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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바 May 23. 2024

자매는 자라지 않는다

뉴욕 레코드

93년생이 온다.


동생이 한국에서 오는 밤이었다. 입국장에 서서히 한국인들이 많이 보이는 걸 보니 인천발 비행기가 도착했다는 건 확실했다. 그러나 동생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여행을 그다지 즐기지 않고 길치인 동생은 비행기를 잘못 탈까 봐 걱정을 했다. 그럴 일 없다고 다독였던 나도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한 번은 동생이 인천공항으로 마중을 나온 적이 있다. 나는 동생을 웃긴다고 문어인형을 머리에 얹고 키득거리면서 입국장에 들어섰는데 어디에도 동생이 없었다. 전화를 했더니 잘못된 터미널에 가있었다. 어딘지 잘 모르겠다고 해서 결국 14시간 비행을 한 내가 버스를 타고 동생을 찾으러 가야 했다.


한참을 불안해하다가 엄마 이름이 매직으로 써진 캐리어를 들고 당당하게 걸어 나오는 93년생의 얼굴을 보니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장거리 비행이 힘들다고 찡찡거릴 줄 알았는데 의연하게 괜찮았다고 해서 놀랐다. 비행기에서 뭐 했냐니까 그냥 가만히 있었다고 해서 더 놀랐다.


아침이 되자 동생은 부스스한 머리로 내 방에 찾아왔다. 언니 나 배고파. 베이글 가게에 데리고 갔다. 동생은 메뉴판이 빼곡한 걸 보더니 언니가 골라줘라고 했다. 아이스커피까지 사들고 센트럴 파크로 향했다. 나무그늘이 드리워진 커다란 바위를 골라 그 위에 돗자리를 깔았다. 오월의 햇살이 반짝이고 봄바람이 살랑이는 날이었다. 우리는 아무 말없이 베이글을 씹고 커피를 마셨다.


나는 전날밤 우버 안에서부터 계속 동생에게 소감을 물었다. 미국에 온 게 실감이 나? 드디어 언니 사는 곳에 와본 느낌이 어때? T인 동생은 단답을 하는데도 몇 초 동안 고민을 했다. F인 나는 작년에 왔던 친구가 물어보지 않아도 자기 감상이나 느낌을 말해줬던 것을 떠올리며 답답해했다. 말이 없으니 즐거워하는지 알 수가 없어 계속 표정을 살피기도 했다.


베이글을 먹던 동생이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정말 좋다. 먼저 동생 입에서 나온 그 말이 무척 소중했다.


우리는 멍하게 앉아 시종일관 캉캉 짖으며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닥스훈트를 구경했다. 작은 나무 잎사귀들이 햇살 속에서 보석비처럼 내렸다. 동생 귀에 에어팟을 껴주고 비틀즈의 블랙버드를 함께 들었다.


All your life

You were only waiting for this moment to arise

생애 모든 순간동안

이 순간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잖아


나무 아래 함께 누워있는 이 순간, 우리가 어릴 때부터 함께 겪은 시련은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 있었다.


동생에게 이번엔 네가 듣고 싶은 노래를 고르라고 하자 선우정아의 동거라는 노래를 골랐다. 끈적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내가 고른 노래가 지금 순간에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지만 동생의 취향을 알아가는 게 좋았다.


우리 자매는 둘 다 삼십 대가 될 때까지 해외여행은커녕 국내여행도 다닐 여유가 없었다. 언니가 대학교 간다고 집 떠난 뒤부터 우린 줄곧 떨어져 살았잖아. 떨어져 산 시간이 같이 산 시간보다 더 길어. 동생은 이 말을 자주 했다. 언젠가부터 나는 동생의 친구들보다 더 동생을 몰랐다. 매일 연락을 해도 함께 시간을 보내야만 알 수 있는 취향이나 의견 같은 것에 나는 무지했다. 내가 아는 동생은 후각이 예민해 고생을 했고 매일 소보루빵을 먹었었다. 우리가 떨어져 있던 사이 동생은 좋은 향수는 줄줄 꿰고 있는 향수 애호가가 되었고, 소보루빵대신 햄버거에 미친 사람이 되었고, 술을 고래처럼 마셔도 안 취하는 술꾼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음식을 흘리면서 먹고 배시시 웃는 모습은 어릴 때와 똑같았다.


피크닉을 즐긴 우리는 레고 스토어에 갔다가 록펠러센터를 구경하고 세인트패트릭 성당에서 잠시 기도를 했다. 나는 동생이 다 커서 혼자 비행기를 타고 나를 보러 올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는 기도를 했다. 저녁에는 요새 가장 핫한 햄버거집에 동생을 데려갔다. 근처 워싱턴스퀘어파크까지 보여주고 나니 첫날 일정이 끝났다.


내가 사랑하는 장소들과 뉴욕에서 꼭 봐야 하는 곳들에 투어가이드처럼 부지런히 동생을 데리고 다녔다. 어릴 때도 데리고 다니기 좀 귀찮았는데 커서도 쉽진 않았다. 동생은 자꾸 배가 고팠고 내 걸음이 너무 빠르다고 했다.


성격이 급한 나는 분주한 거리 한복판에 멈춰 서서 교통 체증을 일으키고 있는 관광객들을 볼 때마다 짜증이 치밀었다. 동생에게 뉴욕에서는 빠르게 걸을 수밖에 없다고 힘들어도 빨리 걸으라고 매몰차게 말했다. 네가 꾸물거리면 그만큼 네 뒤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목적지에 늦게 된다고. 뒤에서 열심히 따라오는 동생을 보며 조금 미안해졌다.


그리고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동생을 데리고 등교하던 날들이 떠올랐다. 엄마의 당부대로 매일 동생의 손을 꼭 잡고 걸었었다. 그러다 어느 날은 무슨 이유로 등굣길에 동생과 싸우게 되었다. 조그맣던 동생은 뭘 안다고 늘 나와 다니던 큰길이 아닌 골목길로 용감하게 걸어 들어갔다. 나는 골목길이 끝나는 곳에 뛰어가서 조마조마하며 동생을 기다렸다. 아직 혼자 다녀본 적이 없는 꼬마아인데 길을 잃으면 어쩌지, 누구한테 잡혀가면 어쩌지라는 생각에 식은땀이 났던 것 같다. 태연한 표정으로 골목길에서 나오는 동생을 봤을 때 안도감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때나 지금이나 동생에게 새로운 경험을 시켜주는 일은 특별했다. 동생의 취향이 생기는 과정을, 동생이 자기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게 꽤 흐뭇했다. 그런 기회가 다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너무나 소중했다.


아이스크림을 안 사준다고 내 팔을 깨물던 동생이 지금은 억대의 공사를 책임지는 직장인이 되었다. 낯선 곳을 두려워하는 동생과 생경한 공간 속에서 부유하는 나. 행복할 수 없을 것 같아 내가 떠나온 곳에서 씩씩하게 어른다운 삶을 꾸려가는 동생. 시간 속에서 우리는 다른 길을 걷고 다른 모습이 되었지만 함께 있을 때면 다시 어려진다. 우리는 여전히 손을 잡고 등교하고 있는 것만 같다. 그 아이들이 아직 우리 안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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