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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포케 Nov 26. 2023

자기야 영수증 좀 봐줄래?

추석 1

  하와이로 이사 오기 전 한국에서 생활 한복을 여러 벌 사고 싶었다. 타국에서 한복 입을 일이 종종 있겠지. 명절만 해도 그렇지 않은 가. 그런데 여러 벌은 무슨, 생활 한복도 가격이 만만찮아서 한 벌만 겨우 사서 커다란 캐리어의 가장 위쪽에 고이 접어 가져왔다.


  2주의 한 번은 장 보러 가는 날. 마침 장 보는 날이 추석이 있는 주 목요일이라 노란색 반팔 저고리를 걸치고 청록색 치마에는 심플한 주황색 노리개도 달았다. 댕기 머리도 땋아봤다.

  사실 한복 입고 장 보러 가기 며칠 전부터 기분이 들떴다. R에게는 티 내지 않았다. 

  그렇게 한껏 명절 분위기를 내고 마트 4곳을 다녔는데 나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마침 현미를 사야 해서 아마존에서 괜찮은 가격의 현미를 주문하려 했는데, 잠깐 나는 코스트코 멤버십이 있잖아? 코스트코에서 가격확인 해본 후 구매해도 늦지 않으니 이번에 장 보러 갈 때 확인 해 볼까? 

  그리곤 코스트코에서 아마존보다 저렴한 현미를 발견했고 휘둥그레진 눈으로 R에게 25파운드짜리 현미도 사가자고 했다. 그 순간 얼마나 스스로 대견하던지.

  코스트코에서 만족스러운 쇼핑을 끝내고 H마트로 향했다.


  나는 떡을 참 좋아한다. 특히 인절미. 하지만 하와이에 온 후로 세일하는 떡국 떡을 사서 떡볶이를 해 먹을 때 빼곤 떡을 못 먹었다. H마트 한켠에는 떡과 소량포장한 간편 음식들을 판매하는데 언젠가 떡 가격을 보고 화들짝 놀라 고개를 휙 돌려 계산대로 향했다.

  한국 떡집에서 판매하는 떡 반 팩에 6달러 정도 되니 떡을 사도 어디 아까워서 먹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추석에는 떡을 살 수 있는 명분이 있으니 마트에 갔을 때 송편이 있으면 사야겠다는 마음으로 갔는데 송편이 딱 한 팩만 남아 있는 게 아닌가?

  운명의 데스트니!

  마지막 송편을 집어 들고 R을 보며 환하게 웃었고 신나는 마음으로 카트에 담았다.


  H마트는 한국 동네 마트처럼 매주 다른 품목들을 세일 판매하는데, 몇 달 전 세일 때 샀던 진라면 한 박스를 다 먹어서 이번에 세일하는 신라면 블랙 4개입 멀티팩을 샀다. 

  좋아하는 라면 중 하나가 신라면이라 즐겨 먹지만 신라면 블랙은 아직 못 먹어 봤다. 그냥 신라면보다 가격은 비싼데 매운 걸 좋아하는 내 입맛에는 안 맞을 것 같아서 시도도 안 해본 거다. 그런데 이번 주 세일 전단지를 보던 R은 신라면 블랙이 세일 품목이라며 사고 싶어 하는 눈치인 것 같아서 인생 첫 신라면 블랙을 구매했다.

  세일할 때만 사는 몇몇 품목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라면이다. 한국 브랜드 제품들은 다 비싼 편이라서 제 돈 주고 사면 꼭 낭비하는 느낌 때문에 일주일마다 달라지는 세일 품목을 꼼꼼히 살펴본다.

  드디어 떡도 샀겠다 즐거운 마음으로 장바구니를 트렁크에 싣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니 벌써 저녁시간이 다 됐고 R과 저녁을 함께 먹은 후 영수증 정리를 했다.

  정리 안 하고 밀린 영수증이 쌓여있어서 당일 영수증을 가계부에 기재하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그리곤 드디어 마지막 영수증인 H마트 영수증을 기재하고 있는데 이게 뭐람?


  '자기야 여기 영수증 마지막에 있는 게 뭔데 이렇게 비싸지?'

  영수증에는 다 영어로 제품명이 적혀 있어서 어떤 제품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아무리 그래도 우린 12.99달러 되는 제품을 사질 않았는데?

  '신라면 블랙..인데?'

  으잉?? 그게 무슨.. 말이야?

  보통은 H마트에서 계산 후 그 자리에서 영수증을 확인한다. 예전에 세일품목이 정가 가격으로 계산된 적이 있어서 그날 이후로는 매번 확인을 했는데 한 동안 오계산 없이 잘 처리되길래 이 날은 확인을 안 한 거다.

  시간은 벌써 저녁 9시 30분경. 밤 10시까지 영업하는 H마트를 가기에는 늦은 시간. R에게 마트에 전화 걸어서 물어보는 게 좋겠다고 했고 전화 연결이 되어 지금 상황을 설명하니 수화기 너머로 무언갈 물어본다.

  '멤버십 카드 영수증에 찍힌 거 맞니?'


  셀프 계산대가 없는 H마트에서는 계산대에서 캐셔분이 물품들 바코드를 찍고 있을 때, 고객이 멤버십 카드에 있는 바코드를 기계에 직접 찍어야 한다. 그렇게 멤버십카드가 제대로 인식되면 '띠로링' 알림음이 들린다. 그리곤 출력된 영수증에는 내 멤버십 번호가 함께 보여야 적립금도 적립되고 세일 품목도 세일가격으로 책정이 된다. 그런데 영수증을 확인해 보니 멤버십 번호가 안 보인다..? 

  직원분이 말씀하시길 멤버십카드 바코드와 제품 바코드가 동시에 입력되면 멤버십카드가 인식이 안 될 때가 있기 때문에 확인을 잘해야 한다고 하셨다.

  몇몇 품목은 멤버십 회원들에게만 세일가격으로 판매되기도 하는데 신라면 블랙이 그중 하나였던 거다. 신라면 블랙과 멤버십카드, 영수증, 결제 카드를 가져오면 세일가격으로 정정해 주겠다고 하셔서 다음 날 R이 수업 마친 후 집 오는 길에 마트를 들리기로 했다.


  라면 4팩의 정가격이 12.99달러라니..?


  다음 날 R이 마트에 들렀을 때 직원분께서 다시 한번 알려주셨다고 한다. 멤버십 카드가 잘 인식될 수 있도록 캐셔분이 제품 바코드를 찍기 전에 멤버십 카드 먼저 찍는 게 확실하다고.


  라면 가격에 제대로 혼난 후 다짐했다. 역시 라면은 세일할 때만 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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