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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아낌없이 그리는 것

Aquarela

by 송영채

둘째에게,

하얀 도화지 위로 그어진 선 하나가 노란 태양이 되고, 빨간 비행기가 되고,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이 되어 펼쳐진다. 엄마가 지금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노래는 ≪Aquarela≫(수채화)라는 노래야. 이 노래는 잔잔한 기타 소리 위에, 상상의 세계가 수채화로 끝없이 피어나는 듯한 다채롭고 다정한 노래야.


기억나니? 갯벌에서 온몸에 진흙을 묻히고 놀던 너, 햇살 좋은 날엔 잔디밭에 누워 햇살과 하나가 되던 너, 눈이 오면 눈밭에 누워 온몸으로 하얀 세상과 섞여 버리던 너. 그렇게 삶을 온몸으로 껴안는 너를 보며 엄마는 생각했단다. 너는 진짜 화가구나. 몰입해서 세상을 만지고, 느끼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그려 나가는 작은 화가. 물감을 아끼지 않고 자기 삶을 통째로 그려 낼 줄 아는 그런 화가 말이야.


만약 작은 잉크 한 방울이

파란 종이 한 귀퉁이에 떨어지면

나는 곧바로 상상해요

하늘을 나는 아름다운 갈매기 한 마리를


갈매기는 날아가고

넓은 곡선을 따라 북쪽과 남쪽을 지나가요

나도 갈매기와 함께 여행을 떠나요


≪Aquarela≫ 가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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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래에선 하얀 도화지 위에 단순한 선들로 세상을 그려 나가다가, 잉크 한 방울이 종이에 떨어지는 가사가 나와. 어떻게 보면 그림을 망가뜨리는 실수로 여겨질 수도 있는 순간이지. 하지만 이 잉크 방울은 곧바로 갈매기가 되어 나를 데리고 여행을 떠나.


어떻게 보면 우리 삶도 그렇단다. 어쩌다 잘못 떨어진 잉크 방울이 그림을 망쳐 버리는 것 같은 순간은 꼭 찾아와. 그런데 그거 아니? 그런 실수들이 삶을 흐트러뜨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나만의 개성이 더욱 묻어나는 자신만의 그림을 만들어 준다는 것을.


너는 그림을 그리다가 마음에 안 들면 종이를 구겨 버리곤 해. 그런 너를 보면, 엄마는 안타까울 때가 많아. 세상에 하나뿐인 너만의 그림이 자꾸 멈춰지는 것 같아서.


실수 없는 인생은 없어. 인생은 늘 다시 그려 가는 그림이란다. 실수한 선 위에 새로운 무늬가 생겨나고, 엉켜 버린 색 위에 더 오묘한 하늘빛이 피어나는 거야. 그렇게 의도하지 않았던 실수를 매만지면서, 너의 그림엔 더욱 생명력이 깃들고, 너만의 개성이 담기며, 결국 너만 그릴 수 있는 특별한 그림이 되는 거야. 망가진 그림은 없어. 잘못했다고 느낀 순간조차, 사실은 모두 다 너의 도화지 위에 필요한 선과 색이 되어 줄 거야.


프랑스 화가 폴 세잔도 그랬대. 인물을 그리다 선이 어긋나더라도 결코 지우지 않았다고 해. 대신 그 위에 또 다른 선을 조심스레 겹쳐 그렸다는 거지. 미국의 한 미술 평론가는 《뉴요커》에 쓴 글에서 “세잔은 잘못된 선을 고치기보다 그 위에 선을 덧그리며, 실수를 작품 속 리듬으로 길들였다”라고 했어. 그렇게 겹겹이 쌓인 선들은 그의 그림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고유한 깊이가 되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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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우리가 조종하려 애쓰는 우주선,

아이의 그림은 공중을 날아 하늘을 물들여 간다


≪Aquarela≫ 가사 중



딸아, 하얀 도화지가 네 앞에 끝없이 펼쳐져 있단다. 커다란 붓도 네 손에 이미 쥐어져 있고, 촉촉이 젖은 수많은 색채의 물감들이 너를 기다리고 있지. 이 하얀 도화지를 망치고 싶지 않아서, 첫 붓질이 더욱 두려울 수도 있어. 하지만 겁내지 말고, 너만의 선과 색으로 세상을 가득 칠해 보렴. 엄마는 늘 네 도화지 옆에 앉아 조용히 말해 줄게.


“잘 그리고 있어. 실수해도 괜찮아.

그게 바로 네 그림이 더 멋있어지는 순간이야.

네가 그리는 모든 선은 너만의 세계로 향하는 길이 되어 줄 거야.

그러니 아무 걱정하지 말고, 마음껏 그려 보자.”




브라질의 가수 토키뉴(Toquinho)가 1983년 이탈리아에서 ≪Acquarello≫로 처음 발표한 뒤, 포르투갈어로도 발매하여 큰 사랑을 받은 곡이 바로 ≪Aquarela≫(수채화)야. 잔잔한 어쿠스틱 기타 반주와 어우러지는 보사노바의 호흡 속에서 브라질 대중음악(MPB)은 한층 깊어졌는데, 이 노래 역시 MPB 흐름 속에서 탄생한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힌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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