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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변인팬클럽 Aug 25. 2020

전쟁터 같던 국회에서 플로리스트로, 설해냄님  

항상 내가 하는 일의 철학은 무엇일까 계속 생각해야 한다고요

https://www.youtube.com/watch?v=3POXsEuKgu4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의외로 늘어난 소비가 있었습니다. 바로 꽃이었습니다. 그저 피곤한 몸을 뉘이기 바빴던  집을 향유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사뭇 우울해진 마음을 달래기 위해, 집 앞 꽃집에서 조금씩 꽃을 사기 시작했어요. 식탁에 놓인 꽃 몇 송이로 봄이 오고 지나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나와 내 가족을 위한 몇 안 되는 작은 사치였습니다. 


누군가를 위해 기쁜 마음으로 사게 되는 꽃,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행복한 에너지가 너무나 필요했다는 꽃집 사장님 설 해냄님을 만났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연남동에서 작은 꽃집(플라워에이블)을 운영하고 있는 설 해냄이라고 합니다. 플로리스트라고 말하기엔 아직 조금 부끄럽고, 꽃을 만지고 있어요. 사실 식물을 만진다고도 해요. 저는 꽃 말고도 풀도 좋아해서요. 


어떻게 꽃을 만지는 직업을 하고 싶으셨어요? 

이 질문을 너무 좋아해요. 대답을 하면 할수록 더 정제되는 것 같아요. 

우연히 지나가다가 꽃을 만지는 원데이 클래스가 있어서 몇 번을 듣다 보니까 ‘재밌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리곤 꽃이라는 건 나의 작은 취미 중에 하나정도,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퇴사를 하고 뭘 해야 할까 고민을 하면서 도쿄에서 일을 하고 있는 친구를 보러 갔어요. 보니까 도쿄는 마트에도 꽃이 있고, 퇴근하고 갈 때 꽃을 사는 사람들이 많은 거예요. 집안이나 가게에 꽃이 많더라고요. ‘우리나라도 저렇게 되면 되게 좋겠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하고 구체화하게 되었어요. 


꽃집을 하면 진짜 행복할 것 같고, 내가 좋아하는 일이기도 한데, 왠지 굶어 죽지는 않지 않을까? (웃음) 항상 조그맣게, ‘내 브랜드를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은 있었어요. 꽃이랑 결합하다 보니까 이렇게 되었어요. 하다 보니까 이렇게 왔어요. 


왜 꽃에 관심이 가게 되셨던 거예요? 

솔직히 처음 시작했을 당시만 해도 ‘꽃이 너무 좋고, 꽃이 너무 나를 행복하게 해 주고!’ 이런 건 아니었어요. 굶어 죽지는 않겠지, 돈벌이로 생각했거든요.(웃음) 

그랬는데 하다 보니까 너무 매력 있는 게, 오는 분들 중 기분 안 좋은 사람들이 없잖아요. 수줍수줍 하면서 사시고, 저도 항상 물어봐요. 그러면 ‘아내가 임신해서 사요.’ 그럼 저도 ‘태명 뭐예요’라고 물어보고요. 그게 너무 좋더라고요. 전 그런 게 필요했거든요. 사람들의 행복한 에너지. 


왜냐하면 제가 국회에 있을 때 그런 게 너무 힘들었었어요. 성향에 안 맞는다고 느꼈던 게, 거기는 전쟁터잖아요. 사람들 흠집 내는 게 일이고. 그런 게 저랑 안 맞았거든요. 그런데 여기 오니까 저한테 돈을 내시면서, 감사하다고 얘기하시면서 가시는 그 분위기!  그래서 너무 잘 선택했다고 생각했어요. 



원래 국회에서 일하셨다고 했는데, 무슨 일을 하셨는지 궁금해요. 

국회의원들 밑에 9명의 보좌진들이 있거든요. 그중에서 제일 막내 인턴이었어요. 1년 4개월 정도 있었죠. 



