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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민 Apr 28. 2017

일상의 신비전 神祕展

시장과 일상의 욕구를 잘라 붙이다 / 72초 스콜레 편집후기 (2)


만약에, 무엇이든지 그 어떤 것도 자를 수 있는 칼이 있다면 당신은 무엇을 자르고 싶은가?


물리학자들은 그 신비한 칼로 지금까지 자를 수 없는 입자라고 밝혀진 쿼크(quark)와 렙톤 (lepton )을 잘라보고 싶을 것이다. 그 칼로 '시간'을 자를 수 있다면(?), 그들은 물리적으로 최소 단위라고 말하는 플랑크 시간(Planck time)을 자르려고 할 것이다.

 인간이 무엇인가를 자르기 위해서 돌과 돌을 부딪쳐 돌칼을 만들기 시작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자를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을 계속 잘라왔다. 어떤 면에서 잘라내고 분해하는 것은 과학 및 기술 발전의 결정체이다.


소리를 자를 수 있다면 무엇이 남을까? 
인간의 DNA와 뉴런을 잘라내서 합치면 어떻게 될까?


 인간이 무엇인가를 [잘라내고 싶어 함]은 본질과 원형에 대한 참을 수 없는 탐닉(?)과 탐구가 근원인 것 같다. 예전에 [잘라냄]이라는 콘셉트로 상상할 수도 없었고, 지금 다시 기억하는 것도 좀 불편한 [전시회]를 본 적이 있었다. 바로 [인체의 신비전]이다. 


이 전시회는 사람을 잘라서(베어서) 신체 일부를 해체와 해부함으로 수천 년 동안 내려왔던'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고상한 질문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특히(그림도 올리기가 싫다), 인간을 세로로 잘라서 겹겹이 보여주었던 그 장면으로 인해서 나는 한동안 극심한 수면장애를 겪었다.


인간이 양성자를 쪼개어 핵분열을 일으키는 핵폭탄을 만들어서 세상을 디스토피아로 만든 것처럼, 인간이 (죽은) 인간을 잘라내고 분해한 것을 본 나는 극단적인 [니힐리즘]에서 헤어나지 못했었다.




한때 사람들은 '잘라낼 수 있다면 관리할 수 있다'라는 공식을 가지고  [시간 분리=시간관리=성공]을 굳게 믿은 적이 있다. 최절정을 다다랐을 때는 시간을 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고 잘라서 사용해야만 성공 고지를 정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어떤 사람에게는 이 방법이 분명히 큰 성과가 있었지만, 시간에 항상 쫓겨 살았던 나는 성공 공식에 의해 자른 조각 시간을 모으면서 고통스럽게 살았다.

시간을 어떻게 잘게 잘라서 사용할 것인가는 [시간 관리]의 관점이라고 한다면,

시간을 어떤 방향으로 잘라서 볼 것인가는 [재미있는 시간]의 관점이다.

시간을 성공으로 목적으로 자르는 것도 있지만, 재미있는 시간을 경험하기 위해서 자를 수도 있다.


이번에 소개했던 [72초 TV] 프로젝트 다큐멘터리는

포정捕丁같은 사람들이 모여서 [재미]라는 칼로 일상을 얇게 잘라서 보여주는 하는 '부족部族'의 이야기다.




72초 TV가 보여주는 일상의 신비전神祕展


원자를 자르고, 시간을 자르고, 일상을 자른다



재미있는 일상을 만들기 위해 가장 중요한 방법은 [재미와 상상]이라는 양날을 가진 칼로 24시간으로 된 일상의 덩어리를 자르는 것에서 시작한다. 잘라보면 새롭게 볼 수 있는 [관점]이 생기고, 덩어리로 된 일상의 안을 살펴볼 수 있다.

잘라낸 시간은 0.5초 혹은 2초 시간으로 구성된 [상상의 장면]으로 일상을 재미로 바꾸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72초 TV가 일상을 자르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렇게 나눈 일상을 자신의 콘텐츠로 재조합했다. 

그렇게 잘라서 만든 콘텐츠를 다양한 형태의 [상품]으로 재구성을 했다.



