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Felicidade
딸들아,
엄마가 마지막으로 너희에게 들려주고 싶은 보사노바는 ≪A Felicidade≫ (행복이란 것)이란다. 사실 이 책에서 아직 소개하지 못한 아름다운 곡이 너무 많아서, 마지막 곡을 고르는 게 정말 쉽지 않았어. 하지만 이 곡은 보사노바의 정체성을 잘 담고 있으면서, 엄마가 너희에게 꼭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품고 있어서, 마지막 곡으로 선택하게 되었단다.
천천히 나지막이 시작하는 이 곡의 도입부는 이런 내용이야.
Tristeza não tem fim, felicidade sim.
슬픔은 끝이 없고, 행복은 끝이 있다.
우리의 삶에서 행복한 순간은 참 짧게 끝나는 경우가 많아. 오래도록 고대하고 염원하던 행복한 순간도 생각보다 금방 지나가 버리지. 마치 너희가 1년 내내 기다리는 크리스마스처럼 말이야.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마음 한편이 허전해지곤 해. 게다가 이 삶이라는 것 자체도 본질적으로 끝을 향하고 있다는 걸 자각한다면, 그 행복의 순간이 더 눈물 나게 허무하고 슬프게 느껴질 수도 있어.
엄마가 이 노래에서 가장 좋아하는 가사는 바로 이 부분이야. 한번 들어볼래?
가난한 이의 행복은 마치
카니발의 거대한 환상 같아
우린 1년 내내 일하지
단 한순간의 꿈을 위해서
왕이나, 해적, 정원사가 되는
환상의 의상을 만들어 입기 위해서
그러다 수요일이 오면 모든 게 끝나 버려
≪A Felicidade≫ 가사 중
가난한 사람들은 1년에 한 번 열리는 삼바 축제를 위해 일 년 내내 땀 흘려 일해야 해. '삼바의 날', 그들은 평소의 모습과는 다른 특별한 존재의 의상을 입고, 마치 꿈꾸듯 찰나의 환희를 즐기지. 하지만 그 축제도 화요일 밤이면 막을 내리고, 다음 날 ‘재의 수요일’이 밝으면 다시 긴 금욕과 노동의 날들이 시작돼. 사람들은 또다시 내년의 축제를 기다리며, 일 년 내내 묵묵히 살아가야 하는 거야.
≪A Felicidade≫는 바로 이 덧없는 축제, 끝이 예정된 행복을 노래해. 이 노래처럼 행복은 마치 한 방울의 이슬 같고, 인생은 단 하루의 축제를 향한 긴 기다림일지도 몰라.
이 노래를 듣다 보면, 엄마는 이상하게도 알베르 카뮈의『시지프 신화』가 떠오른단다. 시지프는 신들을 속였다는 이유로 저주를 받게 돼. 그래서 그는 산꼭대기를 향해 매일 바위를 밀어 올리는 형벌을 받게 되지.
정상에 오르면 바위는 다시 골짜기로 굴러 떨어지고, 시지프는 내려가 그 바위를 계속 밀어 올려야 해. 의미 없어 보이는 행위는 끝없이 계속되지만, 그 형벌 속에서 시지프는 무너지거나 굴복하지 않아.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되, 어떻게 살아갈지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지.
바위를 밀어 올리는 일은 겉보기엔 무의미하지만, 그 노동 속에서도 그는 자신의 존재를 자각해 나가는 거야. 땀, 고통, 리듬,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하루하루를 말이야. 매일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그 일상에서 자신을 의식하고 사랑하는 것—그것이 그가 택한 행복의 방식이었어. 그래서 카뮈는 말했지. “우리는 시지프를 행복한 사람으로 상상해야 한다.”
엄마는 이게 우리의 일상과 참 많이 닮았다고 느껴. 매일 반복되는 일들, 매번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모든 행위 안에서 우리는 존재하고 있는지도 몰라. 가정주부의 일도 그런 것 같아. 시간의 풍화와 먼지, 낡아지고 삭아 가고 부패하는 모든 것들로부터 가족의 삶을 지키기 위해, 매일 최전방에서 싸움을 이어가야 하지. 그 싸움은 하루이틀 잘 해냈다고 축하받거나 쉬어 가는 법이 없어. 아무도 눈길 주지 않는 싸움이 끝없이 반복되는 거야. 그래서 그럴까? 나도 내 엄마의 주름진 얼굴을 보면, 카니발을 기다리며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얼굴이 겹쳐 보이는 것 같아.
끝나 버릴 행복임을 알고도 진심으로 축제를 즐기고, 그 끝을 위해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은 행복의 순간에 굴러 떨어지는 바위를 웃으며 바라보고, 다시 씩씩하게 바위를 굴려 올리는 시지프 같아. 곧 슬픔으로 변할 행복임을 알면서도 춤을 추며 즐기는 그 사람들은, 어쩌면 누구보다도 가장 인간답고, 굳세고, 어떤 면에선 존엄하다는 생각까지 들어. 그래서 그들의 환희에 찬 얼굴은, 상상만 해도 너무나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 같아.
보사노바는 바로 그렇게 기쁨과 슬픔이 함께 숨 쉬는 음악이야. 어쩌면 가난한 삶과 긴 노동은 고통스러워 보일 수 있지만, 금방 끝나버릴 축제를 기다리고 즐기는 마음에는 그 어떤 고통도 이길 수 없는 숭고함이 깃들어 있어. 끝을 아는 사람에게는 행복도 어딘가 슬플 수 있지만, 그렇기에 우리는 그 찰나의 행복을 더 진심으로 껴안을 수 있는 게 아닐까?
엄마는 너희가 이런 모순적인 인생을, 진심으로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처럼 온 마음을 다해 살아가길 바란다. 행복과 슬픔이 뒤섞인 이 '인생'이라는 축제를, 부디 깊이 껴안고 즐길 수 있기를. 그리고 긴 기다림과 반복되는 일상에서도 자신만의 의미를 찾아내고, 너만의 길을 용감하게, 씩씩하게 걸어가기를. 그게 바로 우리가 인간답게, 그리고 존엄하게 살아가는 길이라고 엄마는 생각한다.
“딸들아, 우리 서로 얼굴 한번 마주하고 웃자.
그리고 오늘도, 우리 각자의 바위를 묵묵히 밀어 보자.”
≪A Felicidade≫(행복이란 것)은 안토니우 카를로스 조빔(Antônio Carlos Jobim)과 비니시우스 지 모라이스(Vinícius de Moraes)가 마르셀 카뮈(Marcel Camus)의 영화 〈흑인 오르페(Orfeu Negro),1959〉를 위해 만든 초기 보사노바 명곡이야. 조빔이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아들과 손자가 함께 참여한 꾸아르테투 조빔-모렐렌바움(Quarteto Jobim-Morelenbaum)이 1999년에 이 곡을 다시 녹음했어. 보사노바의 전설들이 떠났을지라도, 보사노바는 끝나지 않고 영원히 우리의 삶 속에서 살아 있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