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환자의 해외여행 첫 도전기

따라 하지 말자ㅠ

by 구름

첫째 아이가 중학생이 되면서 학기 중이나, 방학 중 여행이 불가능해졌다.

학기 중엔 중간/기말고사에 수행평가, 방학 중엔 학원 특강이 하루 종일 있기 때문.

우리가 갈 수 있는 여행 일정은 명절 연휴밖에 없다. 비싸긴 더럽게 비싸도 온 가족이 같이 가려면 방법이 없다.

게다가 시가에서 작년 설부터 명절 제사를 지내지 않겠다고 하신 덕에 올해 설에도 어머님, 아버님과 해외여행을 다녀왔고,

올 추석 이 황금연휴도 일찌감치 어머님, 아버님, 애들과 티켓팅을 마친 터였다.


누가 알았겠는가.
그 1년 사이 내가 암환자가 될 줄.


비행기 티켓, 호텔은 환불 불가 조건이었고, 어머님의 칠순 생신 맞이라는 명분이 있었고, 연로하신 부모님과 고입 수험생 모드에 돌입한 첫째까지, 아마 이 가족 구성원 모두가 함께하는 여행은 마지막일 것이고, 나는 여행을 좋아하고,,,

진단받고 바로 주치의께 물어봤었다.

"저 추석 연휴에 해외여행을 잡아놨는데 갈 수 있나요?"

"혈액수치만 돌아오면 가실 수 있어요."

(혈액수치는 2주 만에 확 좋아졌고, 한 달 만에 정상 범주에 진입했다.)


그래, 가보자. 힘들면 다른 가족들 돌아다니라 하고 나는 앉아서 쉬더라도 가보자.


출국 D-3,

목이 좀 칼칼하다.

젠장, 감기 기운이 온 것 같다.


출국 D-2,

회사에서 일이 자꾸 꼬인다.

거의 하루 종일 종종걸음으로 걸어 다녔다.

목도 칼칼하고 저녁부터 몸살 기운이 올라온다.

(진단 이후 많이 걷거나 힘을 쓰거나 긴장하면 몸살이 온다.)


출국 D-1,

결국 이비인후과에 다녀왔다.

목이 빨갛지만 편도염까지 가진 않았고 코와 가래가 좀 있으니 약을 처방해 줬다.

목 소염진통제로 부루펜 계열 소염진통제를 처방해 줘서(항암제와 상충작용으로 먹을 수 없다.) 비상약으로 가지고 있던 타이레놀로 대체해 먹었지만,

미열은 37.1~4도로 왔다 갔다 하고 열감이 계속 느껴진다.

38도가 안 넘으니 응급실도 못 가고 불안한 마음에 코로나 자가진단키트를 해본다.

음성, 휴우.


출국 D-day, 여행 첫날,

미열과 목통증은 계속이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공항 병원으로 가서 독감+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음성, 휴우휴우.

목 염증 잡는데 도움이 된다는 가글을 처방받고 위급 상황을 대비해 여행지 영사관 번호와 호텔 근처 큰 병원, 내 병명과 항암제 영문명을 가족들한테 공유하고 비행기에 오른다.


여행 둘째 날,

목 통증과 미열, 몸살이 사라졌다.

나는 여행 체질인 걸까?

아침 식사로 그동안 암환자식으로 못? 안 먹었던 달콤한 빵과 면도 먹고, 배가 채 꺼지지 않은 상태에서 맞닥뜨린 맛집에 점심 식사(또 면)를 강행했으나 결국 반도 먹지 못하고 포기.

그리고 또 맞닥뜨린 맛집에 과자와 빵을 신나서 집어넣었는데 결국 탈이 났다.

배가 아파 저녁을 안 먹겠다 해놓고 또 맛있는 걸 보니 눈이 돌아 맛만 보겠다며, 껄떡대다가, 젠장 체기가 더 심해졌다.

야경을 보러 가는 길 내내 골골대며 배가 아파 허리도 꼿꼿이 못 펴고 애들은 번갈아가며 등을 두드려주었으나 결국 야경 명소 그 북적이는 벤치에 나는 드러누워 버렸다.

야경이고 뭐고 죽겠다, 젠장.

빵과 면에 눈이 돌아 미련하게도 쑤셔 넣었나 보다.

이제 감기는 가고 소화장애가 왔다.


여행 셋째 날,

아무래도 불안해 아침은 죽을 조금만 먹어보기로 한다.

점심, 저녁도 빵, 면은 멀리하고 밥으로 조금씩만 먹었다.

통증이 많이 가라앉았다.


이후 다시 밥 양을 줄였더니 또 배가 아픈 일은 없었다.

여행 때 식단 해제하고 살을 좀 찌워가나 했더니 글렀다.(그래도 달콤한 음식을 많이 먹은 탓에 500그람이 찌긴 했다.;;;;;)


예전 여행에 비하면 무거운 거 절대 들지 않고

뭐 알아볼 거 있으면 남편이나 애들한테 갔다 오라고 하고

대중교통 자리 나면 시부모님 다음 내가 앉아버리고

비타민도 열심히 챙겨 먹고

나름 내 몸을 아낀다고 아꼈다.


여행 넷째 날부터는 이벤트가 없었다.

조금 체력이 약한, 소화 능력이 떨어지는 정상인처럼 여행을 즐겼다.


큰 탈 없이 여행을 마칠 수 있어 너무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었지만, 무지했고 무모했다.

몸 상태가 안 좋을 때마다 긴장과 불안이 따라왔다.

절대 따라 하지 마시길.

진단 직후 1년이 가장 중요하다 하니 1년은 참으시길.


그런데, 이 모든 사실을 알고 내가 과거로 돌아간데도

아마 나는 더 조심하더라도 여행을 강행했을 듯;;;;


4개월 만의 일탈, 기분 전환 그리고 활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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