핵폭탄이 거대한 에너지를 만들기 위해서 원자를 쪼개서 핵분열을 일으킨 것이라고 한다면,

72초 TV는 [일상]과 [재미]를 분열이 아닌 융합을 일으켜 콘텐티드 브랜드가 되어 시장에 상품과 서비스를 만드는 기업이다.

위에 소개한 [72초 TV의 브랜드 매트릭스]는 [일상은 재미있다]라는 자신의 관점으로 어떻게 콘텐츠를 만들어서 브랜드로 전환하고, 그것을 상품화시키는 일련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일상의 재미]에서 [콘텐츠]로

[콘텐츠]가 [브랜드]로

상품과 서비스로 변화된 [브랜드]는 라이프 스타일로

라이프 스타일은 거대 시장으로

거대 시장은 다시 72초 TV를 강력한 브랜드로... 

위 그림에서 보여주는 [콘텐츠 연관 상품]은 시작에 불과하다.

72초 TV는 [일상의 재미]를 [시장의 혁신]으로 편집 중이다. 


72초 TV의 런칭/비지니스/ 전략 프로젝트 다큐멘터리는 이곳에서

>>>>>  http://www.schole.ac/talks/project/detail/20





포정해우 捕丁解牛 [잡을 /고무래 / / ]

기술이 매우 뛰어남

(포정은 고대에 요리를 잘하던 사람의 이름 이고해우는 소를 잡아 살코기와 뼈를 구분하는 )   

[출전]『장자(莊子)』 양생주 편

소에 손을 대고 어깨를 기울이고, 발로 짓누르고, 무릎을 구부려 칼을 움직이는 동작이 모두 음률에 맞았다. 문혜군은 그것을 보고 감탄하며 말했다.  "아, 훌륭하구나. 기술이 어찌하면 이런 경지에 이를 수가 있느냐?"  

포정은 칼을 놓고 말했다.  "제가 반기는 것은 도(道) 입니다.

손끝의 재주 따위보다야 우월합니다. 제가 소를 잡을 때는 소만 보여 손을 댈 수 없었으나, 3년이 지나자 이미 소의 온 모습은 눈에 안 띄게 되었습니다.  

요즘 저는 정신으로 소를 대하고 있고 눈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눈의 작용이 멎으니 정신의 자연스런 작용만 남습니다. 

 천리를 따라 소가죽과 고기, 살과 뼈 사이의 커다란 틈새와 빈 곳에 칼을 놀리고 움직여 소 몸이 생긴 그대로 따라갑니다.  

그 기술의 미묘함은 아직 한 번도 칼질을 실수하여 살이나 뼈를 다친 일이 없습니다.

하물며 큰 뼈야 더 말할 게 있겠습니까?  

솜씨 좋은 소잡이가 1년 만에 칼을 바꾸는 것은 살을 가르기 때문입니다.

 평범한 보통 소잡이는 달마다 칼을 바꾸는데, 이는 무리하게 뼈를 가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제 칼은 19년이나 되어 수천 마리의 소를 잡았지만, 칼날은 방금 숫돌에 간 것과 같습니다. 저 뼈마디에는 틈새가 있고 칼날에는 두께가 없습니다.  

두께 없는 것을 틈새에 넣으니, 널찍하여 칼날을 움직이는 데도 여유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19년이 되었어도 칼날이 방금 숫돌에 간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근육과 뼈가 엉긴 곳에 이를 때마다 저는 그 일의 어려움을 알아채고 두려워하며 경계하며 천천히 손을 움직여서 칼의 움직임을 아주 미묘하게 합니다. 

살이 뼈에서 털썩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마치 흙덩이가 땅에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칼을 든 채 일어나서 둘레를 살펴보며 머뭇거리다가 흐뭇해져 칼을 씻어 챙겨 넣습니다." 

이에 문혜군은 말했다.  "훌륭하구나. 나는 포정의 말을 듣고 도를 터득했다." 


참고 ....

일상(직업)의 실력을 통해서 재미를 경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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