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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민 May 08. 2017

Campaigning BRAND, LUSH

스콜레 기보 컨퍼런스(1) 

피터 드러커는 “올바른 경영학은 인문학이다”라고 정의했다. 직장 생활 5년 차 이상이라면 이 문장을 읽자마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이 정의는 단순하지만 생각할수록 깊은 심오함이 배어 나온다. 일단 그의 정의를 직역하면 경영학은 크게 올바른 경영학과 올바르지 않은 경영학으로 구분된다.


 다소 억지스럽지만, 그의 정의를 해석하면 시장의 생존과 경쟁 기술을 가르쳐 주는 경영학과 달리 올바른 경영학이란 인문학적 경영학으로서 인간을 탐구(이해)하는 경영학일 것이다. 나는 그의 정의를 궁극의 경영학은 인문학의 연구 대상과 목적이 같아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렇다면 피터 드러커가 말한 정의에 빗대어 ‘올바른 브랜드는 무엇과 같을까?’라는 질문도 만들 수 있다.


스스로 브랜드라고 우긴다고 해서 진정한 브랜드가 될 수 있을까? 

비싼 가격과 해외 브랜드라고 해서 모두 브랜드가 될까? 

그렇다면 브랜드가 소위 브랜드 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 

또 올바른 브랜드는 무엇일까? 만약 올바른 브랜드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을 올바르게 할까? 

올바른 브랜드란 결국 올바른 소비도 있다는 것인가?


인문학과 닮은 올바른 경영학의 관점으로 ‘올바른 브랜드’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싶다. 


인문학이라는 관점에서 브랜드는 사람과 사람이 더불어 살아가는 문화의 결정체이자 매개체다. 생필품의 용도가 아닌 브랜드는 일종의 미디어이기 때문에 ‘올바른 브랜드는 인문학적 가치로 만든 무형 혹은 유형의 것’이다. 

이 정의에 대입해 보면, 신발 하나를 사면 신발이 없는 사람에게 하나를 보낸다는 탐스슈즈, 실업자와 노숙자를 위해 만들어진 루비콘 베이커리 그리고 몬순 지방에서 영감을 받아 브랜드를 만든 후 그 브랜드의 수익금을 몬순 지역에 사는 어린아이들을 위해 사용하는 몬순은 인문학적 가치를 추구하며 그 메시지를 담고 있는 미디어다. 나는 이런 브랜드를 올바른 브랜드라 말하고 싶다.


특히 이번에 스콜레에서 소개하고 개최하는 컨퍼런스에서 하러쉬LUSH는 어떻게 올바른 인문학적 브랜드(인간의 가치를 지향)가 되기 위해서 진화되어가는지를 설명할 예정이다.





 




나는 외친다. 고로 존재한다. 


‘캠페인’의 의미에 대해서 질문하면 기업의 전사적 마케팅 활동 혹은 공익 활동이라고 말한다. 틀린 것은 아니지만, 전부는 아니다. 먼저 캠페인은 전략(Strategy)처럼 전형적인 군사용어다.

‘전투’의 의미를 가진 캠페인은 그냥 전투가 아니라 자신의 소총에 검을 부착하고 참호에서 적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백병전을 의미한다. 백병전(白兵戰)은 살을 맞댈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창, 칼, 총검 등을 들고 양편이 맞붙어 버리는 전투다.

슬로건(Slogan)은 스코틀랜드의 게일어로서 ‘군인의 함성(Sluagh ghairm)’이라는 뜻이다. 우리가 친숙하게 알고 있는 슬로건이 있다면, 아마도 나이키의 ‘Just do it’ 혹은 아디다스의 ‘Nothing is impossible’ 일 것이다. 대부분의 브랜드가 광고에서 슬로건을 사용한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소비자의 이익, 브랜드와 관계, 제품의 정보, 시대 의관 심, 다른 생각, 기업의 뉴스, 치사한 비교 등 너무나 다양하다.




브랜드 혹은 기업이 캠페인을 한다고 했을 때, 그것은 어깨에 끈을 두르고 전단지를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경쟁자혹은 브랜드가 실현하고 싶은 가치를 위해서 사회 구조와 백병전을 하는 것이다. 시즌 기간 내에 치열한 마켓셰어를 벌이는 것이다. 인문학적 브랜드의 올바른 캠페인은 어떠해야 할까? 


 러쉬의 캠페인은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종의 사회운동이다. 어떤 브랜드가 사회 부조리, 시장의 악순환, 나쁜 브랜드의 제품 퇴출 등과 같은 일을 수많은 소비자와 연대 해 시장을 바꾸는 것을 말한다. 그냥 하나 사면하나 더 주거나, 우리 것을 사면 누군가를 위해서 수익의 1%를 돕는다는 캠페인은 일종의 쇼다. 그것은 백병전과 같은 캠페인이 아니라 웃긴 가면을 쓰고 길거리를 행진하는 가장무도회다.










