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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예수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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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민 Jan 05. 2024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마음과 보물

놀랍게도 성도뿐만 아니라 대부분 사람은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언젠가는 갖기 위해 돈을 모은다.

그 과정에서 끊임없이 남들이 원하는 것을 내가 원하는 것이라고 착각해서 돈으로 살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산다.


사람들은 돈 그 자체를 원하지 않는다.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는 돈을  원했다면 집에 현금을 쌓아 두었을 것이다.

탈세자를 제외하고 돈은 통장에 숫자로 박아 두고 있다.

많은 돈을 원하는 것은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해서 ‘일단’ 모은다.

그런데 인간은 죽을 때 비로소 자신이 원하는 것이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임을 알게 된다. 


인생은 그렇게 허무하게 끝난다.


성경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말 모르는 사람이 많이 나온다. 

의외의 인물이지만 대표적 인물로 뽑는다면 침례(세례) 요한이다.

왜 침례 요한은 마지막에 예수님을 의심했을까? 자신이 그토록 기다렸던 메시아였는데, 

결국에는 그는 자신이 누굴 기다리는지 모르고 참수당했다.

그는 정말 예수님을 몰랐을까? 

성경에 그 증거가 쓰여있고 성령께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는데 왜 그는 의심했을까?

도대체 그가 상상하면서 기다렸던 예수님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는 평생 자신이 원하는 것을 기다렸는데 결국에는 의심했다. 

그는 정말 메시아를 원했나? 

아니면 메시아를 위해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로 자기 역할을 계속하고 싶어 했나? 


자기가 원하는 메시아 때문에 진짜 메시아를 보지 못했다.

베드로도 가족과 가업을 모두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지만,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을 끝까지 몰랐다. 

예수님에게 사탄아, 물러가라는 꾸중도 들었다.

나중에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씀하셨다. (다른 사람이 너를 띠 띠울 것이다)


내 생각에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우물가 사마리아 여인과 밤에 찾아온 니고데모이다.

우물가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이 선지자급(?)으로 판단되자 바로 예배에 대해서 질문했다. 

자신이 그토록 원한 것을 바로 질문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이 진짜 원하는 것을 예수님에게 말하기 위해 여러 말씀을 해주셨다.

반면에 니고데모는 원하는 것을 구하지도 않았는데 예수님은 대답하셨다.

예수님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답변하셨다. 


니고데모의 사례를 살펴보자. 

[요 3:2-3, 새 번역]

2 이 사람이 밤에 예수께 와서 말하였다. "랍비님, 우리는, 선생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임을 압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으시면, 선생님께서 행하시는 그런 표징들을, 아무도 행할 수 없습니다."

3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다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알고 있었다. 어떤 이유로 밤에 찾아온지는 모르겠지만(눈을 피하기 위해, 사람이 많아서.. 모르겠다) 그는 예수님이 하나님과 함께 하는 분이라고 믿었다(알았다). 

이렇게 내가 확신하는 이유는 뒤에 설명을 하겠다. 


예수님도  니고데모가 왜 자신을 찾아왔는지 알고 계셨다. 니고데모가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니고데모의 관심사가 무엇인지도 알고 있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이 인정한 유대인의 선생이다. 

그는 성경을 읽으면서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 나라를 보기를 갈망했을 것이다. 

그런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의 출현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자신이 읽었던 메시아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자신의 지식과 상식 그리고 다른 유대인의 판단에 의하면 나사렛 출신 예수님은 메시아가 아니다. 

하지만 그는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율법에 정통한 니고데모는 하나님 나라에서 온 예수님을 만나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방법을 묻고 싶었다.


어렸을 때부터 율법 대부분을 지킨 또 한 명의 사람은 부장 청년이다. 

그도 예수님께 찾아가서 구원을 물었다.

왜 니고데모와 젊은 부자 청년은 율법을 지켰는데 구원에 대해서 여전히 불안해야 했을까? 무엇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을까?


예수님은 부자 청년에게는 재산을 팔고 자신을 따르라고 했다. 부자 청년의 하나님은 부유한 [재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자 청년만큼 돈이 좀 있는 니고데모에게 재산을 팔고 따라오라는 요청은 하지 않았다. 그 대신에 지금까지 자신이 믿었던 믿음에 대해서 파기할 것을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다시 태어나라고 하셨다.

니고데모는 어떻게든 잘 죽어서 하나님 나라에 가는 방법을 묻고 싶었는데 그런 니고데모에게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다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자신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구약을 외우고 있는(지금도 랍비는 모세오경을 모두 외운다고 함) 니고데모에게 모세의 놋 뱀을 상징으로 자신이 땅에서 들리면 믿으라고 하셨다. 니고데모는 정말 믿었을까?


