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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포케 Nov 26. 2023

내가 고객센터에 문의해 볼게

추석 2

  '내가 고객센터에 문의해 볼게.'

  어떻게 된 일인고 하니 추석이 있던 주 목요일, H마트를 끝으로 바로 집으로 간 게 아니었다.

  얼마 전 독감 백신을 접종한 R을 따라 나도 백신 접종을 하기 위해 월마트에 들렸었다. 그런데 내 보험이 뭔가 잘못 됐는지 우리를 담당했던 약국 직원이 보험사 고객센터로 문의해보겠다고 한다.

  대체 무슨 일이람.


  담당 직원이 말하길 보험회사에서 내 정보를 찾을 수가 없고 했다. R이 여름방학 동안 정규직 근무를 했기 때문에 나를 R의 가족 자격으로 직장에 보험 신청을 할 수 있었다. R의 직장에 관계 증명 서류를 사본으로 남겨야 하기 때문에 증명서류로 우리의 결혼 증명서와 내 SSN 카드를 제출했고, 복잡한 인적 사항이랄 것도 없어서 이름, 생년월일, 주소지 정도가 기재되어 있을 건데 도대체 어떤 부분이 잘 못돼서 독감 백신 접종을 받기 위해서 한 시간 넘게 기다려야 한단 말인가.


  상황이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뭔가 잘 못 된 건지 약국 내 직원들끼리 내 상황에 대해 한참을 얘기하더니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기다리는 동안 뭐라도 해야 효율적일 것 같아서 R이 약국에서 기다리고 나는 카트를 끌고 사야 할 물건들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돌아왔을 땐 R이 누군가와 통화 중이었는데 보험회사였다. 

  약국 직원도 보험사와 한참 통화하더니 이번엔 R이다. 상황이 전혀 해결되지 않았으니 R까지 직접 통화하고 있는 거겠지. R이 보험사 고객센터 상담원에 내 정보를 줬고 내 상황에 대해 뭐가 잘못됐는지 알아볼 테니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R은 그 긴 대기 수화음을 들으며 상담원이 해결책을 가지고 돌아오길 바랐다.

  

  '에? 갑자기 전화가 끊겼어!'

  이 말과 함께 손목시계를 확인 한 R은 무슨 상황인지 알겠다는 듯 깊은 탄식을 하며 말했다. 

  '5시가 넘어서 끊겼나 봐. 고객센터가 5시까지 거든.'


  'Amazing America!'


  이 상황에서 짜증내면 달라지는 게 뭐가 있을까. 그렇지만 보험회사 욕을 안 했다는 건 아니다. H마트에서 떡도 사서 기분도 좋은데 짜증 낸다고 달라질 것 없는 상황에서 기분을 망치고 싶진 않았다.

  다음 날은 R이 오후까지 수업이 있어서 다음 주 월요일에 보험사에 다시 전화 걸어보기로 했다.

  혹시라도 보험사 고객센터에서 금요일에 전화가 다시 걸려올지 모른다는 기대를 걸어봤지만 역시 헛된 기대였다. 바랄 걸 바라야지.


  '자기야 고객센터에 전화했을 때 예상 대기시간 안내 안 해줬어?'

  월요일 오후 12시 20분경 고객센터에 전화 건 후 1시간 20분 정도 경과한 시점에 R에게 한 질문이다. 예상 대기시간이 50분이라고 안내했다는데 R의 스피커 폰으로 들리는 대기음은 지칠 줄 모르고 계속 흘러나온다. 이런 미국의 시스템이 익숙한 R은 핸드폰을 거치대에 올려놓고 대기음을 들으면서 공부한다. 나는 경쾌한 척하는 대기음을 피해 침대방으로 도망갔다. 대기음을 거의 2시간 되도록 듣고 있으면 정신이 아득해진다. 

  아마도 거의 4시경이었던 것 같다. R이 누군가와 얘기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5분 정도 되는 상담을 끝마친 후 우리는 멍청한 실수를 한 범인이 누군지 알게 되었다.

  보험회사 잘못이라고 생각했는데 R의 직장에서 보험회사로 내 정보를 넘길 때 직장 쪽에서 내 생년월일을 잘 못 기재해서 보험회사 쪽으로 넘어갔다는 거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우리 보험이 10월 1일 자로 끝났다는 것..


  R이 새 학기를 시작하면서 직장에서 더 이상 정규직으로 일할 수 없기 때문에 알바처럼 가끔 출근하는 방식으로 바꿨는데 그럼 정규직으로 혜택 받는 것들은 다 사라진다. 그래서 우리 보험이 이번 10월 1일에 끝난 거다. 


  '으악! 나는 저번 주 목요일에 독감 백신 접종을 꼭 해야 했어!'

  여름 방학 동안 R의 급여에서 무려 7% 정도를 보험료로 지불해야 했다. 그런데 보험처리로 백신을 무료 접종받을 수 있는 혜택도 못 받고 백신을 정가격으로 지불해야 하다니! 

  하 속상해.


  나는 며칠 후에 정가격을 지불 한 독감 백신 접종을 했고, R에게는 이 상황을 병원에 따져 물을 수 없는지 물어봤지만 이미 보험도 끝났기 때문에 달라질 상황이 없다고 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이 황당한 상황을 겪게 될까. 지레 걱정하진 않지만 이런 어이없는 상황이 또 생길 걸 대비해서라도 영어를 더 적극적으로 배워야겠다. 


  아참 엄마에게 이 상황을 얘기할 때 내 보험이 끝났다는 얘기는 못 했다. 의료비도 비싼 나라에서 당신 딸의 의료보험이 한 동안 없다는 걸 알면 걱정할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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