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생각이 정말, 정말 많다. 머릿속이 복잡한 사람으로 삼십 년 넘게 살면서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면 인생은 순간 집중력에 의해 좌지우지된다는 것이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일을 하고 있는 두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한 사람은 잡생각에 빠져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고 다른 한 사람은 순간에 빠져 완전한 몰입을 한다. 둘의 경험은 백팔십도 다를 수밖에 없다.
미술관에서 그림을 감상하던 어느 날, 내 눈은 그림에 가있었지만 머릿속은 다른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걸작을 코 앞에 두고도 나는 감상은 커녕 나를 뚫어져라 주시하고 있는 보안직원에 대한 생각에 몰두해 있었다. 내가 뭘 잘못했나, 왜 저렇게 보는 거지라고 골똘히 생각에 잠길수록 아름다운 그림은 사라져 가고 나는 눈뜬 장님이 되었다.
명상은 순간에 몰입할 수 있는 힘을 키워준다. 숨에 집중하든, 소리에 집중하든, 내면의 느낌에 집중하든, 무언가에 의식을 모아야 하기 때문에 집중력 운동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가만히 앉아 눈만 감으면 되는 명상이 힘든 이유는 나노초마다 문을 똑똑 두드리며 찾아오는 생각을 무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무작위로 떠오르는 생각, 불쑥 찾아오는 생각 다 놀아주면 명상이 아니라 멍 때리기에 불과하다.
우주에서 제일 빠른 것은 빛이 아니라 생각이라고 한다. 무한대에 수렴하는 속도의 생각을 의식으로 붙잡아두기란 불가능하다(해탈과 무아의 경지에까지 오르는 명상은 초월적이니 논외로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상을 오래 할수록 집중력과 몰입력이 올라가는 걸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다시 집중으로 돌아오는 능력, 자동차로 치면 멈춘 상태에서 다시 속도를 내는 엑셀레이션 능력이 뛰어나진다.
이 변화를 느끼기 시작하면 명상 경험이 더 황홀해질 뿐 아니라 인생의 모든 것을 더 ‘잘' 하게 된다.
1) 악기 연주
모든 악기 연주가 그렇듯이 피아노 연주도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한다. 근데 나는 뭘 하든 '틀린다'는 것에 강박을 갖고 안달복달하는 편이라서 순간의 몰입을 즐기지 못했다. 생각이라는 버스가 올 때마다 그 어떤 저항 없이 올라탔고 여기가 어디지라며 길을 잃곤 했다.
근데 명상을 하고 나면 이 현상을 알아차리고, 빠져나오고, 다시 귀와 손가락의 감각으로 돌아가는 게 가능해진다. 쓸데없는 생각 없이 음악을 실시간으로 느끼면서 피아노 연주를 할 때와 온갖 잡생각을 따라갔다가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할 때는 재미와 능률면에서 천지차이다.
악기는 연주 내내 집중력을 요하는 일이니까 당연한 일이다. 흔히 flow에 빠졌다고 하는데 이게 바로 강한 집중력이 발휘되고 있어서 주변도, 잡생각들도 다 사라지고 그 순간 악기와의 교감만 남는 현상이다. 그러니까 잘 칠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된다. 영화 소울에서는 이걸 영혼이 발현되는 거라고 표현했다.
2) 스포츠
짧은 순간에 최대한의 능력을 발휘해야 하는 스포츠야말로 집중력 싸움이다. 탁구도, 요가도 심지어 달리기도 순간 집중력이 높을수록 능률이 올라가는데 리듬이 더 빠른 구기종목은 그 차이가 더 극명할 것 같다. 스태디움을 가득 채운 관중을 잊고, 이 순간이 팀과 나의 커리어에 미칠 영향도 잊고, 나와 공에만 집중했을 때 영화같이 절묘한 슛이 나온다.
마이클 조던, 레브론 제임스, 코비 브라이언, 스테픈 커리 등 명상을 하는 선수들이 농구계의 레전드가 된 건 당연한 결과다. 스테픈 커리는 매 농구 경기 전에 명상으로 정신을 또렷하게 유지한다고 한다.
스포츠인들이 명상을 하는 이유는 좋은 경기를 하기 위해서 뿐은 아니다. 명상은 면역 시스템을 강화시켜서 혹독한 훈련 뒤 회복시간을 줄여주고 부상의 위험을 감소시킨다.