이처럼,

러쉬는 [인문학적 브랜드]로 소비자에게 소리를 질러서 관심을 끄는 브랜드가 아니라 지구에서 함께 사는 이웃들에게 자신의 가치를 커뮤니케이션할 줄 아는 매우 희귀한 고등브랜드 중에 하나다. 러쉬는 자신의 제품을 물건이 아닌 단어, 개념 그리고 가치로 전환해서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다.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마케팅 커뮤니케이션과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얼핏 보기에는 다른 말 같지만, 브랜드 업계 현장에서는 이를 같은 개념으로 혼용하고 있다. 굳이 그 차이를 알아본다면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은 광고, 홍보, 협찬, 전시 그리고 판촉 행위에 관한 총체(總體)이고,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은 기존의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위에 소셜 미디어 마케팅이나 스토리 마케팅 정도를 업데이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개념을 이렇게 사용해도 큰 무리가 없는 것은 ‘커뮤니케이션’을 그저 도달률의 측면에서 메시지의 빠르고 넓은 전 달 정도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 단어는 업계에서 콘셉트 (Concept)만큼이나 그 의미가 희석되고 오염된 단어 중 하나이다. 우리가 ‘소통(疏通)’이라고 해석하는 커뮤니케이션의 고대 어원을 살펴보면 지금 사용하는 의미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 수 있다. 커뮤니케이션의 어원은 라틴어 코뮤니어스(Communis)로, ‘공통되는(Common)’, ‘함께 공통의 것을 만들어 나누다(Communi-care)’라는 의미가 있다. 때문에 Communis는 후에 성찬식 (Communion)과 공동체(Community)로 파생되었다. 이처럼 커뮤니케이션의 원래 의미는 메시지 전달보다는 특별한 경험을 공유하는 것에 가깝다. 커뮤니케이션은 커뮤니티가 없으면 실현되지 않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의 핵심은 메시지 ‘전달’이 아니라 ‘나눔’이라는 과정이다.


커뮤니케이션의 고유 의미를 가지고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을 정의하면 ‘공통된 마케팅을 나누는 것’이라는 이상한 직역이 된다. 한 마디로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이란 생산자 관점에서 ‘마케팅 활동을 잘하는 방법’이다. 반면에 [브랜드 커뮤 니 케이션]을 어원을 통해 정의해 본다면 ‘브랜드를 함께 나누는 것’이 된다.

혼자만 알고 있는 브랜드는 브랜드가 될 수 없다. 브랜드는 특이하게 여러 사람과 그 의미를 나누고 공유할수록 강력해진다. 브랜드가 주는 의미를 경험하고 공유하는 것이 바로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이다.



인간의 자아는 ‘자신이 스스로 느끼는 나, 자신에게 중요한 타인이 판단하는 나,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나’로 간주한다. 이 때문에 개인에게 커뮤니케이션은 ‘자아’가 어떻게 공동체 (Community) 안에서 상호작용하는지 인지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개인은 커뮤니케이션의 주체로서 ‘자신을 어떻게 느끼는가?’ ‘자신을 어떻게 보여 줄 것인가?’를 끊임없이 커뮤니티와 커뮤니케이션하며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확고히 해간다. 브랜드 또한 개인이 자아를 인식하듯 시장이라는 커뮤니티 안에서 ‘자기다움으로 남과 다름’인 브랜딩과 ‘남과 다름으로 자기다움’인 마케팅을 통해 아이덴티티를 구축한다.

브랜드와 자아가 커뮤니티 안에서 커뮤니케이션하면서 성장하고 완성되는 과정은 비슷하다. 따라서 브랜드를 다루는 사람은 커뮤니케이션에 대해서 비즈니스적 관점이 아닌 사회 과학적 접근을 해야 한다.


브랜드의 가치와 의미를 ‘나눈다’라는 개념은 없고, 오직 사용자 편익의 ‘전달’만 있기 때문이다.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관점을 ‘사용자와 브랜드를 나누는 것’이라고 한다면 자신은 모르고 타인이 알거나 현재의 타인이 모르는 영역, 즉 기존의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이 보완하지 못하는 부분에서 끊임없이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확인해야 한다. 이런 커뮤니케이션 측면에서 러쉬는 시장에서 가장 고도로 진화된 브랜드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반면에,  최악의 브래드 소통은 ‘깡통’ 커뮤니케이션이다. 

첫째, 브랜드 최고 결정자가 자신의 취향만으로 커뮤니케이 션의 방향을 바꾸는 경우.

둘째, 시끄럽고 요란하게 메시지를 전달해야만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을 잘했다고 생각하는 경우.

셋째, 사용자의 피드백에 관한 연구 없이 오직 자신의 말만 하려는 경우.

넷째, 자신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유행어를 붙여서 반복적으로 말하는 경우.

이 외에도 수많은 사례가 있지만,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오직 자신이 열심히 준비한 이야기만을 하려는 소통이 바로 요란한 ‘깡통’이라는 것이다. 마케터들은 이번 스콜레에서 발행한 러쉬 캠페인을 읽어 보면서 '인문학'과 닮은 올바른 경영학에서 만든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을 고민했으면 한다.  


브랜드는 생산자가 만드는 상표가 아니라 사용자가 함께 완성해가는 가치라는 관점에서 ‘소통’ 해야 한다.

이번 러쉬 프로젝트 다큐멘터리에서는 이 개념을 증명하고 있다. 



러쉬는 [인문학적 브랜드]로 소비자가 아닌 이웃들에게 인간의 가치를 커뮤니케이션할 줄 아는 극소수 브랜드 중에 하나다.

....

1914년 [성장과 형태에 대하여] 생태학자인 다시 D'arcy는 그의 저서에서?[사물의 형태는 에너지의 흐름의 도표다]라고 말했다. 어떤 사물의 외관은 그 안에 내재한 에너지들의 역학관계를 여실히 드러낸다는 말이다.

 LUSH를 취재하면서 그의 말을 인용하여 브랜드의 형태(소비자가 인식하는 지각된 품질, 이미지 등)도 문화와 가치 에너지의 흐름의 도표라고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러쉬는 시장에서 가장 인간다운, 인간적으로 고도화된 가치의 [흐름]으로 진화된 브랜드이기 때문이다. 


문화는 브랜드를 만들고, 브랜드는 또 다른 문화를 만든다. 그렇게 만들어진 브랜드와 문화는 세상에 없는 가치 프레임을 만들고, 시장 가치 프레임은 인간의 더 나은 미래를 만든다.

러쉬에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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