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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광석 Sep 16. 2024

미국 국회의 어떤 의원은 개자식이 아니다!

방학중은 경상북도 영덕 출신으로 조선 후기에 활동했다. 하루는 방학중이 밤늦도록 술을 마시다가 그만 순라 시간을 넘기게 되었다. 급히 집으로 돌아가는데, 저 멀리서 순라군들이 다가오는 게 아닌가. 다급해진 방학중은 담벼락에 바싹 붙은 후에 두 팔을 번쩍 들었다. 방학중을 발견한 순라군이 다가와서 물었다.


“이것이 무엇이냐?”


방학중이 대답하기를, “빨래요.”


“빨래가 말을 하나?”


“입은 채로 빨래한 거요.”



그 말을 들은 순라군들은 사람인 줄 알면서도 웃으면서 그냥 갔다고 한다. 방학중의 언행처럼 남을 웃기려고 일부러 하는 말이나 몸짓을 ‘익살’이라 한다.



이항복은 임진왜란 때 행주대첩으로 이름을 떨친 도원수 권율의 딸과 19세에 혼인했다. ‘농담의 천자’라고 불린 이항복과 장인인 권율은 서로 희롱하기를 좋아했다. 더운 여름날 입궐하게 된 이항복이 장인에게 말했다.


“오늘은 날씨가 무척 더워 장인께서 견디시지 못할 것 같습니다. 버선을 벗고 신을 신는 게 좋겠습니다.”


권율은 사위의 말이 옳다고 여겨 버선을 벗고 신을 신었다. 장인과 함께 대궐에 들어간 이항복이 왕 앞으로 나아가 아뢰었다.


“날씨가 몹시 더워서 나이든 재상들이 의관을 갖추고 있기가 어려울 듯하옵니다. 청하옵건대 신을 벗도록 해주시옵소서.”


선조는 매우 옳은 말이라고 응답했다. 그리하여 영의정부터 신을 벗게 되었는데, 권율은 자신의 차례가 되자 이항복을 바라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선조는 권율이 임금 앞에서 신을 벗기가 어려워 망설이는 줄 알고 내관에게 신을 벗겨 주라고 명했다. 그런데 신을 벗기고 보니 맨발이었다. 권율은 도포자락으로 발을 가리고 엎드려 아뢰었다.


“이항복에게 속아 이리 되었나이다.”


임금은 손뼉을 치며 크게 웃었고, 여러 신하들도 배를 움켜쥐었다.



오성 이항복과 한음 이덕형은 평생 동안 친구로 지내며 우정을 나누었다. 두 사람은 어려서부터 재치 있는 장난을 잘 쳤는데 그것은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했다. 한번은 대궐에서 오성과 한음이 서로 내가 ‘아비’라며 농담하는 것을 본 임금 선조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대체 누가 아비이고, 누가 아들이오?”


임금의 우스갯소리에 오성과 한음은 서로 더욱 자기가 아비라고 우겼다.


“그럴 것 없이 오늘은 내가 아비와 아들을 확실하게 가려 주겠소.”


선조는 신하에게 종이쪽지 두 장에 한자로 ‘아비 부’ 자와 ‘아들 자’ 자를 쓰게 했다. 그리고는 오성과 한음에게 뒤돌아 앉으라고 하더니 종이쪽지를 접어서 두 사람의 등 뒤 바닥에 하나씩 놓았다.


“자, 이제 돌아앉아서 앞에 놓인 종이를 한 장씩 집어서 펴 보시오.”


오성과 한음은 얼른 종이쪽지를 집어 펴 보았다. 그러자 한음이 먼저 “제가 아비입니다” 하며 ‘아비 부’ 자가 써진 종이를 펼쳐들고 즐거워했다. 그런데 오성은 얼굴을 찌푸리기는커녕 싱글벙글하고 있었다. 선조가 이상해서 물었다.


“그대는 ‘아들 자’ 자를 집었을 텐데 뭐가 좋아서 그리 싱글벙글하오?”


오성은 무릎 위에 펴놓은 종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늘그막에 아들을 얻어 무릎 위에 앉혔으니 이 아비의 마음이 어찌 즐겁지 않겠습니까?”


오성의 재치 있는 농담에 선조는 무릎을 탁 치며 껄껄 웃고 말았다.