3) 춤
춤을 출 때도 마찬가지다. 탱고를 배우며 춤이야 말로 생각에서 빠져나와 몸과 순간에 집중하게 해서 정신에 굉장히 좋은 활동이라고 느꼈다. 특히 파트너와 함께 하는 춤은 음악 속 박자와 멜로디를 느끼는 동시에 파트너의 움직임을 시시각각 알아차리고 반응해야 해서 집중력이 필수다. 집중력이 없다면 나사가 빠진 사람처럼 실수에 덤벙거리고 만다. 그럼 춤추는 것도 재미가 없어진다.
남들의 주목을 싫어하고 무대공포증이 있는 나는 탱고를 배운 지 일 년이 돼가는 지금도 자주 집중력을 잃는다. 열에 아홉은 춤을 추는 나를 보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생각을 시뮬레이션으로 돌리다가 실수를 하는 경우이다. 딴생각을 하며 근육 기억으로 어찌어찌 따라갈 수는 있어도 훌륭한 춤은 절대 출 수 없다. 명상을 꾸준히 해오지 않았다면 애초에 남들 앞에서 춤을 추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을 거다.
4) 게임
게임에서 순발력과 판단력만큼 중요한 게 집중력이다. 내가 종종 하는 게임은 배그와 마리오 카트인데 둘 다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한다. 다른 생각을 하다가 죽거나 게임을 망치기 십상인데 명상을 하고부터는 생각이 자꾸 딴 길로 샐 때마다 내 자신의 멱살을 붙잡고 다시 카트에 앉히거나 총을 쥐어주는 게 가능해졌다. 나보다 게임을 훨씬 자주 하는 사람들조차 속된 말로 발라버릴 때가 있는데 나는 그게 다 명상 덕이라고 생각한다.
5) 관계
인간관계에서 불쾌한 감정이나 생각에 휘둘려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일은 아주 흔하다. 명상으로 인해 지금, 여기로 돌아오는 집중력이 강해지면 상황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보는 능력이 생긴다. 과거의 상처나 미래의 두려움에 휩쓸려 성급한 언행으로 관계를 망치는 일도 자연스레 줄어든다.
과거에 나는 삐쟁이였다. 억울하고 섭섭한 감정을 쉬이 벗어나지 못했고 인지조차 못할 때가 많았다. 나이를 먹고 더 유해진 것도 있지만 명상으로 자꾸 현재로 돌아오는 집중력이 생기자 사사로운 감정보다 중요한 것들을 보는 시각이 생겼다. 숨에 집중하면 말끔히 사라지는 생각들처럼 미운 감정들도 물러가고 나면 남는 것은 사랑이라는 걸 깨닫게 됐다.
사실 명상을 하면 인생의 모든 것이 쉬워진다고 보면 된다. 인생의 능률은 집중력과 정비례한다. 그리고 능률은 즐거움과 정비례한다.
순간 집중력은 행복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누군가와 어떤 장소에서 어떤 경험을 할 때 자주 다른 생각에 잠기는 사람은 그 자리에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우리의 몸과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정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인들처럼 완전한 해탈을 하지 않는 이상 나노 초 단위로 움직이는 생각에서 자유로워지는 방법은 없다. 명상으로 집중력이 좋아졌다고 해도 수천, 수억 가지 생각은 늘 공격할 기회를 찾아 스탠바이 중이다. 따라서 완벽한 집중력도 없고 정신훈련은 평생 안고 가야 할 숙제이다. 그래도 명상으로 손해 볼 것은 아무것도 없다.
Be here now
지금, 여기에 있으라
정신건강에 중요한 이 말이 그 핵심이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해야 더 즐거워지고 더 잘하게 되고 고로 더 행복해진다.
명상은 1분만 해도 효과가 있다. 화장실에 갔을 때,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할 때, 화가 머리 끝까지 났을 때 딱 1분만 눈을 감고 숨에 집중해보자. 자꾸 생각이 떠오르는 건 당연한 현상이니 자책 말고 다시 숨으로 돌아온다. 단 1분이라도 명상이 주는 행복과 자유를 꼭 느껴보시기를 소망한다.
*사진 출처: Naseem Buras, Sebastien Le Derout, Zac Durant, Huffington Post, Daniel Monteiro, Des Réci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