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장년의 성간 우주 여행

내 안의 성간 우주를 향해 쏘아 올리다

by 권민

1981년 여름, 다큐멘터리 〈코스모스〉를 보고 난 뒤 밤하늘은 이전과 다르게 보였다. 쏟아질 듯한 별들을 바라보며 한때 우주 과학자를 꿈꾸기도 했다. 그 동경은 어른이 되어서도 이어졌다. 나는 우주 다큐멘터리를 즐겨 보고, 〈블랙홀 시장 창조 전략〉이라는 마케팅 책을 쓰는 컨셉으로 썼다.


엉뚱한 상상이 하나 있다. 미 항공우주국(NASA)의 직원들은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며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 어쩌면 그들은 1977년에 떠난 보이저 1호가 2026년 11월 무렵, 지구로부터 ‘1광일(1 light-day)’ 거리, 곧 빛의 속도로 꼬박 하루를 가야 하는 약 259억 km 지점에 도달한다는 사실을 두고 카운트다운을 하며 들떠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진짜로 궁금한 것은 그들의 ‘대담한 상상력’이다. 보이저 프로젝트를 이끈 미션 매니저 수잔 도드(Suzanne Dodd)는 한 자리에서 보이저호의 컴퓨터 메모리를 이렇게 설명한 적이 있다.


“보이저호의 전체 컴퓨터 메모리는 총 69.63킬로바이트(KB)입니다. 이는 오늘날 인터넷상의 사진 한 장도 담을 수 없는 용량이죠. 심지어 여러분의 자동차 스마트키(key fob)보다도 메모리가 적습니다.”


스마트키보다 작은 메모리로 그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했기에 성간 우주여행을 위한 보이저호를 쏘아 올렸을까. 그 질문은 곧 내 질문이 된다. 나는 보이저호보다 훨씬 강력한 기계를 손에 쥐고 산다. 그러나 그 기계로 문자를 주고받고, 영상을 소비하며 하루를 흘려보내곤 한다. 결국 259억 km를 나아가게 하는 힘은 기술의 스펙이 아니라 목적의 크기다. 어떤 도구를 쥐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향해 쥐었는가가 사람을 멀리 보낸다.


보이저호가 발사된 1977년 전후에 태어나 이제 지천명(50세)을 바라보는 중장년은 아이러니하게도 유리한 조건을 가진 세대다. 개인 컴퓨터의 태동과 함께 청춘을 보냈고, 이제 인공지능이라는 거대한 파도를 맞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리함은 선물이기도 하지만 책임이기도 하다. 파도 앞에서 서핑보드를 들고 멈춰 서는가, 아니면 넘어지더라도 바다로 들어가는가. 그 선택이 남은 시간을 바꾼다.


2015년, 내가 ‘유니타스브랜드’를 만들 때는 12명의 동료가 필요했다. 그러나 지금 만드는 ‘엔텔러키 브랜드’는 1인 독립 잡지다. 기획, 취재, 편집, 디자인까지 모든 과정에 인공지능을 활용해 혼자 해내고 있다. 10년 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이다. 나에게 인공지능은 내 생각과 철학을 성간 우주로 실어 나르는 나만의 ‘보이저호’가 되었다.


다만 이 모험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폐기해야 할 낡은 패러다임이 있다. 경영사상가 피터 드러커의 요지는 이렇다. 조직의 목적은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 비범한 성과를 내게 하는 데 있다. 이 문장은 조직 안에 있을 때는 우리를 고무한다. 그러나 조직을 떠나는 순간, 그 문장은 때로 불길한 예언이 되곤 한다. 시스템 안에서 비범한 일을 해낸 사람도 명함을 내려놓는 순간, 그저 ‘평범한 개인’으로 돌아간다고 느끼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퇴직을 ‘해방’이 아니라 ‘감소’로 체험한다.


우리는 타의에 의한 목표(Goal)에 익숙해져 있다. 분기, 연말, 승진, 평가, 숫자, 마감이 삶을 밀고 간다. 퇴직과 함께 그 목표가 사라지면 남는 것은 타인의 것과 비슷한 밋밋한 버킷 리스트뿐이기 쉽다. 준비 없는 퇴직은 우리를 ‘생존 모드’에 가둔다.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앞에서 삶을 ‘절전 모드’로 바꿔버리기도 한다. 에너지가 줄어든 것이 아니라, 목적이 사라진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목표’가 아니라 ‘목적(Purpose)’을 세워야 할 때다.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한 채 노인이 된다면 삶은 모험이 아니라 연명(延命)으로 전락할 것이다. 목적은 숫자로 측정되는 계획이 아니라, 삶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정해 주는 북쪽이다. 목표가 속도를 만들어도, 목적이 방향을 만든다.


중장년은 그동안 앞만 보고 살아왔다. 이제는 하늘을 볼 때다. 막연한 비전을 말하자는 클리셰가 아니다. 내 인생의 보이저호를 우주로 쏘아 올리라는 뜻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가장 현실적인 엔진은 인공지능이다. 직장에서 익힌 경험과 지식에 AI라는 엔진을 더한다면, 자본과 팀과 시간의 격차가 줄어든다. 혼자서도 제작하고, 혼자서도 출간하고, 혼자서도 연결될 수 있다. 태양계 바깥의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하는 것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기술을 붙잡는 목적이다.


헬렌 켈러는 말했다. “Life is either a daring adventure or nothing.” 삶은 대담한 모험이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


언젠가 생의 마지막 순간에 섰을 때 나는 무엇을 후회하게 될까. 더 안락하게 살지 못했음을 후회할까, 아니면 더 모험하지 못했음을 통탄할까. 나는 멈춰 서서 모험하지 않았던 순간들을 더 오래 후회할 것 같다. 가능성의 한계를 발견하는 유일한 길은 그 경계를 조금 넘어 불가능의 영역으로 발을 들여놓는 것이다. 넘어본 사람만이 경계가 어디까지인지 알게 된다.


그래서 나는 ‘유니타스라이프(unitaslife.org)’가 중장년의 NASA가 되길 바란다. 다만 여기서 NASA는 내가 새로 붙여보고 싶은 이름이다. Navigator AI Solopreneur Alliance. 직장이라는 궤도를 벗어나 인공지능이라는 엔진을 달고 홀로 서는 ‘AI 1인 기업 항해자들의 연합’이다. 우리는 혼자이지만 동시에 함께 연결되어 있다. 인공지능은 전 세계의 지식을 연결해 나를 확장시켜 주는 보이저호다. 그 배를 타고 우리는 밖으로는 세상과 소통하고, 안으로는 나 자신의 깊은 우주를 탐사할 것이다.

그 여정의 끝에서 만나는 목적지는 결국 내가 알지 못했던 ‘나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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