이렇듯 이항복은 농담의 천자이자 ‘익살의 제왕'이었다.



익살과 비슷한 뜻을 지닌 외래어가 바로 유머이다. '유머'는 남을 웃기는 말이나 행동을 뜻한다. 유머에 속하는 유형 가운데 언어유희와 풍자가 있다.



‘언어유희’는 말이나 글자를 소재로 하는 놀이를 의미한다. 다음 이야기에서 상놈이 한 말이 동음이의어를 이용한 언어유희에 해당한다.



옛날에 한 양반이 길을 가다가 소나기를 만났다. “어, 차가워” 하면서 그 양반은 서둘러 가까운 처마 밑으로 뛰어들었다. 그 처마 밑에는 상놈 여럿이 비를 긋고 있었다. 양반은 허둥댄 게 무안하여 헛기침을 하였다. 어느새 소나기가 부슬비로 바뀌어 있었다. 양반은 서둘러 자리를 뜨려고 길로 나섰다. 그때 한 상놈이 말했다. “개거든 가시오.” 웃음이 터졌다. 양반은 화가 났지만 참았다. 마침내 비가 그쳤다. 양반이 막 처마 밑을 나서려는데, 아까 그 상놈이 말했다. “에이, 다 개니 가야지.”



상놈이 말한 ‘개거든’은 ‘흐리거나 궂은 날씨가 맑아지거든’이라는 뜻과 ‘당신이 개라면’이라는 뜻을 동시에 지닌다. ‘다 개니’도 ‘비가 그쳐서 날씨가 맑아지니’와 ‘양반이나 상놈이나 똑같이 개인 셈이니’로 해석할 수 있다. 상놈이 언어유희로 양반을 조롱한 것이다.



언어유희는 다음 글처럼 발음의 유사성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바람둥이의 웃음소리는 어떨까. ‘걸걸걸(Girl Girl Girl)’이다. 남자 바람둥이는 ‘허허허(her her her)’, 여자 바람둥이는 ‘히히히(he he he)’라고 웃기도 한다. 또 살인마는 ‘킬킬킬(kill kill kill)’, 요리사는 ‘쿡쿡쿡(cook cook cook)’, 축구선수는 ‘킥킥킥(kick kick kick)’, 수사반장은 ‘후후후(who who who)’, 그리고 어린아이들은 ‘키득키득키득(kid kid kid)’ 하고 웃는다. 표음문자인 한글의 특성을 이용해 우리말과 영어를 절묘하게 결합한 유머다.



김삿갓이 금강산을 여행하다가 지친 몸을 쉬려고 절을 찾았다. 절에서는 그를 귀찮아하며 쫓아내려고 하였다. 그는 중과 말다툼을 하던 끝에 좋은 시를 지으면 절에 묵어도 좋다는 말을 들었다. 중은 심술궂게도 ‘타’라는 어려운 운을 띄웠다. 김삿갓은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말로 시 한 구를 읊었다.


“사면 기둥 붉어타.”


중은 다음 운도 ‘타’를 불렀다. 잠시의 뜸도 들이지 않고 그는 다음 구를 읊었다.


“석양 행객 시장타.”


이어서 다음 운도 또 ‘타’를 부르자 그는 중을 노려보며 쏘아댔다.


“네 절 인심 고약타.”



중은 그만 당황하여 안으로 물러났고, 김삿갓은 절에서 유유히 먹고 잘 수 있었다. 김삿갓이 즉흥적으로 지은 시는 중의 고약한 인심을 풍자한 것이다. ‘풍자’는 남의 결점을 다른 것에 빗대어 비웃으면서 폭로하고 공격한다는 뜻을 지닌 말이다.



윈스턴 처칠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영국 총리로서 연합국의 승리를 이끌어 냈고, 《제2차 세계대전 회고록》으로 노벨문학상까지 받았다. 그는 영국 최초의 여성 하원의원인 낸시 애스터와 입씨름을 벌였다.



낸시가 “여보시오, 처칠 씨. 당신은 왜 이렇게 술에 취해 있는 거요”라고 핀잔을 주었다. 그러자 처칠이 이렇게 답했다. “내 술은 내일 아침이면 말끔히 깨겠지만, 당신의 그 추한 얼굴은 내일 아침이 되어도 달라지지 않을 거요.”



