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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호영 Aug 25. 2021

히바_돌의 궁전 타쉬 하울리 3

타쉬 하울리 하렘의 벽면 타일 무늬


하렘의 두 번째 이완_기본 모티브와 단위 문양


하렘의 벽면을 자세히 보면 타일을 붙인 자국이 보입니다. 타일이 깨져 안쪽에 흙벽돌도 보입니다. 먼저 흙벽돌로 쌓아 올려 건물을 짓고 나중에 채색 타일을 붙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견 복잡해 보이는 무늬도 자세히 해부하면 정사각형 타일처럼 정사각형 단위로 분해할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칸의 이완에 이웃한 두 번째 이완을 보세요. 파란 바탕에 하얀색 곡선과 그 사이사이에 하얀색 작은 점이 찍힌 무늬가 있습니다(이 무늬는 반대편 이층 벽면에도 있다). 어떤 무늬를 분석한다는 것은 기본 모티브와 단위 문양을 찾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무늬에서 기본 모티브를 찾으면 아래 사진의 빨간색 정사각형입니다. 기본 모티브를 90도 회전대칭시켜 네 개를 묶으면 주황색 정사각형이 됩니다. 이것을 다시 선대칭시켜 네 개를 묶은 노란색 정사각형이 단위 문양입니다. 기본 모티브와 단위 문양을 구분하는 이유는 평행이동만으로 무늬를 만드는 단위를 찾기 위해서입니다.     


타쉬 하울리 궁전 하렘의 동쪽에서 두 번째 이완의 벽면 문양. 기본 모티브는 빨간색 정사각형이다. 벽면의 문양은 단위 문양인 노란색 정사각형을 평행이동하여 만들어진다.


위의 그림에서 노란색 정사각형 단위 문양을 사방으로 평행이동하면 벽면의 무늬가 만들어집니다. 기본 모티브는 물질의 원자처럼 가장 기본적인 단위이지만 이것을 평행이동만 해서는 무늬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기본 모티브를 회전대칭, 선대칭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대칭시켜 단위 문양을 만들어내는 거지요.                     

장인들과 수학자들이 한 일이 바로 이겁니다. 장인들이 아름다움의 관점으로 단위 문양을, 전체적인 무늬를 디자인한다면 수학자들은 단위 문양과 기본 모티브의 관계를 이론적으로 분석합니다. 그렇게 검증된 단위 문양을 평행이동하여 전체 무늬가 그려지면 아무리 여러 번 반복되어도 틈도 없고 모양이 어그러지는 경우도 안 생기지요. 우리가 무늬를 볼 때 기본 모티브와 단위 문양을 찾아보는 이유도 바로 이것입니다. 그들이 이 무늬를 어떻게 그렸는지 이해하려면 우리도 예술가와 수학자의 눈을 모두 갖춰야겠지요.    

  

세 번째 이완_사각형 무늬? 육각형 무늬?     


이번에는 세 번째 이완 정면의 무늬도 분석해볼까요? 언뜻 보기에 이 무늬는 사각형이 얼기설기 얽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 무늬는 자세히 분석하면, 기본 모티브는 알파와 비슷하게 각이 진 모양입니다. 이것을 60도씩 회전대칭 하면 단위 문양이 만들어집니다. 단위 문양은 정육각형이고요. 정육각형 격자를 평행이동 하면 이와 같은 문양으로 평면을 채워나갈 수 있습니다. 벽면의 무늬를 기본 모티브, 단위 문양으로 분석하면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타쉬 하울리 궁전 하렘의 동쪽에서 세 번째 이완 정면 무늬. 사각형이 얽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단위 문양은 정육각형이다.

