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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환상과 분리된 삶

우리는 왜 '지금'을 놓치는가?

by 하우주
그는 좀처럼 미래를 생각하는 일이 없었고,
과거를 돌이키는 일은 그보다도 없었으며,
후회도 아쉬움도 없이
오로지 현재의 순간만을 두 손에 소중히 담고서
작은 것 하나하나에도 경탄하는 사람이었다.
- 셸리 리드 『흐르는 강물처럼』

‘오로지 현재의 순간만을 두 손에 소중히 담고서’.

우리는 이 '지금'이라는 가장 소중한 순간을,

늘 '언젠가'의 희망과 '그때'의 후회에 저당 잡힌다.


로또를 샀던 날들

이전 회사에 다닐 때, 그리고 퇴사 직후 나는 정기적으로 로또를 샀다. 끌어당김의 법칙에서 말하듯 아주 세세하게 구체적으로, 당첨이 되는 장면을 미리 느끼고, 그 이후의 일상을 상상으로 그려 보기도 했다. 심상화(Visualization)를 이용해 실제로 미국에서 복권에 당첨되었다는 어느 유튜브를 보고 나서는 더 열심히, 더 생생하게 상상하려 애썼다.


회사를 다닐 때 로또를 사는 이유는 늘 하나였다. 퇴사하기.

‘로또만 당첨되면 이 회사 그만두고 내 일을 시작해야지. 아니, 다 내려놓고 제주도로 가버릴까?’

시간이 흘렀고 로또에 당첨되지는 않았지만 나는 결국 퇴사를 했다. 퇴사 이후에도 나는 내 사업의 여유 자금을 마련하겠다는 이유로 로또를 샀다.


‘로또에 당첨되면 곧장 제품 출시하고, 광고도 크게 집행하고, 번듯한 사무실을 얻어서 좋아하던 사람들과 회사를 꾸려야지. 어차피 행복하려고 하는 일인데,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함께 하면 더 좋지.’

퇴사 두 달 뒤, 로또에 당첨되지는 않았지만 나는 제품을 출시했다. 광고비를 마음껏 쓰지는 못했지만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서 마케팅을 했고, 멋진 사무실과 정규 채용은 보류했어도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이어 온 사람들이 알음알음 도와주어 사업의 형태는 조금씩 갖추어졌다. 로또 당첨과는 무관하게, 삶은 어쨌든 앞으로 흘러갔다.


그러나 과거의 상처와 현재의 초조함,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은 마음속 어딘가에서 늘 잔잔한 소음을 만들었다. 이전 직장 동료로부터 건너 들은, 나를 힘들게 했던 상사의 소식이 여전히 분노를 불러왔고, 빠듯한 예산으로 하루하루를 이어가는 현실을 생각하면 가슴이 조여왔다. ‘사업이 망하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틈만 나면 고개를 들었고, 그 생각은 나를 또다시 로또 판매점으로 이끌었다. ‘이번에는, 이번만은..’


불안이 커질수록 기대는 더 간절해졌다. 로또 용지를 받아 돌아오는 길, 마음은 묘하게 가벼웠다. 그 가벼움은 미래가 보장되었다는 안도라기보다, 현재를 잠깐 미뤄둘 수 있게 된 일시적인 허락이었음을, 나는 조금 늦게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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