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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민 Mar 07. 2020

자기다움에서 예수다움으로(12-1)

예수다움의 시작,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저녁마다 기도한다.

이제부터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하나, 태어나기 전에 부모를 택할 수 있습니다.

둘, 언제 어디서 죽는지 알 수 있습니다.


둘 중에 어떤 선택이 오늘을 지켜내고 살아내는 신앙을 가질 수 있을까요? 

어떤 선택이 진짜, 제대로 된 그리고 완벽한 인생을 살아보게 할까요? 

참고로 예수님은 이 두 개를 모두 선택하셨습니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나의 신앙과 구원을 위해 부모를 선택할 수 있다면,  그 기준과 조건은 무엇일까? 만약에 내가 독실한 신앙을 가진 부모님을 선택할 수 있다면 나는 1초도 생각하지 않고 신앙을 가진 부모를 선택했을까? 이 질문에 ‘아니오’라는 대답이 머리가 아니라 깊은 마음에 어디에선가 불쑥 튀어나왔다. 내가 지금 30대라면 주저 없이 신앙을 가진 부모님 밑에서 자라는 것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 마음이 신앙을 가진 부모님 자녀가 되는 것에 대해 복잡해지며 주저하는 이유는 독실한 신앙을 가진 부모 밑에서 자녀가 신앙을 버리고 괴물이 된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더욱 현실적인 선택을 하기 위해 나의 주변에 있는 신앙 선배와 친구들을 나의 부모가 될 만한 사람으로 떠올라 보았다. 내가 생각한 후보 부모들은 나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훌륭하고 탁월한 사람이지만, 나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채우기에는 부족하고 맞지 않았다.


 부모 선택권으로 내 마음의 중심을 확인하기 위해서 극단적인 선택 사항을 만들어 보았다. 

나는 어떤 부모를 원할까?

1) 세계 1위 재벌이지만 독실한 기독교 비지니스맨  2) 이라크에서 교회 개척한 선교사  3) 왕(나라도 고를 수 있다. 영국, 일본, 스웨덴, 태국, 사우디아라비아) 4) 지금의 부모


솔직히 이혼 가정에서 고아처럼 자란 나는 또다시 4) 번은 선택하지 않을 것 같다. 그렇다고 2) 번 부모 후보도 선택하지 않을 것 같다. 그러면 왕과 재벌만 후보로 남았다. 그들은 나를 부유한 삶을 누리게 할 수 있겠지만 예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인도할 수 있을까?


 성경에서 독실한 신앙인이며 탁월한 왕을 뽑는다면 다윗이다. 다윗의 아들로 압도적인 재능과 지혜를 가지고 엄청난 부를 누렸던 다윗의 아들 솔로몬. 이런 다윗 할아버지와 솔로몬 아버지를 두었던 사람은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바로 그 사람은 이스라엘 최악의 왕이라고 불리는 로호보암이다. 솔로몬은 정권 마지막 시기에 타락했다. 그것을 보면서 왕좌에 오른 르호보암은 하나님이 그렇게 혐오하는 우상을 본격적으로 숭배한 왕이 되었다. 이런 패턴은 역사와 나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흔한 사건이다.


 독실한 신앙심을 가진 재벌급 왕족의 삶이 궁금하지만, 지금의 신앙심이라도 갖고 유지하기 위해 부모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지금의 부모를 선택할 것 같다. 비록 나의 부모님은 아직도 기독교 신앙을 거부하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나에게 예수님을 소개하신 분이다.


 그런데 지금의 부모님도 자녀를 고를 수 있는 선택권이 있다면 나를 선택할까? 부모 없이 살았던 나는 부모에게 가족애는 물론이고 신앙을 전해 듣거나 물려받지 않았다. 그 때문에 내 자녀에게는 내가 어릴 적부터 상상하고 꿈꾸었던 부모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노력할수록 부유한 유명 배우가 가난한 농부 역할을 어설프게 하는 것처럼, 나는 기괴할 정도의 억지스러운 부모 코스프레를 하는 중이다. 




  하나님 아버지는 예수님의 양 부모를 어떤 기준으로 선택했을까?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양육하면서 ‘배신(의심)하지 않는 부모’를 결정하셨을 것 같다. 의심과 배신으로 예수님 사역에 흔들었던 모든 사람은 예수님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다. 사람들에게 메시아라고 소개했지만, 감옥에 갇혀서 의심했던 세례요한, 믿지 않았던 예수님의 동생들, 배신한 제자 가룟유다 그리고 3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한 베드로까지 예수님의 최측근은 항상 배신/의심을 했다. 이런 정황상 하나님의 부모(정확히 말하면 하나님과 동역자) 선택 기준은 믿음과 순종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나와 내 아내에게 요셉과 마리아의 기준으로 지금의 자녀들을 주셨을까? 그 선택 기준에 대해서 나만큼 내 아이들도 궁금할 것 같다.


 대부분 부모가 어린아이에게 이런 질문을 받는다.

 “나를 어떻게 낳았어요? 혹은 나는 엄마 배속에 어떻게 들어가 있었어요?”

5살 미만의 아이들에게는 ‘하나님이 주셨다’라는 대답이 어느 정도는 먹힌다. 다행히 성경에서도 아브라함에게 이삭, 사가랴에게 세례 요한 등. 성경에는 아이들의 동심을 깨지 않게 부부의 생물학적 디테일한 잠자리 이야기는 없다. 하지만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성교육을 받은 아이들에게는 이렇게 말할 수 없다.