이에 발끈한 낸시가 “처칠 경, 만일 당신이 내 남편이라면 식사할 때 마시는 음료수에 독을 넣겠소”라고 쏘아붙였다. 처칠은 “마담, 만일 당신이 내 아내라면 나는 그것을 기꺼이 마셔버리겠소”라고 응수했다.(한승헌, 《한승헌 변호사의 유머기행》)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라함 링컨은 원숭이를 닮은 듯한 외모 때문에 못생겼다는 지적을 자주 받았다. 중요한 선거에서 상대 후보가 링컨에게 “당신은 사람과 원숭이의 두 얼굴을 가진 이중 인격자야!”라고 비난했다. 링컨은 “내가 정말 두 얼굴을 가졌다면 이 중요한 자리에 굳이 못생긴 얼굴을 가지고 나왔겠습니까?”라고 했다. 이 유머 덕분에 링컨은 그곳에 있던 사람들을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었다.



미국의 저명한 작가 마크 트웨인은 1870년에 장편소설 《도금시대》를 발표하여 미국 정부의 부패상과 정객, 자본가들의 비열한 정책을 신랄하게 폭로하였다. 이 소설이 출판된 후 얼마 안 되었을 때 그는 한 모임에서 기자가 묻자 “미국 국회의 어떤 의원은 개자식이다!”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며칠 후 기자는 마크 트웨인이 한 말을 그대로 신문에 발표하였다. 그러자 국회의원들은 일제히 사실을 똑똑히 밝히거나 잘못을 인정하는 성명을 신문에 발표하라고 요구했다. 그렇지 않으면 법률적 수단을 쓰겠다고 위협하였다.



며칠 후 《뉴욕타임스》에 다음과 같은 마크 트웨인의 성명이 실렸다.


“며칠 전에 나는 모임에서 ‘미국 국회의 어떤 의원은 개자식이다!’라고 말했다. 그 후 어떤 사람들은 잘못을 인정하라고 나에게 계속 협박하였다. 여러 번 고려해 보았는데 내가 모임에서 한 말은 그리 타당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실에도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오늘 특별히 성명을 발표하여 나의 말을 다음과 같이 수정한다.


“미국 국회의 어떤 의원은 개자식이 아니다!”(김득순, 《이야기 속의 논리학》)



마하트마 간디가 영국에 대학을 다니던 시절에 피터스 교수는 식민지 인도 출신의 학생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하루는 간디가 대학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갔는데 빈자리가 거의 없었다. 마침 피터스 교수 옆자리가 빈 걸 본 간디는 그곳에 가서 앉았다. 그러자 피터스는 거드름을 피우며 그에게 말했다.


“자네가 아직 잘 모르는 모양인데 돼지와 새가 함께 앉아서 식사를 하는 경우는 없다네.”


간디는 “걱정하지 마세요, 교수님. 제가 다른 곳으로 날아갈게요”라고 대꾸했다.


잔뜩 약이 오른 피터스는 다음번 시험에서 간디에게 불이익을 주려고 했으나 흠잡을 데가 없게 답변했기에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줄 수밖에 없었다. 피터스가 분을 삭이며 간디에게 질문했다.


“길을 걷고 있다가 두 개의 자루를 발견했네. 한 자루에는 돈이 가득 들어 있고, 다른 자루에는 지혜가 가득 들어 있네. 둘 가운데 하나만 줍는다면 어떤 쪽을 택하겠는가?”


간디는 “그야 당연히 돈 자루죠”라고 대답했다.


피터스가 “나라면 지혜를 택했을 거네”라고 하자 간디는 싱긋 웃으며 “그야 뭐, 각자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선택하겠지요?”라고 말했다. 몹시 불쾌해진 피터스 교수는 간디의 시험지에 '멍청이(idio)'라고 써서 돌려주었다. 시험지를 받은 간디는 “시험지에 점수는 안 적혀 있고, 교수님 서명만 있는데요”라고 맞받았다.



