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도 있는 언어

나를 있게 한 모든 것들

by 에포케

'오, 제목 짱인데?'


'베티 스미스'라는 작가의 자전적 소설 제목이다.

하라는 건 하지 않는 나 답게 책을 멀리했다.(ㅋㅋ)

정말 그랬다. 전교생 120명이 전부인 고등학교의 도서관 책장은 교실과 독서실의 경계를 구분하는 칸막이 역할 도 했는데, 책의 종류가 그리 많지도 않았고 독서가 취미가 아닌 나는 별 감흥도 없었다.

어느 날, 자습시간에 너무 할 게 없어 마지못해 여백의 미를 뽐내는 책꽂이를 서성이며 재미있어 보이는 제목의 책을 찾았다. 그러던 중 만난 '나를 있게 한 모든 것들' 참 멋진 제목이라고 생각했다.

돌이켜 보면 소설책은 흥미롭게 곧잘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생생한 묘사에 큰 매력을 느꼈던 것 같다.

무심한 듯 늘어서 있는 문장 한 줄 한 줄 읽을 때마다 '어떻게 이런 표현을 할 수 있지?'

작가들의 표현력이 신기하고 참 멋지게 느꼈다.


이 책을 읽으며 미국의 브루클린이라는 지명을 처음 알게 됐고, 작가의 어린 시절 자라온 도시의 가난하고 서민적 삶을 조명하는 묘사가 많았음에도 그런 이미지 보단 그리워지는 느낌.

책을 통해 생전 처음 알게 된 도시가 괜스레 그리워질 수 있던 건, 작가의 어린 시절 삶을 글로 담아낸 것처럼 내 어린 시절 동네와 추억이 책 속의 문장과 섞여 떠올라서였을까.

물론 20세기 초에 태어난 작가의 어린 시절은 20세기 말에 태어난 내 어린 시절 분위기와 차이가 있겠지만.

분명 이 책을 완독 했는데, 읽으며 종종 웃었고 괜스레 마음이 따뜻해졌던 느낌만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 이 책을 다시 읽고 싶다는 마음이 꾸준히 있었는데 작년 말에야 중고책으로 구매해 읽고 있다.


그 해의 베스트셀러라고 소개되거나 누군가로부터 추천받은 또는 필독 도서가 아닌 책 제목에 끌려 우연히 읽게 된 경험은 나에게 있어서 성취감과 주체성을 형성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아주 사소한 것일지 몰라도 스스로 한 선택과 그 선택이 주는 즐거움을 경험했고 가장 결정적인 건 독서가 이리도 흥미로울 수 있다는 것.


선택에 대한 성취감보다 책임감만 상대적으로 높은 요즘.

조심스럽게 발을 딛으려 마음 쓰다 보니 그럴수록 들여다보게 되는 건 나의 내면.

'그래서 그게 네가 원하는 거야?'

자꾸 물으며 선택을 번복하는 시간들.


어쩌면 선택이 나에게 책임감보다 성취감을 먼저 맛볼 수 있게 했던 건, 청개구리 같은 내게 배움의 즐거움을 주고 싶어서였을까. '모두 그렇게 하니까!'는 나를 움직이게 할만한 타당한 이유가 되지 못했고, 그런 식으로 공부와 규칙만 강요하는 학교의 분위기는 더더욱 버티기 어려운 곳이었다.

이렇게 공부와 배움에 대해 오해만 쌓아가는 나를 지켜보던 기회는 안쓰러웠는지 선택을 통해 배움의 기쁨과 성취감을 조금씩 보여줬고, 이제는 책임감과 무게를 보여주기 시작했다는 생각.


쓰디쓰게만 느껴지는 시기에 나를 찾아가는 과정은.. 감내하고픈 마음이 솟아나서 뛰어드는 게 아니다.

'순탄치 만은 않았으니까.'

지금까지의 여정도 꽃길만 있던 건 아니고 고비의 고비를 넘고 넘어왔으니까.

왠지 버티면 다음장이 펼쳐지지 않을까. 잡고 있는 지푸라기를 놓지 못하는 거다.


책 제목을 되뇌며 나를 있게 한 모든 것들.을 떠올리고 걸어온 시간으로 들어가 그날의 나를 만난다.

'어휴.. 그래도 그때보단 덜 최악인 것 같아.'

성숙해진 건지 무뎌진 건지 아님 골고루 섞여있는 건지 모를 일이지만, 과거를 들여다보는 건 현재 상황을 좀 더 이성적으로 볼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도 한다.


기대하는 건 너무 거창하니까 기다리며 나를 찾아가는 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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