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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광석 Sep 11. 2024

마음의 붓으로 인생을 보듬은 걸작 2

1833년 유배에서 풀려난 김노경은 2년 뒤 다시 관직에 올랐다. 부친이 귀양살이를 하는 동안 관직에서 물러나 있었던 김정희는 1836년 성균관 대사성으로 임명되었다. 그런데 이듬해 김정희의 아버지 김노경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1840년 안동 김씨 세력이 김노경의 죄를 다시 끄집어내었다. 김노경을 대역죄인으로 만들어서 김정희를 제거하기 위한 음모가 시작된 것이었다. 이 음모에 휘말린 김정희는 겨우 목숨을 구해 제주도로 귀양을 떠나게 되었다. 귀양살이의 어려움은 하나둘이 아니었다. 낯선 풍토, 입에 맞지 않는 음식, 잦은 질병으로 김정희는 무척 고생했다.



이상적은 스승 김정희가 귀양살이하는 동안 정성을 다하여 북경에서 구해온 책을 보내주었다. 그는 북경을 다녀올 때마다 김정희에게 청나라 학계의 최신 정보를 전해주었고, 진귀한 책들을 구해다 주었다. 1843년 이상적은 《만학집》과 《대운산방문고》를 제주도로 보냈다. 김정희는 이 책들을 구하려고 스승으로 섬겼던 완원의 아들에게 부탁했으나 구하기 어렵다는 말을 듣고 실망한 적이 있었다. 이상적은 이듬해에 79권짜리 책인 《황조경세문편》을 보내주었다. 추사 김정희는 우선 이상적의 정성에 감격하고 또 감격했다.



김정희는 언제나 변함없이 자신을 대하는 이상적을 떠올리며 세한도를 그렸다. ‘세한(歲寒)’은 공자가 말한 ‘세한연후지 송백지후조(歲寒然後知 松柏知後凋)’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이 구절은 ‘한겨울 추운 날씨가 되어서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알 수 있다’는 뜻을 지닌다. 사람도 어려운 지경을 만나야 진정한 친구를 알 수 있는 법이다. 김정희는 세한도에서 창문 하나만 있는 집 좌우로 소나무 두 그루와 잣나무 두 그루를 세워 놓아 자신의 처지와 이상적의 절개를 빗대어 표현했다.



김정희는 그림 왼쪽에 종이를 이어 글씨를 써 내려갔다.


“세상의 풍조는 오직 권세와 이권만을 좇는데, 책들을 구하기 위해 심력을 쏟았으면서도 권세가 있거나 이권이 생기는 사람에게 보내지 않고, 바다 밖의 별 볼 일 없는 사람에게 보내면서도 마치 다른 사람들이 권세나 이권을 좇는 것처럼 하였다.


공자께서는 ‘겨울이 되어서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하였다. 소나무와 잣나무는 사시사철 시들지 않는다. 겨울이 되기 전에도 소나무와 잣나무이고, 겨울이 된 뒤에도 여전히 소나무와 잣나무인데, 공자께서는 특별히 겨울이 된 뒤의 상황을 들어 이야기한 것이다. 지금 그대가 나를 대하는 것은 이전이라고 해서 더 잘하지도 않았고 이후라고 해서 더 못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전의 그대는 칭찬할 게 없었지만 이후의 그대는 성인의 칭찬을 받을 만하지 않겠는가? 성인이 특별히 칭찬한 것은 단지 시들지 않는 곧고 굳센 정절 때문만이 아니다. 겨울이 되자 마음속에 느낀 바가 있어서 그런 것이다.”(박철상, 《세한도 - 천 년의 믿음, 그림으로 태어나다》)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른 잎은 사시사철 지는 법이 없다. 사람들은 봄이나 여름, 그리고 가을까지만 해도 이 사실을 잘 모른다. 추운 겨울이 되어 다른 나뭇잎이 모두 지고 나서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잎이 시들지 않는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된다. 김정희는 유배객 신세가 되어서야 변함없이 의리를 지키는 이상적이 소나무와 잣나무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은 것이다.