        

   

한 가지 다각형으로 평면을 빈틈없이 채울 수 있는 도형은 삼각형, 사각형, 육각형뿐임은 알고 있지요? 물론 사각형은 정사각형이냐 직사각형이냐 마름모냐로 더 세분될 수 있고, 대칭도 선대칭을 사용하느냐 안 하느냐, 회전대칭은 몇 도를 하느냐에 따라 더 나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고려하였을 때, 평면에 그려지는 구조는 오직 17가지로 분류됨이 알려져 있습니다. 벽면 가득한 가지각색 무늬의 단위 문양은 17가지 구조 중의 하나라는 말이지요.      


평면 무늬는 17가지뿐 


이 세상의 모든 벽에 바른 벽지의 무늬가 17종류라는 말이냐고요? 네. 맞습니다. 믿어지지 않나요? 수학으로는 그렇게 안 보이는 구조를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수학의 힘이지요. 요즘엔 벽지에 무늬가 없는 것이 많지만, 예전에는 꽃무늬나 기하학적인 무늬 등 대부분 무늬가 있었지요. 물론 반복되는 무늬였고요. 


어렸을 적 심심할 때, 눈으로 벽지 무늬를 따라가면서 어디서부터 똑같은 문양이 반복되는지 살피곤 했던 기억이 있어요. 어렸을 때 본 것은 겉으로 보이는 무늬뿐이었지만 지금은 그것을 만드는 수학적인 구조를 볼 수 있게 되었어요. 수학자의 눈에는 처음에 분석한 타쉬 하울리 하렘의 두 번째 이완의 무늬와 아래 M.C 에스허르의 그림 <물고기>의 구조가 같습니다. <물고기>도 정사각형 기본 모티브를 90도 회전대칭 해서 단위 문양을 만든 구조입니다. 색깔을 무시하고 언뜻 보면 물고기 네 마리가 등 비느러미를 맞대고 있는 그림, 그렇게 반복되는 그림으로  보이겠지요. 그 밑에 안 보이게 깔려 있는 구조가 바로 정사각형입니다. 작은 정사각형 한 개가 기본 모티브이고 이것을 90도 회전대칭시켜 네 개를 묶은 것이 단위 문양이지요. 단위 문양을 평행이동하면 전체 그림이 만들어집니다.              


M.C.에스허르의 <물고기>의 단위 문양, 1938년. 색깔을 무시하면 작은 정사각형 한 개가 기본 모티브이고 이것을 90도 회전대칭시켜 네 개를 묶은 것이 단위 문양이다. 


왜 물고기 한 마리를 기본 모티브, 네 마리 묶음을 단위 문양으로 보지 않느냐고요? 아마도 M.C. 에스허르의 작품을 보면 답이 나올 겁니다. 그의 작품을 보면 새, 말, 도마뱀, 악마, 천사 등 많은 소재가 등장합니다. 눈에 보이는 소재 밑에 깔린 구조를 보면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평면 무늬는 17가지 이하로 분류됩니다. 눈에 안 보이더라도 패턴을 찾는 것! 그것이 수학이 하는 일입니다.  


M.C. 에스허르는 네덜란드 화가입니다. 대칭, 극한 등 수학 이론을 적용한 작품을 많이 남겼습니다. 이슬람의 기하학적인 문양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하지요. 언제 에스허르의 작품을 보며 이야기 나누고 싶습니다. 그의 작품에 담긴 아이디어를 찬찬히 읽어내다보면 인간의 사고가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 경탄하게 될 테니까요.      


타쉬 하울리 궁전 하렘의 두 번째 이완의 단위 문양은 180도 회전, 90도 회전을 사용한 정사각형 격자 문양이고 세 번째 이완의 단위 문양은 60도 회전을 사용한 정육각형 격자 문양입니다. 하렘을 한 바퀴 휘 돌아보니 문양 분석만 해도 오늘 이곳을 떠나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몇백 년 전에 수학자와 장인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문양을 구성하고 실제 도면을 그리면 기술자들이 타일을 굽고 벽면에 붙였을 텐데, 군데군데 깨져나간 채색 타일은 그 고단한 작업을 말해주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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