아일랜드의 극작가 버나드 쇼가 《무기와 인간》이라는 극본을 써서 상연한 적이 있었다. 첫 회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버나드 쇼는 흥분한 표정으로 무대에 올라가 관중의 환호에 답례 인사를 했다. 관중들은 열렬한 박수로 그에게 찬사를 보냈다. 박수가 끝나갈 무렵에 한 젊은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큰소리로 외쳤다.


“버나드 쇼, 당신의 극본은 누가 봐도 형편없는 작품이오. 공연을 즉각 중지하시오.”


그러자 극장 안은 일순간에 물을 끼얹은 듯이 조용해졌다. 관중들은 버나드 쇼가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해했다. 버나드 쇼는 여유 있게 웃으면서 아주 공손한 말투로 대답했다.


“제 작품에 대한 평가에 저도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정말로 저의 작품은 형편없는 것이지요.”


이렇게 말하고는 관중을 한번 둘러보고 다시 젊은이를 향해 말했다.


“그런데 손님, 한 가지 안타까운 일이 생겼습니다. 당신과 나 두 사람만으로 어떻게 저 많은 관객의 열렬한 찬사를 막을 수 있을지 걱정됩니다.”


버나드 쇼가 재치 있는 유머로 대응하자 조용하던 장내는 갑자기 폭소와 함께 또다시 우렁찬 박수가 터져 나왔다. 공연히 버나드 쇼를 골탕 먹이려던 젊은이는 환호 소리를 뚫고 재빨리 사라져 버렸다.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에게도 웃음을 잃지 않고 차분한 마음으로 대처하는 것은 매우 효과적이다. 유머는 공격이나 비난을 당할 때도 큰 상처 내지 않고 쓸 수 있는 가장 유효한 무기가 된다. 상황에 휩쓸려 자기를 잃어버리면 유머를 발휘할 수 없다. 유머는 대상에서 한발 떨어져 여유를 지닐 때 우러나오는 자질이다.



신경과학자들이 ‘기능성 자기공명영상’을 이용해 유머를 구사할 때 사람들의 머리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들여다보았다. 유머를 이해하는 동안 전두엽을 포함해 뇌의 전 영역이 골고루 활동하면서 복잡한 두뇌활동 패턴을 보였다. 유머야말로 가장 복잡한 사고 과정을 필요로 하는 인간의 고등한 지적 활동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물리학자 정재승은 2005년 한겨레에 기고한 글에서 유머를 구사하는 사람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했다.


“방송 작가 송지나는 한 강연에서 ‘어렵고 힘든 위기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사람’을 가장 멋진 사람으로 꼽은 적이 있는데, 유머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고 있는 말이 아닌가 싶다. 위기의 순간에서도 자신이 놓인 상황을 한발 물러나 전체적인 관점에서 파악하고, 주어진 상황을 약간 뒤틀어볼 만한 여유가 있는 사람. 유머를 구사할 만큼 똑똑하고 지적이어서 어떤 위기상황도 잘 헤쳐 나갈 수 있을 것 같은 사람. 이런 사람과 함께라면 험한 세상도 무섭지 않을 테니 말이다.”(정재승, <익살스런 농담 한마디도 미분 풀이만큼 지적 작업>)



경상남도 김해에 있는 분성여고는 해마다 학생들에게 수학여행 유의 사항을 묻고 답하는 방식으로 전달한다. 객관식으로 출제한 문항 가운데 이런 질문과 답변이 있었다.


자기가 타고 있는 버스의 번호와 자리를 (① 정확히 기억한다. ② 잊어버려 미아가 된 후 선생님에게 핸드폰을 한다. ③ 잊어버리고 그냥 운다.)


버스 안에서 생긴 쓰레기는 (① 내릴 때 가방에 챙겨 넣는다. ② 차창 밖에 버리고 벌금을 문다. ③ 두고 내려 분성인의 얼굴에 먹칠을 한다.)


휴식을 취하거나 식사한 자리는 (① 짐승이 배설물로 자신의 영역을 표시하듯이 흔적을 유감없이 남긴다. ② 흔적 없이 깨끗이 치운다.)



아마 분성여고 학생들은 왁자지껄 웃어 대며 반응했을 것이다. 유의 사항을 알리는 형식과 내용을 기발한 발상으로 파괴하여 자연스럽게 관심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재미있는 말이나 날카로운 말로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유머가 지닌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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