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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민 Apr 22. 2017

24시간에서 일탈 시간 72초

일상의 재미를 찾기 위해서 72초가 필요하다.

나는 에디터와 야식을 먹으면서 '지금은 포기했지만' 내 꿈 중에 하나는 연애소설을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0.72초 정도. 두 명 모두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J는 즉시 고개를 숙여 카레우동 면발을 들이키면서 표정관리 안 되는 자기 얼굴을 숨겼다. 그러나 얼굴 컬러로 감정을 표현하는 H 에디터는 감출 수 없는 붉은 비웃음을 나에게 들켰다.

하지만 나는 불쾌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영원히 [연애소설]을 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 나에게는 아내가 있기 때문이다.


문학을 공부했던 나는 두 편의 연애소설을 써서 신춘문예에 보냈지만 떨어졌다.

그렇다고 내가 소설 쓰기에 자질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포기한 것은 아니다.

연애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작가는 주인공이 되어서 연애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

이런 설정에서 [상상 연애]의 피해망상의 심각성 (특히 나에게는)을 너무나도 크게 당해보았기에 

나는 더 이상 연애소설을 쓰고 싶지 않는다.


연애소설을 쓰려면 의도적으로 연애의 감정을 만들어야 하는데, 

가상의 연인을 만들거나 어떤 사람을 가상의 연인이 필요하다.


주변에 소설에서 나올만한 여자를 선택해서 관찰한 다음에 그녀에게 일어나는 독특한 사건을 다듬어서 스토리를 만들고, 캐릭터를 붙이고 사랑으로 이어지는 운명의 관계를 설정해야 한다.

상상임신이 임신하지 않은 여자의 몸에 이상 현상을 생기게 하는 것처럼, 소설을 위한 상상 연애를 하면 ‘실제 감정’이 생긴다. 바로 이 점이 위험하다.

나는 소설을 쓰려고 할 때,  이런 상상 연애와 짝사랑 그리고 스토킹의 모호함에서 일어날 수 있는 황당한 경험을 했다.

그 이후부터 나는 연애소설을 읽지도 않고 쓸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 나는 최근에 연애 소설은 아니지만, 소설의 도입부를 경험하고 있다.


한 달 전에 나는 몽블랑 볼펜을 중고로 살려고 중고 앱을 깔아서 검색한 적이 있었다.

내가 사려고 했던 볼펜을 찾았고, 나는 값싼 중고를 사려고 했다가 가짜를 사는 호갱이 되지 않기 위해서 신중하게 판매자의 판매 이력을 살폈다.




그녀는 자신의 핸드백과 신발류를 중고로 팔고 있었다.

랄프로렌 컬렉션 하이힐, 마크 제이콥스 힐, 보테가 베네타 샌들, 페라가모 슬리퍼, 지미추 부츠, 클락스 여성화 프라다 여성화 외 대부분 자신이 신었던 진짜 중고제품을 팔았다.


그런데 소설의 시작은 이 제품 때문이었다.

명품 제품에 끼어 있는 [플래티퍼스 유아용 수용복]은 왜 파는 것일까?


[유아용입니다. 1세용!, 호주 브랜드 자외선 차단되는 물놀이용 옷!, 새 제품 택배비 포함]



이 옷은 누구의 옷일까?

'소문에 의하면' 헤밍웨이가 썼다는 6개의 단어로 쓴 소설이 떠올랐다.



그녀의 중고 상품 판매 목록에서 유아용 수영복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상품 택이 그대로 붙어있는 새 제품이다.

그녀가 팔려는 호주산 1세용 수영복으로 인해서 나는 수많은 상상을 하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나는 물건을 받기 위해서 그녀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녀는 일산에서 근무하기 때문에 내가 일하는 [삼성역]에서 시간을 잡고 만나기에 어려워서 서로 시간과 장소를 맞추려고 계속 문자를 보냈다. 


한 번에 끝나면 되는 일이었지만...


그녀는 어떤 사람일까? 몽블랑을 선물 받았다고 했는데 선물을 주는 그는 누구였을까?

이제 나는 조만간에 몽블랑을 받기 위해서 그녀를 만나게 된다.

회사 로비에서 만나는데 물건을 확인하기 위해서  잠깐 시간이 필요할 것인데 커피를 사줄까?

커피를 마시면서 [플래티퍼스 유아용 수용복]은 왜 파는지 물어볼까?

그녀는 나의 질문에 얼마나 당황할까?

다른 사람의 제품을 대신 팔고 있다고 말할까? 

아니면 조카 선물 사려고 했다가 시기를 놓쳐서 내놓았다고 말할까?


이 정도면 소설을 쓰기에 충분한 설정이다.

연애소설뿐만 아니라 셜록 홈스가 나올 수 있는 추리소설까지도 가능한 설정이다.



이런 상상을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72초]라는 제작회사 때문이다. ^^



72초는 ‘일상의 재미’라고 하는데 그 방법으로 [상상할 수 있는 것을 상상하라]이다.

72초 회사와 작업을 하면서 스타트업으로 그들이 어떻게 론칭을 했고, 어떻게 시장을 누비고 있으며

어떻게 성장하고 있는지를 연구를 했다.

[우리가 재미있는 것을 남들도 재미있게 하자]라는 슬로건으로 시작한 스타트업을 보면서 놀란 것도 많지만,

72초 프로젝트 다큐멘터리를 마치고 머릿속에 남는 것은 [상상할 수 있는 것을 상상하라]였다.



일상적으로 몽블랑 중고제품을 선택해서 돈을 주고 쓰면 되는 일이다.

그런데 72초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봐서 나는 나의 일상을 상상하게 되었다.


중고 몽블랑을 팔려고 나온 그녀가 내가 알고 있던 사람이라면?

그녀가 다시 나에게 문자를 보내서 내가 샀던 몽블랑을 다시 받고 싶다고 전화를 한다면?

몽블랑 볼펜을 잘 쓰고 있는데 그 몽블랑 볼펜을 선물했던 남자 친구가 나에게 문자를 보내서 다시 팔라고 한다면?


왜 사람들은 72초가 제작한 드라마를 재미있어할까?


[상상할 수 있는 일을 상상하지 않았는데 그것을 다시 상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것이 일상의 재미라는 것을 알았다. 

아마 그래서 사람들이 이토록 열광한 것 같다.



아내가 있으면 연애소설을 쓰기 어렵다.

물론 아내를 연애소설의 주인공으로 세워서 진짜 팩트가 철철 넘치는 연애소설을 쓸 수 있지만, 

어제 분리수거 쓰레기 건으로 말다툼을 했던 아내를 소설 속에서 애인으로 만드는 그 힘이 나에게 없다.

그래서 나는 연애소설을 쓰지 않는다. 

(아내와 [삶]이라는 주제로 인생 다큐는 가능]


어찌 되었든,

나는 다음 주 월요일 4월 24일에 몽블랑 볼펜을 [직거래]로 받는다. 


[플래티퍼스 유아용 수용복]을 왜 파는지 물어볼까?


72초 드라마는 이렇게 시작할 텐데... [72초 드라마 다큐멘터리는 스콜레에서]

http://www.schole.ac/talks/project/detail/20






한번도 신지 않은 아기 신발 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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