성경에 예수님에게 무엇인가를 부은 사람이 두 명이 있는데 한 명은 마리아이고, 또 한 명은 니고데모이다. 마리아는 죽음을 기념하기 위해서  200 데나리온, 약 2,000만 원이다.. (노동자 1년 6개월 연봉이라고 한다)을 부었다. 반면에 니고데모는 몰약 100근(노동자 연봉 100년~150년어치)을 부었다. 몰약 100근은 황제가 죽었을 때 사용하는 양이라고 한다. 이 정도면 부자 청년보다 돈이 더 많지 않았을까? 니고데모는 놋 뱀처럼 나무에 달린 예수님을 믿었기 이에 150년 노동자 연봉을 시체에 발랐다. 죽음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부활을 기다렸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니고데모는 예수님 사역 기간에 무엇을 했을까? 


[요 7:47-52, 새 번역]

47 바리새파 사람들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도 미혹된 것이 아니냐? 48 지도자들이나 바리새파 사람들 가운데서 그를 믿은 사람이 어디에 있다는 말이냐?

49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지렁이들은 저주받은 자들이다."

50 그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전에 예수를 찾아간 니고데모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51 "우리의 율법으로는, 먼저 그 사람의 말을 들어보거나, 또 그가 하는 일을 알아보거나, 하지 않고서는 그를 심판하지 않는 것이 아니오?"

52 그들이 니고데모에게 말하였다. "당신도 갈릴리 사람이오? 성경을 살펴보시오. 그러면 갈릴리에서는 예언자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오."


니고데모는 51절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율법으로”~~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셨을 때 하는 말씀이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니고데모는 아마도 예수님의 모든 행적을 보면서 성경의 기록을 찾아보지 않았을까?

소설을 쓰는 작가라면 주인공의 캐릭터 구축을 위해서 상대역을 정한다. 주인공을 주인공답게 하는 것은 빌런이지만 주인공이 말하고 싶은 것을 이야기하게 하는 인물은 중요한 인물로 세운다. 예수님의 빌런 역할로 대제사장 무리지만, 예수님이 하늘의 비밀을 이야기하게 만든 인물도 성경학자였다.


우물가 사마리아 여인은 구약에 나오는 메시아를 기다렸다. 그리고 예수님은 자신이 그 메시아라는 것을 알려주셨다.  그렇다면  밤에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은 놋 뱀 이야기를 왜 했을까? 

니고데모는 흐릿하게 그 의미를 알고 있거나 묵상하지 않았을까?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지 않으려면 진리를 묻는 빌라도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신 것처럼, 니고데모에게도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수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니고데모가 그때, 그 밤에는 알지 못했지만, 몰약 100근을 가지고 무덤으로 향하는 니고데모는 알고 있었다.


우리가 말씀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예수님을 알기 위해서다. 

주님은 자신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자신을 알려주신다.


니고데모는 자신이 원했던 것을 가졌을까?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을까?


바울 사도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빌 3:10-11, 새 번역]

10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여, 그분의 죽으심을 본받는 것입니다.

11 그리하여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는 부활에 이르고 싶습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추구했고, 그렇게 살았고 그렇게 죽어서 그렇게 부활했다. 

이 마음을 나도 갖고 싶다.


바울은 죽어야 받을 수 있는 것을 원했다.

대부분 사람은 살아야 누릴 수 있는 것을 원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돈을 원한다.


그렇다면 성도라면 이 땅에서 무엇을 원해야 할까?

사마리아 여인처럼 참 예배를 갈망하고, 니고데모처럼 구원을 사모하고, 바울처럼 부활을 소망해야 되지 않을까?

성도라면 죽어야 받을 수 있는 것을 살아서 갈망해야 한다. 

그래야만 죽은 이후 영생에서 우리가 소망한 것을 받을 수 있다.


돈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이 우리가 섬기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나의 보물이 있는 곳에 나의 마음도 있다고 했다. (마 6:21)

그렇다면 어떻게 보물을 찾을 수 있을까? 찾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내가 혼자 있을 때 가장 많이 보는 것.

하루에 내가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

잘 때 내가 생각하면서 자는 것.

남과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것.

자꾸 생각나는 것.

이것이 내가 진짜 원하는 보물이다.

그 보물이 죽었을 때 이 땅에 버려지고 하늘에 가지고 갈 수 없는 것이라면 예쁜 쓰레기이다. 





참고로

저는 원천침례교회 / 민트교회(담임목사 이계원)의 교인입니다. 

https://www.woncho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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