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 브런치 하세요

by a universal seoulite

'사람들이 귀가를 서두를 무렵, 나의 하루는 시작된다.'


영화 '심야식당은' 이렇게 마스터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퇴근길 손님들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면 마스터는 손님이 원하는 요리나 손님에게 필요한 요리를 한다. 따뜻한 오렌지빛 심야식당 조명 아래에서는 누구나 주인공이 될 수 있으며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고 마음을 채울 수 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우리 회사 근처에도 저런 식당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몇 해 전, 나는 우연히 들어갔던 한 카페에서 그토록 바랬던 나만의 오렌지빛 온기를 찾았다. 마스터 같은 바리스타들이 변함없이 반겨주고 이름 모르는 손님들과 삼삼오오 모여서 퇴근 후 한 잔을 즐길 수 있던 곳, 나만 알고 숨겨두고 싶은 도심 속 오아시스 같은 카페가 어느 날 내 인생에도 생겼다.


"저, 오늘 살면서 처음으로 치마 입었어요."


한 마스터가 수줍게 얼굴을 붉히며 얘기했다. 그러고는 한참을 골똘히 생각하더니 오늘은 '이 빵이 어울릴 것 같아요'라면서 크림빵 하나를 내민다. 그녀가 내민 것은 빵이 아니라 정성이고 마음이었다. 그 어떤 말보다도 효과적인 위로와 힐링이었다. 그녀가 치마 얘기를 할 때는 마치 내가 옆집 지오바니 아저씨가 된 기분이었다. 말하자면 오늘 우리 집 화분에 핀 바질 꽃 따위의 시시콜콜한 얘기를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내 시간이 평화롭게 머물다 가는 그런 곳이 바로 그 카페였다.


심야식당 마스터가 그러했듯 가끔 힘들 때면 말없이 따뜻한 한 잔을 내어주며 위로를 해주었고, 오늘은 내게 어떤 커피가 어울릴지 커피의 온도는 몇 도가 적당할지 고민해 주었고, 내가 좋아하는 커피의 취향을 존중해 주었고, 오랫동안 내가 보이지 않으면 안부를 궁금해했던 마스터들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내가 좋아했던 이유는 '자연인'으로서 내가 온전히 편안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말할 필요도 없었고 물어보지도 않았기 때문에 나는 온전히 커피를 즐기는 일에만 집중하면 되었다. 명함과 직급으로 치장한 '사회인'으로서 나를 내려놓고 말랑말랑한 감성을 채우고 나면 집에 가는 발걸음이 그렇게 경쾌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코로나 방역지침 때문에 마스크를 벗고 평화롭게 커피를 마시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진 데다 근무지를 옮기게 되면서 나의 심야 카페는 자연스레 멀어지게 되었다. 그 공허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날 선 하루를 보낸 날이면 더욱 간절하게 마스터들이 생각났다. 마침 그때 내가 읽고 있던 책을 통해서 우연히 '브런치'를 알게 되었다.


퇴근 후 나는 노트북 앞에 앉아서 오늘은 어떤 글이 올라왔나 찾아본다. 브런치에는 나와 같은 직장인들 글이 많아서 읽다 보면 '맞아, 맞아!'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얼굴도 모르는 사람을 응원하기도 하며 내 이야기도 들려주고 싶어 지게 된다. 브런치는 퇴근 후 내가 마음을 쉬어가는 나의 온라인 심야식당이 되었다.


처음에는 글솜씨가 없는데 괜찮을까 , 무슨 글을 써야 할까 고민했다. 그래서 일단 쓰고 싶은 무엇이든 무작정 써서 나의 서랍에 쌓기 시작했다. 글을 잘 써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글쓰기를 거듭하다 보니 신기하게도 글쓰기를 통해서 내 마음의 체증이 내려가는 신기한 경험을 하기 시작했다. 글을 잘 쓰고 못쓰고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고 글쓰기라는 행위를 통해서 내가 얻는 기쁨이 더욱 커져갔다. 글을 쓰면 힐링이 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은 있었지만 글쓰기가 스트레스지 어떻게 힐링이 된다는 말인가라고 생각하며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정말 그랬다.


나는 아직 작가 신청을 하지 않았다. 어느 날 내가 용기를 내어 작가 신청을 하고 운 좋게도 심사를 통과하게 된다면 내 글이 누군가에게 심야식당이 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해본다. 누구라도 편하게 들러서 글을 읽고 즐겁게 머물다 갈 수 있었으면 한다. 만약 단 한 분이라도 내 글을 읽고 공감을 하고 위로와 힐링을 느낄 수 있다면 더없이 기쁠 것 같다. 그렇게 모르는 사람들이 교감할 수 있는 것이 어쩌면 우리가 인생에서 만날 수 있는 기적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나는 브런치를 열어 마스터들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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