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기랑 건조기 사용료도 포함해야 돼.'
매월 고정 지출 금액을 추정해 보려 이것저것 더해보다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R이 말해준다.
맞다. 쿼터동전 25센트만 가능한 세탁기와 건조기를 공용 세탁실에서 사용해야 한다.
미국 영화에서 자주 보던 장면이지만 낯설기도 한, 세탁기와 건조기가 여러 대 있는 빨래방을 이용하는 사람들. 그 문화를 직접 경험하고 있자니 불편하고 달갑진 않다.
일단. 세탁기와 건조기를 한 번 사용할 때마다 사용료를 지불해야 하니 최대한 많은 빨랫감들을 때려 넣고 사용하는 게 이득이다. 그 말인 즉, 비슷한 색깔이나 비슷한 종류의 옷들끼리 세탁하는 건 꿈도 못 꿀일 이라는 것.
매주 목요일은 빨래하는 날이다. 그럼 적어도 한 달에 4번은 빨래를 해야 하고 추가적으로 침대 시트나 부가적인 것들을 빨아야 할 때 한 두 번 횟수가 추가된다. 세탁기는 1.5달러, 건조기는 2달러. 매달 15~20달러는 세탁비용으로 지출해야 한다.
물론 한국에서도 세탁기를 사용하려면 전기세와 수도세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공짜로 빨래를 하는 건 아니지만, 세탁을 할 때마다 25센트 동전을 넣는 것처럼 어떤 행위를 할 때마다 지출되는 금액이 시각화되어 버리니 비싸고 불필요하게 지출되는 돈처럼 느껴진다. 우리 집만 사용하는 것도 아니고 이 거대한 집에 살고 있는 5 가구 모두가 사용하는 공용 기기라서 위생은 저 먼 우주에 있을 세탁기, 건조기를 돈 주고 사용하려니 더 거부감이 드는 것 같다. 그래서 내 속옷만이라도 손빨래를 하는 중이다.
우리나라도 가정집에서 건조기 사용하는 비중이 조금씩 늘고 있지만 빨래를 건조할 땐 건조대를 사용하는 게 자연스러웠던 나로서는 미국의 건조기 문화가 이해가지 않았는데, 공용 세탁실이나 빨래방을 이용하는 게 익숙한 미국에서는 뜨거운 열로 옷을 소독하는 개념으로 건조기 사용이 발달된 걸까? 이런 생각도 해봤다.
개인 주택이 많은 미국에서는 빨랫대나 건조대를 사용해서 마당에 빨래 너는 것이 미관상 좋지 않고 환경미화를 해친다는 이유로 벌금을 내야 하는 주도 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건조기 사용을 하게 됐을 텐데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든다. 옷가지들을 주기적으로 뜨거운 열로 가하게 되면 손상이 더 빨라질 텐데 그럼 옷의 수명도 줄어드는 게 아닐까. 물론 미국은 건조기 사용가능한 옷으로 대부분 생산하겠지만 그럼에도 옷의 수명에는 득 될 것은 없어 보인다. 2년도 채 안 된 R의 홈웨어들이 여기저기 구멍이 쉽게 생기는 걸 보면.
내 시간을 들여 빨래를 건조대에 너는 노동을 하는 대신 돈을 지불하고 편리하게 건조기가 빨래를 말려주면 그 순간은 어떤 이득을 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길게 보면 여러모로 소비를 부추기는 방식인 것 같다.
일상의 사소한 부분에서 미국은 자본주의의 끝판왕이라는 말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사소한 부분에서 느끼는 거라 더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아참, 이 거대한 집의 공용 세탁실을 가려면 동굴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세탁기나 건조기를 작동시키려고 3분 정도 동굴에 있어야 할 때, 동굴 끝 어둠 속 어딘가에서 쥐가 튀어나오는 상상을 하게 된다. 아직까지 동굴 속 공용 세탁실에서 쥐를 본 적은 없지만 쥐가 나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심난한 상태다. 그래도 대왕 바퀴벌레에 이어 쥐까지 보고 싶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