 있다. 그들이 여행에서 돌아온 후 모기들은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사라졌다. 그들의 피가 더 모기 취향이라서 모기가 다 윗집으로 올라가나보다 라는 말을 R과 몇 번 했었다.
집 안에 들끓은 집개미들도 이젠 그냥 룸메이트들 같다. 개미 군단이 복실이의 사료팩에 침투해서 족히 수 백 마리 되는 녀석들을 대학살해야 했을 때 빼곤 나름 이 집에서 함께 공존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도 그들이 귀엽진 않다.
하와이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R의 아침을 준비하려고 이른 시간에 일어나서 아직은 어두운 주방을 밝히려 불을 켰더니 새끼손가락 한 마디 정도 되는 바퀴벌레 한 마리가 싱크대 하수구에서 기어 나오고 있지 않겠는가..
그날 이후로 집에 있는 하수구 구멍은 잠들기 전 다 막아버리고 잠자리에 들고 있다.
그럼에도 바퀴벌레는 꾸준히 불특정 한 간격으로 한 마리씩 출현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른 아침시간. R의 아침을 챙겨주고 복실이를 안고 R과 마주 보고 앉아 아침 새소리를 들으며 R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었다.
'탁!'
그러다 약간 단단하면서도 가벼운 게 떨어지는 소리가 오른쪽에서 들려왔다.
'오오우후오오!!!!!!'
숨을 거의 못 쉴 것 같이 놀라서 말도 나오질 않고 고릴라 같은 괴성을 지르면서 R에게 오른쪽을 가리켰다. 깜짝 놀란 R은 내 손가락을 따라 오른쪽을 봤지만 아무것도 못 봤는지 '왜 왜!?'만 반복할 뿐이었고, 정확하게 바닥을 가리키며 '바퀴벌레!!'라고 절규했다.
정확히는 대왕 바퀴벌레. 영화 <조의 아파트>에서 나오는 그 날아다니는 대왕 바퀴벌레.
R은 자신의 슬리퍼로 세게 내리쳤고 묵사발이 된 대왕 바퀴벌레를 휴지로 감싸 변기통에 버렸다.
그날 아침부터 며칠간 공포와 충격으로 집안 곳곳을 예의주시하기도 했다. 도대체 그 대왕 바퀴벌레가 어떤 경로로 우리 집까지 들어올 수 있었는가 미스터리였기 때문에 더 무서웠다. 그래서 집안 곳곳을 살펴보며 납득이 될만한 경로를 찾아보려 애썼지만 인간의 시각으로는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대왕 바퀴벌레 이후로도 여전히 불특정 한 간격으로 바퀴벌레가 출현하고 있지만 그저 새끼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피라미일 뿐. 최악의 기준선을 높여 준 대왕 바퀴벌레 때문에 소리 지르지 않고 잡을 수 있게 됐다.
미안. 너희랑은 같이 못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