세한도는 조선시대 그림으로는 드물게 제목이 명확히 밝혀져 있다. 김정희는 그림 오른쪽에 가로로 ‘세한도(歲寒圖)’라는 제목을 써 넣었다. 이어서 세로로 ‘우선시상(藕船是賞)’이라고 썼다. ‘우선 보시게나’라는 뜻으로, 우선 이상적을 위해 그림을 그렸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다음엔 줄을 바꾸어 세로로 ‘완당(阮堂)’이라 쓰고 인장을 찍었다. 마지막으로 그림 오른쪽 아래에 ‘장무상망(長毋相忘)’이라 새긴 인장을 찍었다.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는 말로, “고맙네, 우선! 오래도록 자네의 의리를 잊지 않겠네. 그대 또한 언제나 나를 잊지 말게나”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김정희가 보낸 세한도를 받아든 이상적은 저절로 눈물을 흘리며 감격한다.


“세한도 한 폭을 엎드려 읽으려니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어찌 이렇게 분에 넘친 칭찬을 하셨으며 감개가 절절하셨단 말입니까? 아! 제가 어떤 사람이기에 권세나 이권을 좇지 않고 스스로 초연히 세상의 풍조에서 벗어났겠습니까? 다만 보잘것없는 제 마음이 스스로 그만둘 수 없어 그런 것입니다.”(박철상, 《세한도 - 천 년의 믿음, 그림으로 태어나다》)



이상적은 1844년 10월 김정희가 그려준 세한도를 가지고 동지사 일행을 수행하여 북경으로 떠났다. 다음해 1월 이상적은 평소 친하게 지내던 청나라 문인 장요손이 주최한 모임에서 세한도를 꺼내어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그 자리에서 청나라 문인 열세 명이 김정희의 외로운 상황을 가슴 아파하며 위로하고, 이상적의 절개를 칭송하는 내용을 시와 글로 표현했다. 그중 청나라 학자 반증위는 다음과 같이 발문을 적었다.


“김정희는 바다 밖의 뛰어난 영재, 일찍부터 그 명성 자자했다네. 명성은 훼손되어 갈 곳도 없고 세상의 그물 속에 걸려들었네. 도도하게 흘러가는 세속을 보니 선비의 맑은 정신 누가 알리오? 풍진 속 세상 개탄하다가 일찍이 어진 친구 알게 되었네. 높은 의리 돈독하긴 언제나 같고 겨울에도 그 맹세는 변함이 없네. 소나무와 잣나무를 닮아서인지 타고난 성품마저 곧고 단단하네. 시들지 않는 소나무와 잣나무를 그려서 도타운 그 우정에 보답하였네.”(김형민, 《역사를 만든 최고의 짝》)



세한도에서 황량한 벌판에 고고히 서 있는 소나무와 잣나무는 굳세게 절개를 지키는 이상적의 모습과 함께 의연히 세파를 견뎌내는 김정희의 모습을 나타낸다.



언덕 위에 줄지어 선 나무들이 아름다운 건

나무 뒤에서 말없이

나무들을 받아안고 있는 여백 때문이다

나뭇가지들이 살아온 길과 세세한 잔가지

하나하나의 흔들림까지 다 보여주는

넉넉한 허공 때문이다

빽빽한 숲에서는 보이지 않는

나뭇가지들끼리의 균형

가장 자연스럽게 뻗어 있는 생명의 손가락을

일일이 쓰다듬어주고 있는 빈 하늘 때문이다

여백이 없는 풍경은 아름답지 않다

비어 있는 곳이 없는 사람은 아름답지 않다

여백을 가장 든든한 배경으로 삼을 줄 모르는 사람은

- 도종환, <여백>



여백은 종이 전체에서 그림이나 글씨 따위의 내용이 없이 비어 있는 부분이다. 그림이나 글씨뿐만 아니라 자연 풍경이나 인생에도 여백이 중요하다. 때로는 사람이 여백이 될 수도 있다. 이상적은 김정희에게 넉넉한 여백이 되어준 존재이다. 추사 김정희는 한겨울에도 시들지 않는 소나무와 잣나무를 마음의 붓으로 그리며 자신의 처지와 이상적의 절개를 화폭에 아로새겨 놓았다. 그리하여 두 사람의 인생을 보듬은 걸작 <세한도>에서 황량한 벌판에 고고히 서 있는 소나무와 잣나무가 빼어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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