 그들에게 “사실은 말이야, 아빠와 엄마는 부부의 잠자리, 그러니깐 섹스라는 성행위(쉽게 이야기하면 쾌락)에 의해서 아빠의 몸에서 정자 3억 중 마리가 나와 그중에 한 마리(정자 한 명이라고 불러야 하나?)가 엄마가 만든 난자 한 마리와 만나서 네가 태어났어.” 그다음 질문은 아마도 섹스가 뭐냐고 이어질 것이다. 이 질문에 ‘어른 되면 다 알아’라는 대답으로 회피한다. 부모는 섹스의 거룩함(?), 즐거움 그리고 생물학적 본능을 설명하지 못하여 결국 아이들은  음란물 동영상을 보면서 변태 섹스를 통해 자기다움이 붕괴하는 성 지식을 습득하도록 방치하게 된다.


아이들은 머지않아 자기다움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야동이라는 섹스의 민낯을 탐닉하게 된다. 이렇게 자기다움을 하나님 선물로 시작한 내 아이는 인간의 쾌락을 근거로 한 섹스로 태어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 과정이 참혹하고 민망하다.


 이렇게 본능과 쾌락으로 태어난 자신에게 좋은 부모가 있다면 섹스의 선기능(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이해할 수 있지만, 악한 부모에게 자란다면 자신의 존재는 성적 배설과 번식 본능의 결과로 받아들인다. 내 자녀는 자신의 존재를 섹스의 하룻밤 결과물로 생각할까? 아니면 창세전에 예비하신 하나님의 선물로 생각할까? 자녀들에게 묻기 전에 자신에게 물어보면 답이 나온다. 나는 내 자녀를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하나님의 자녀처럼 양육할까?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나는 이 자녀를 위해서 얼마나 기도할까? 아이들과 가정 예배는 드릴까? 아이들에게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서 자기의 부족한 점을 회개하고 도움을 구한 적은 얼마나 있을까? 이런 것이 없다면 단정 짓고 일반화하면 안 되지만 아이들은 자신을 섹스의 결과물로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비록 나의 자녀가 태어나기 전에 자신의 부모가 될 사람으로 나를 선택하지는 않았지만, 자녀가 생각하기에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구원을 위해 나를 부모로 선택했다는 믿음을 갖기 바란다. 그래서 나는 생물학적 부모(父母)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를 양육하는 보모(保姆)의 역할을 충실히 하려고 한다. 이렇게 내가 부모가 아니라 보모가 되려고 하는 것은 예수님이 우리를 그렇게 돌보셨기 때문이다.


나는, 아버지께서 세상에서 택하셔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드러냈습니다. 그들은 본래 아버지의 사람들인데, 아버지께서 그들을 나에게 주셨습니다.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켰습니다. (요17:6, 새번역)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고 있다는 믿음을 우리에게 주기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




나를 선택한 하나님, 내가 선택한 하나님

  

우리는 부모님을 선택하지 못하고 태어났지만, 우리는 이 땅에서 다시 부모님을 선택할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바로 하나님 아버지이시다. 선택이라는 말보다는 믿음이라는 단어가 기독교 표준 문법이지만 아담이 선악과를 먹기로 선택한 것처럼 나는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선택했다.


12 그러나 그를 맞아들인 사람들, 곧 그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 13 이들은 혈통에서나, 육정에서나, 사람의 뜻에서 나지 아니하고, 하나님에게서 났다.(요1:12-13, 새번역)


성경은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에게 낳은 자녀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아멘.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 (부를 수 있다)


여러분은 또다시 두려움에 빠뜨리는 종살이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자녀로 삼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영으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롬8:15, 새번역)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 내 아이들이 나에게 ‘아빠 나는 어떻게 태어났어?’라고 물어 보는 것처럼 평생 율법을 공부한 니고데모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에 대해서 이렇게 질문을 했다. 


4 니고데모가 예수께 말하였다. "사람이 늙었는데, 그가 어떻게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 뱃속에 다시 들어갔다가 태어날 수야 없지 않습니까?” 5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요3:4-5, 새번역)


이제 나는 하나님께서 물과 성령으로 낳은 하나님의 자녀처럼 살아가야 한다. 하나님 자녀로서 자기다움은 자기 계발이 아니라 예수다움으로 닮아가는 것이다. 성경은 예수다움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려주고 있다. 아버지를 선택했다면 하나님을 아버지답게 섬기는 것이 신앙인의 자기다움이다.


 만약에 성인이 된 자녀가 나에게 ‘아빠, 엄마랑 섹스를 통해서 나를 낳았지?’라고 질문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도 그런 줄 알았지. 하지만 아니야. 너희들은 섹스를 통해서 낳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너를 우리에게 보내셨어.’ 예전에는 나도 믿어지지 않았던 이 말이 뭐라고 설명할 수 없지만, 지금은 부모로서 믿어진다. 아니 확실해졌다.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처럼, 자녀는 섹스로 낳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 때문에 낳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 나의 아버지가 되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이기 때문에 금수저를 입에 물고 다니고 싶은가? 만약 그런 마음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선택했다면 왕족 같은 재벌의 아버지인 돈을 아버지로 선택한 것이다.


누구든지 하나님 안에서 살아간다면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것과 같이 자신도 그렇게 행해야 합니다. (요일2:6, 우리말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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