어떤 부분이 안 맞으셨어요. 

아까 말한 것처럼 싸우는 분위기인 게 너무 불편하더라구요. 또 그 당시 너무 상황이 급변해서 -2주 만에 박근혜 전대통령이 탄핵되고 대선 운동을 해야 했어요- 들어가서 정신없었던 것도 있었고요. 



퇴사한 후 직업적인 것 이외에도 어떤 변화들이 있었나요? 

진짜로 많이 바뀌었어요. ‘내가 빛나야 한다’는 생각, 이런 것을 되게 많이 내려놓고, ‘내가 안 맞는 것도 있고 내가 못 하는 것도 있지’ 이거를 엄청 많이 받아들이게 됐어요. 남이랑 비교하지 말고 내 템포로 걸어가자. 이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또 그걸 할 수 있었던 게, 이 향기 만든 (해냄 씨의 꽃집 안팎에는 풀향기와 잘 어우러지면서도 마음을 끄는 독특한 향이 났다. 향수 브랜드 ‘수토메 아포 리케’의 대표이며 멘토인 지인이 꽃집의 분위기에 맞게 직접 조향 해주었다고 했다.) 언니가 그런 성향을 가지고 있어요. 저보다 9살이 많으신데 제가 진짜 원하는 대로 살고 있는 사람이 주변에서 살고 있으니까 너무 좋더라고요. 그래서 이 생뚱맞은 동네에 온 것도 온전히 이 언니 때문이에요. 나는 그렇게 살고 싶으니까! 


좋은 예시가 된 분이네요. 특히 어떤 부분이 닮고 싶으셨어요

묵묵히 자기 길을 걷는 것. 언니가 이 향기 브랜드를 6년째 운영을 하고 있는데, 언니랑 비슷하게 사업 시작한 분들은 직원 여럿 두고 투자유치받아 가지고 사업을 키우거든요. 언니는 쇼룸 딱 하나 운영해요. 직원 한 명 두고. 근데 내실이 정말 탄탄하고 엄청 행복하게 잘하고 있거든요. 철학을 혼자서 갈고닦는데 6년을 보낸 사람이에요. 진짜 장인이죠. 




해냄님도 쉽지 않은 시도를 하고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플라스틱을 쓰지 않고 운영을 하고 계신데 이른바 ‘제로 웨이스트’는 어떻게 시작하시게 되었나요? 

말씀드린 저 언니와 워낙 친하니까, 쇼룸도 자주 놀러 가곤 했어요. 그러다 이 브랜드에 단골 분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그분은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제로 플라스틱을 실천하는 분이거든요. 저도 원래 낭비나 쓰레기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어서 그걸 접목시켜보자 라고 하며 ‘제로 플라스틱’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처음엔 주변에서 안 될 거 같다고 걱정을 되게 많이 하시더라고요. 저도 자꾸 그런 말 듣는데 흔들리더라고요. (그 가치를) 알아주기 까지 너무 오래 걸릴 거 같았어요. 저도 약간만 타협을 하고 싶어서, 언니랑 얘기를 하다가 ‘언니, 이것만 포장지 비닐 할까 하고 좀 고민이에요’라고 했는데 원래 저를 귀여워해 주시던 언니가 ‘해냄 씨 타협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어요'라고 하고 더 이상 말씀 안 하시는 거예요. 근데 그 얼굴이 계속 생각나는 거예요. 


사실 진짜 힘들거든요. 다른 대안을 계속 생각해 내야 하니까. 골머리를 쓰면서도 언니의 그 말이 계속 생각이 나면서 했는데, 생각보다 사람들이 되게 좋아해 주세요. 되게 잘했다고 생각해요. 의외였어요. 그런 분들이 되게 많은 게 엄청 고마워요.  


