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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예수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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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민 Jan 11. 2024

나를 거칠게 다루시는 주님.

주님이 쓰시겠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사람들이 하나님을 부정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있다면 절대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머리카락을 세시고 눈동자처럼 나를 지키시고 내 안에 계시는데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까? 

예수님의 보혈로 구원받은 나에게 세상 징벌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저도 정말로 이해가 되지 않는 사건이 하나가 있습니다. 아침 출근 시간이었습니다. 

새벽에 분당수서간 도로로 자동차를 운전하여 출근 중이었습니다.

저는 찬양을 들으면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앞 차선에 흙을 실은 덤프트럭이 있었습니다. 

저는 차선을 변경하려고 했는데 트럭 짐칸에서 돌멩이 하나가 떨어졌습니다. 

돌멩이는 도로 바닥에 떨어져 튀어 올라 제 자동차 운전석 왼쪽 상단에 타격했습니다.

유리창은 깨지지 않았지만, 엄지손톱만 한 충돌 자국이 생겼습니다. 


아찔했던 순간이었죠. 

저는 순간적으로 하나님께 큰 사고가 나지 않았던 것을 감사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그 감정을 표현할 단어는 없지만 굳이 표현한다면 하나님의 배신이었습니다. 

서운하고 섭섭한 마음을 애써 외면하면서 회사에 도착했습니다.  

사무실에 앉아서 큐티를 하려고 하는 데 분노가 일어났습니다. 

그 원인은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시지 않았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사고 당시에 나는 찬양을 들으면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하나님이 나를 정말 눈동자처럼 지켜보고 계신 것일까? 

결국 큐티를 하지 못하고 하루 종일 절망과 짜증으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어떻게 이런 사고가 기도 중에 일어날 수 있지?” 

"이런 것도 막아주지 못하는 하나님을 내가 어떻게 신뢰할 수 있지?"




주님께서는 자기 일을 하실 때 사람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명령하십니다. 


[막 11:2-6, 새 번역]
2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거라. 거기에 들어가서 보면, 아직 아무도 탄 적이 없는 새끼 나귀 한 마리가 매여 있을 것이다. 그것을 풀어서 끌고 오너라.
3 어느 누가 '왜 이러는 거요?' 하고 물으면 '주님께서 쓰려고 하십니다. 쓰시고 나면, 지체 없이 이리로 돌려보내실 것입니다' 하고 말하여라."
4 그들은 가서, 새끼 나귀가 바깥길 쪽으로 나 있는 문에 매여 있는 것을 보고, 그것을 풀었다.
5 거기에 서 있는 사람들 가운데 몇 사람이 그들에게 물었다. "새끼 나귀를 풀다니, 무슨 짓이오?"
6 제자들은 예수께서 일러주신 대로 그들에게 말하였다. 그러자 그들은 가만히 있었다.


나귀 주인은 얼마나 황당했을까요? 나귀주인은 제자를 만나기 전에  주님께서 동방박사를 꿈에서 명령하신 것처럼 그들에게도 사인을 주셨을까? 아니면 제자들의 너무나 당당하게 말해서 압도를 당했을까? 

하나님께서 나귀 주인에게 어떤 사인을 주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어떻게 일하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명령하십니다.

마리아의 임신 때도, 병을 고칠 때도, 풍랑이 몰아칠 때도, 귀신에게도 그리고 아직 열매를 맺지 않는 무화과나무에도 명령하십니다. 



주님이 쓰시겠다!


인생을 살면서 내가 막지 못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정말 이렇게 되지 않기를 많이 기도했는데

이 정도면 하나님 보좌를 좀 흔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조지 뮬러도 칭찬할 만한 기도였는데 응답하지 않는 하나님.


두 번의 유산, 유니타스브랜드 폐간, 직장 동료와 갈등, 비전을 위한 기도 등. 아침저녁으로 기도하고, 주일에는 금식 기도하였습니다.

10년 넘게 기도했는데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20년 적게는 10년이 지나 과거를 기억해 보니 모두 [주님이 쓰셨다]입니다. 

두 번의 유산이 없었다면 지금의 딸과 아들이 없었고, 유니타스 브랜드 휴간이 없었다면 지금의 유니타스 라이프도 없었고, 직장 동료와 갈등과 손절이 없었다면 여전히 큰 어려움을 당했을 것입니다.


주님은 나의 기도를 거절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어린 나귀를 사용하시고 돌려주신 것처럼, 저에게도 생각할 수도 없는 큰 기쁨으로 돌려주셨습니다.


저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바울 사도도 똑같은 체험을 했습니다.


[고후 12:9, 새 번역]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 능력은 약한 데서 완전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무르게 하기 위하여 나는 더욱더 기쁜 마음으로 내 약점들을 자랑하려고 합니다.


바울이 고통스러워했던 사탄의 가시는 알고 보니 은혜였습니다. 주님께서 바울의 병을 쓰셨습니다. 그 병은 바울의 교만을 막기 위한 장치였습니다. 

인생을 살아보니 …. 10, 20, 30년 전에 기도했던 모든 것들은 주님의 방식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주님이 사용하셨습니다. 저는 제 주인처럼 살려고 했습니다. 말로는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노인을 극존칭으로 [어르신]이라고 불려 드리는 것과 같았습니다. 

내가 나의 주인이기에 주님 마음대로 행하는 것을 불편하고 분노했습니다. 


주님이 나를 쓰실 때 나의 상식을 뛰어넘습니다. 주님은 나에게 예의를  갖추어 공손하게 나를 사용하시지 않습니다. 명령하십니다. 그 명령이 우리에게는 재앙으로 올 때가 있습니다. 이제 깨달은 것은 바로 그때는 하나님이 나를 돌보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실 때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렸을 때 …. 하나님이 예수님을 쓰신 것입니다.


자동차에 돌이 부딪힌 것에 대해서 계속 열받아 있는데 제 안에서 성령님의 가르침이 있었습니다.

“너는 돌멩이가 자동차에 부딪혔다고 나의 보호를 의심하고 있구나. 

그런데 왜 너는 왜 내가 24시간, 태어나서 지금까지 돌본 것을 감사하지 않는가? 아침에 돌덩이가 떨어져 충돌하여 죽을 수도 있었는데, 왜 작은 돌멩이가 유리창에 흠집을 내었다고 분내고 있는가?”


주님은 작은 돌로 나의 사악함과 교만함을 깨우쳐주셨던 것입니다. 

10년이 지나도 그 사건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물론 믿음도 바뀌었습니다. 

주님은 작은 돌멩이를 쓰셔서[하나님은 이런 분이야]라는 선입견을 깨부수었습니다. 


바울에게는 주님이 쓰시겠다고 하면서 병을 주었고

나귀 주인에게는 주님이 쓰시겠다고 하면서 나귀를 빌려 갔습니다.


주님은 저에게도 ‘주님이 쓰시겠다.’ 하면서 무엇이든지 행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런 순간이 막상 닥치면 제 마음은 기쁨으로 즉각적인 순종하지는 못하겠죠. 

하지만 주님은 나에게 이런 일이 닥치면 어떻게 기도하는지를 알려주셨습니다.


[눅22:42, 새 번역] "아버지, 만일 아버지의 뜻이면, 내게서 이 잔을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되게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게 하여 주십시오."





참고로

저는 원천침례교회 / 민트교회(담임목사 이계원)의 교인입니다. 

https://www.woncho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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