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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호영 Sep 01. 2021

히바_낙타가 되어 가리라 6

무함마드 라힘칸 마드라사



러시아의 보호국이 된 히바 칸국


그렇게 쿠나 아르크를 나와 넓은 광장에 섰는데, 멀리서 아잔 소리가 들립니다. 기도 시간을 알리는 소리입니다. 노래를 부르는 듯 리듬을 타는 소리가 귀에 감깁니다. 아랍어는 구절마다 고유한 운율이 있어 연설이나 낭송도 마치 노래처럼 들린다고 하더니, 약간은 단조롭고 애잔한 읊음. 창을 하는 소리와 비슷한데, 높낮이가 별로 없어 더 절제된 느낌입니다. 아랍어는 우리에게는 생소한 언어이지만, 매우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이지요. 아라비아반도는 물론 아프리카, 중앙아시아에서도 많이 사용합니다. 전 세계 인구의 1/7 정도가 아랍어를 사용하고, 아랍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나라도 스무 나라가 넘는다지요. 


아잔 소리는 길지 않았습니다. 주변엔 관광객뿐인지 특별한 변화는 보이지 않습니다. 요즘은 무슬림이라고 하더라도 하루 다섯 번 기도를 드리지 않는 사람도 많다던데 그 탓일 수도 있겠지요.  

   

광장 건너편은 무함마드 라힘칸 마드라사입니다. 이 마드라사를 지은 무함마드 라힘칸 II세는 1873년 사방에서 러시아가 공격하자 전투 없이 항복하였다지요. 피루츠라는 필명으로 활동한 시인이자 철학가이기도 했던 무함마드 라힘 II세는 계몽군주였다고 합니다. 그의 통치 기간에 많은 개혁이 이루어졌다고 하는데, 이 마드라사는 히바 칸국이 러시아의 보호국이 된 지 3년 후인 1876년에 완공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마드라사의 교육과정은 전통적인 교육을 하는 다른 마드라사와는 달랐다고 합니다. 이슬람 신학만이 아니라 수학, 천문학, 지리학과 같은 세속적인 학문도 가르쳤다고 하지요. 1910년 사망할 때까지 무려 46년간 재위하면서 다시 히바 칸국의 영광을 꿈꾸었을까요?    


「런던 뉴스」에 실린 러시아의 히바 침략 그림. 1873년 11월22일(왼쪽). 1873년경 아무다리야강을 건너는 러시아 군인들. 니콜라이 카라진, 1889년 캔버스 오일(오른쪽)

          

무함마드 라힘칸 마드라사 마당에 들어서자 지하로 내려가는 동굴의 입구인 듯한 석조물이 있습니다. 사라도바라고 부르는 일종의 물탱크입니다. 사막이나 초원의 저지대에 지어 비, 녹은 눈, 지하로 흐르는 물을 저장합니다. 커다란 반구 모양에 번듯한 출입구까지 갖춘 사르도바는 사막을 지나는 대상들의 숙소를 겸하기도 했지요. 여기 마당의 것처럼 입을 벌린 커다란 자벌레 모양의 사르도바는 궁전이나 마드라사 안에 설치했습니다. 큰 사르도바에서는 지하에 저장된 물까지 걸어서 들어가는데, 이렇게 작은 건 수압을 이용했습니다. 펌프처럼 끌어 올렸을까요? 나선 모양으로 생긴 스크루를 사용했을까요?     


수르나이, 카르나이로 흥을 돋구다     


신기하게 생긴 사르도바를 기웃거리는 사이에, 민속공연 준비가 거의 다 되었나봅니다. 여기 마당에서 줄타기 공연이 펼쳐질 예정입니다. 하얀 철재 기둥이 높게 세워져 있고 기둥 양쪽에 줄이 두 단계로 걸려 있습니다. 아래쪽은 한 줄, 위쪽은 두 줄. 그 줄은 땅에 박힐 때까지 오색 찬란한 삼각형 깃발을 달고 있습니다. 삼각형 깃발 아래 네 명의 공연단이 제각기 악기를 들고 연주합니다. 한 악사가 수르나이를 붑니다. 파란색 고깔모자를 쓴 너댓살 먹은 남자아이가 도블이라고 부르는 북을 칩니다. 아라비안나이트에서 금방 튀어나온 것같이 검은색 바지에 황금색 허리띠를 한 남자도 북을 칩니다. 똑같은 복장을 한 또 한 명의 남자가 자기 키보다 긴 카르나이를 붑니다. 한껏 분위기가 달아오릅니다.


이윽고 아라비안나이트의 두 남자가 하얀 철재기둥을 타고 올라갑니다. 한 명은 긴 장대를 들고 줄을 건너갑니다. 장대를 보니 우리나라에도 이런 놀이가 있다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줄타기를 주특기로 하는 광대가 있었지요. 언젠가 전통 연희가 벌어진 판에서 한 번 본 적이 있습니다. 흰색 한복을 입고 줄 위에서 온갖 묘기를 부리는데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마드라사 마당에서의 줄타기 공연의 절정은 꼬마 아이가 줄 타는 남자의 어깨 위에 올라섰을 때입니다. 모두가 놀라 탄성을 질렀습니다. 정작 꼬마 아이는 무심한 표정이었지만요.       

       

줄타기 공연 중, 아래로 사르도바가 보인다(왼쪽). 수르나이를 불고, 도블을 두드리고, 카르나이를 불며 한껏 흥을 내고 있다(오른쪽).

    

꼬마 아이의 순진무구한 표정에서 니체 생각이 났습니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인간 정신을 세 단계로 낙타, 사자, 아이에 비유하여 말했지요. 무거운 짐을 진 낙타, 기존의 세계 질서 속에서 누구보다 강한 존재인 낙타. 기존의 가치에 대항하는 정신을 가진 사자. 놀이하듯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아이, 저 아이야말로 춤추듯이 또는 유희하듯이 살아가는, 니체의 위버멘쉬 아닌가요? 차라투스트라의 입을 빌려 니체는 ‘인간은 짐승과 위버멘쉬 사이에 놓인 밧줄이다.’라고 말합니다. 인간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위버멘쉬를 향해 가는 다리로서 인간이 위대하다는 것이지요. 기억하시나요? 차라투스트라가 처음으로 길동무로 삼은 사람도, 사람들이 웃음거리로 삼고 그 죽음조차 멸시하는 줄타기 광대였지요. 

줄타기 공연을 보면서 니체의 글을 다시 생각합니다. 우리는 밧줄 위에서 어디쯤 와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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