이 언니가 계속 말하는 게 ‘내가 하는 일에 가치를 계속 담아야 한다’고 단순히 장사를 하면 지친다고. 왜냐면 돈은 벌렸다가 안 벌렸다 하는 건데 내가 하는 일에 보람을 느끼면 조금 더 갈 수 있는 동력이 생기는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항상 내가 하는 일의 철학은 무었을까 계속 생각해야 한다고요. 


내가 하는 일, 단순히 꽃다발 만드는 거 말고 그 안에 조금 더 철학을 담아보면, 지구를 사랑하고 식물을 사랑하는 그런 것들, 그래서 환경을 보호하고.. 이런 식으로 좀 더 생각하게 되었어요. 거기까지는 찾았어요! 아직까지는 그게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제로 플라스틱이) 더 많이 퍼졌으면 좋겠어요. 처음에는 ‘이거 나만해서 유니크 한데'라고 생각했는데, 조금 더 내려놓아서. ‘전국의 많은 꽃집들이 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더 체계화해서 더 블로그에도 올려보려고요. 제가 했던 방법들이 저는 몇 달 고민 한 건데 해결책은 진짜 간단한 데 있더라고요. 





예를 들면 어떤 게 있었어요? 

처음에 (플라스틱이 나오기 때문에) 꽃바구니를 안 한다고 했을 때, ‘꽃을 어떻게 선물하지?’라는 질문을 하셨어요. 그럴 때 ‘화병째 선물하세요'라고 하거든요. 화병 꽃으로 하면 캐리 하기도 간편하고 훨씬 재활용하기도 좋고 너무 간단해요. 그리고 다른 아이디어는 천연 수세미가 있거든요. 꽃병 안에 꽃이 고정이 안되는데 구멍이 숭숭 나있는 수세미를 넣으니까 수세미를 넣으니까 고정이 되더라고요. 이건 썩으니까 딱이고요. 


여러 아이디어들이 많으신 것 같은데, 또 계획하고 있는 게 있으세요? 

조금씩 꽃을 더 사 와서 문을 닫는 일요일에는, 한강 같은데 차 트렁크에 꽃을 두고 길거리 다니는 사람들한테 파는 거예요. 기쁜 일 있는 사람한테 송이당 3000원, 그냥 사는 사람 2000원, 슬픈 일 있는 사람한테 천 원씩 파는 거를 항상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얘기를 털어놓고 싶으면 털어놓고 아니면 안 하고. 그러면서 사람들도 만나고 싶어요. 근데 코로나 때문에! 너무 아쉬워요


어떻게 그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되셨어요? 

제가 사실 국회를 그만뒀을 때 마음이 너무 안 좋아서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서 그만뒀거든요. 그만두고 나서는 또 괜찮아졌어요. 그러다 가게를 운영하면서 또 고민이 많아지고, 어려움이 많아지니까 그 기운이 찾아오는 거예요. 그때가 첫 번째보다 훨씬 절망적이었어요. ‘또 왔구나, 완치가 안되었구나'라는 생각에 두려웠어요.  


그때 한동안 집에 가만히 있었어요. 우울증 나오는 주인공 나오는 영화를 엄청 많이 봤어요. 너무 많이 봐서 기억도 안 나요. 그런 걸 계속 보다 보니까 생각보다 나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 너무 많더라고요. 그리고 ‘이런 우울하고 시니컬한 나도 나지!’라고 생각하면서 나에 대해서 받아들이게 된 것 같아요. 그전까지는 밝고 당찬 사회적인 이미지로 살아오다, 한번 모든 걸 내려놓으니까 훨씬 마음도 편해지고, 주변 시선을 신경 안 쓰는 계기가 되었어요. 


그래서 우울한 사람들 만나고 싶다고 하는 게, 나도 한번 우울해봤으니까 지나갈 거야, 극복하려고 굳이 노력할 필요 없어 그냥 매일매일을 살면 돼 이런 메시지를 주고 싶어서 만나고 싶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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