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서쪽 끝에 위치한 기니비사우는 50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나라의 오랑고섬에서는 여성만이 프러포즈할 수 있는데, 남성은 절대로 여성의 프러포즈를 거절할 수 없다. 그래서 오랑고섬의 여성은 자기 마음에 꼭 드는 남성과 결혼할 수 있다. 그런데 결혼 준비부터 마무리까지 모두 여성이 해야 한다.
결혼을 결심한 여성은 우선 바닷가에서 물에 떠내려가는 나무와 풀을 거두어 들여야 한다. 나무로 기둥을 만들고 풀로 지붕을 엮어야 하기 때문이다. 두 가지 재료를 다 모은 다음에는 진흙으로 벽돌을 만들어 신혼집을 지어야 한다. 이 모든 작업을 혼자 해내야 하는데, 보통 4개월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집이 완성되면 물고기를 담은 접시를 들고 평소에 점찍어 둔 남성을 찾아간다. 이때 여성이 건네는 접시를 상대 남성이 받아드는 순간 결혼이 성립된다.
여성만이 프러포즈할 수 있는 오랑고섬의 풍습은 프러포즈는 남자들이 해야 한다는 통념에 벗어난 것이다. 통념은 일반적으로 널리 통하는 개념이나 생각을 뜻하는데, 시대와 지역에 따라 통념도 달라질 수 있다. 도종환 시인이 《마지막 한 번을 용서하는 마음》에서 전하는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듯이 통념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텔레비전에서 아주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보았다.
남자가 시집가는 나라!
제목부터 궁금증을 가지게 하지 않는가. 남자가 시집가는 나라라니. 중국의 남쪽 동남아시아 소수민족인 이 나라는 남자가 지참금을 싸 들고 여자네 집으로 시집을 간다. 그냥 데릴사위로 들어가는 게 아니다. 여자네 집에 가서 잠깐 살다가 다시 남자네 집으로 와서 사는 기간이 정해져 있는 처가살이도 물론 아니다.
정말 여자 집에 와서 결혼하고 그 동네에서 눌러사는 것이다. 여자가 일해서 평생 남자를 먹여 살려 주니까 시집오는 날부터 여자의 어머니와 가족들이 모여 앉아 남자가 가져온 지참금을 보며 ‘이게 뭐냐, 너무 적다’ 하며 놀리곤 했다.
동네 풍경을 보여 주는데 깜짝 놀랐다. 여자들이 전부 밭에 일하러 간 사이 마을 곳곳에서 남자들이 아이를 업거나 안고 서서 모여 논다. 모여서 수다를 떨거나 소일거리를 만들어 낄낄거리며 논다. 그런 소일거리 중 하나로 뱀과 토끼만 한 쥐를 서로 싸움시켜 둘 중에 하나가 죽으면 그걸 잡아 구워 먹는다. 왜 그걸 먹느냐고 물으니까 정력에 좋아서라고 대답한다. 사내아이들은 어려서부터 뱀을 잡아 꼬치에 꿰어 구워 먹으며 다닌다. 물론 정력을 기르기 위해서다. 여자를 위해 온 힘을 다해 봉사하는 일, 그게 남자가 할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임을 어려서부터 몸에 배게 하는 것이다.
여자가 밭에 나가 일하다가 밥을 먹으러 들어오면 수다 떨며 놀던 남자들은 전부 집으로 들어간다. 여자가 벽에 기대고 앉아 쉬고 있는 여자와 부엌에서 반찬을 볶고 지지는 남자의 태연자약한 표정을 번갈아 보여 주는 화면을 지켜보면서 재미있다는 생각과 함께 사회 규범과 성 역할이란 무엇인가를 근본적으로 다시 되짚어 보지 않을 수 없었다.”(도종환, 《마지막 한 번을 더 용서하는 마음》)
이 나라 사람들은 여자가 밖에서 일하고 남자가 집에서 살림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이렇듯 통념은 시간적 배경이나 공간적 배경에 상관없이 고정불변하는 것이 아니다. 천동설이 코페르니쿠스가 주창한 지동설로 대체된 것은 인류 역사에서 통념이 바뀐 가장 획기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마르셀 뒤샹의 ‘샘’은 통념을 뒤엎고 창작 행위에 대한 개념을 전복시킨 예술작품이다. 마르셀 뒤샹은 1917년 뉴욕에서 열린 독립미술가협회전에 ‘샘’이라는 조각 작품을 내놓았다. 그 작품은 소변기의 편편한 부분을 바닥에 대고 엎어놓은 채 ‘R. Mutt 1917’이라고 서명한 것이었다. Mutt는 'Mott Works'라는 위생도기 판매회사의 이름에서 따왔다. 그러나 ‘모트’라는 말이 너무 뻔해 발음이 비슷한 ‘머트’로 바꿨다. ‘R’은 프랑스 속어 ‘Richard’의 약자로 ‘벼락부자’를 뜻한다.
‘독립미술가협회전’은 심사위원회도 없고 상도 주지 않는 전시회이다. 연회비로 6달러만 내면 누구나 두 점을 전시할 수 있다. 그러나 작품 ‘샘’은 전시하는 기간 내내 전시장 칸막이벽 뒤에 놓여 있었다. 아무도 이것을 ‘미술 작품’으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사건으로 미술계는 발칵 뒤집어졌다. “흔히 볼 수 있는 남자 소변기를 전시장에 들여 놓아 예술을 모독했다”는 혹평이 쏟아져 나왔다.
뒤샹은 예술잡지에 ‘샘’의 사진을 실으며 “흔한 물건 하나를 구입해 새로운 제목과 관점을 부여하고, 그것이 원래 가지고 있던 실용적 특성을 상실시키는 장소에 가져다 놓은 것이다”라고 밝혔다.
2004년 12월 1일, 영국의 미술가와 미술사가 500명이 투표했다.
“지난 20세기 100년 동안 가장 크게 영향력을 미친 작품이 무엇인가?”
‘색의 마술사’라는 앙리 마티스의 ‘붉은 스튜디오(1911)’가 5위, 입체파의 거장 피카소의 ‘게르니카(1937)’가 4위, ‘팝 아트의 선구자’ 앤디 워홀의 ‘마릴린 먼로 2면화(1962)’가 3위를 했다. 2위는 피카소가 그린 ‘아바뇽의 처녀들(1907)’이 선정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명작들을 제치고 1등으로 뽑힌 작품이 바로 마르셀 뒤샹의 ‘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