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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변인팬클럽 Aug 28. 2020

군대와 청와대를 거쳐 학교 보안관까지, 배두봉님

걱정한다고 사라지는건 아니지, 언젠간 나도 모르게 가있을 거야.

https://youtu.be/CwYFL4WW-uk


비무장지대를 넘나들며,북괴군과 마주하는 직업 군인으로 24년, 광화문 푸른 지붕 아래서 큰 흐름을 네 번 마주하며 또 16년. 휘몰아 치는 격변의 장소마다 완전무장한 채로 자리를 지켰던 67세의 노장을 뵈러 가게 되었습니다.


인터뷰를 하러 가기 전, 백수 생활 오랜만에 정장을 차려 입었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절로 흐르는 날씨에 카라를 세운 자켓이 왠말인가 싶었지만, 40여년 공직생활에 몸담은 보안관님을 만나는 자리엔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습니다. 공동경비구역 JSA (우리 또래라면 다들 한번쯤 보았던 국룰 영화였습니다.)의 이병헌을 만나러가는 기분일까요. 말 한마디라도 실수 해서는 안될 것 같은, 조금은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만나뵙기로 한 초등학교로 향했습니다.


살짝 굳은 표정으로 학교 정문을 들어 선 순간, 저희가 만나뵈러 온 분은 이병헌이 아니라, 토이스토리 속 우디 라는 것을 알아챘습니다. 멋진 갈색 카우보이 모자에, 환한 웃음, 그 누구보다 위트 넘치는 우리들의 보안관. 청량한 하늘에 매미 우는 소리를 배경으로, 앤디에 한껏 감정이입이 되어, 세상 제일 좋아하는 보안관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나를 소개하라면, 좀 나이 많이 먹은 사람이랄까? 직업을 세 번을 바꿨어요.


지금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에 들어가서 군 생활을 했어요. 군 생활을 24년을 하고, 퇴직 후 공무원으로 환직 했어요. 공무원 생활을 16년, 그리고 퇴직을 하고 나서 1년을 백수로 지내다가, 이 초등학교 모집공고를 보고 보안관을 지원해서 들어오게 되었어요. 노는 시간 없이 현재까지 계속  이렇게 살아왔어요.


공무원 생활은 광화문의 큰집, 큰집에서 오래 있었어요. 16년 정도. 네 분쯤 모시다가 나왔어요. 그리고 여기 와서 근무하고 있어요. 하하, 근데 뭐 그런 과정에서도 어려운 과정은 다 있는 거지.



어떤 이유로 직업 군인을 지원하게 되셨어요?

그때, 당시 고등학교 졸업할 때 사회가, 살아가는 과정이 상당히 어려웠다고... 취직도 그렇고. 그래서 군대 입대하고 미래가 걱정되잖아. 공부할 처지는 안되고, 거기서 이제 군 생활을 해야겠다 해서 장교로 지원했지. 하다 보니까 군대에서 결혼도 하게 되었고.


어떻게 만나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우리 집사람은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중학교 3학년 이였거든. 두 살 차이. 오빠 동생 그런 사이로 지내다가, 집에 놀러 오고 놀러 가고. 그러다가 집사람은 고등학교 가고, 또 나는 군대 가고 하다 보니까 헤어졌잖아. 헤어졌다가 사회인이 되어서 우연히 만났어. 청량리역! 나는 춘천서 근무할 때, 청량리역에서 내려서 나오다가, 역 앞에서 진짜 우연히 만났다고. 예뻤거든, 우리 집사람이.



군대 생활에서는 뭐가 제일 기억에 남으세요? 

군 생활은 기억이 너무 많지. 죽을 뻔하다가 살아난 과정, 그 담에 DMZ 깊이 들어갔을 때 마이크에 대고서 북괴군이랑 이야기하고. 뭐 그런 것들. 그런 추억들이 지나가지 쭉쭉.


군대 생활과 공무원 생활은 크게 다르셨어요?

군대 생활할 때는 그때그때 회포를 풀어버려, 꿍한 거 없이 술 마시고 풀어버려. 전우애가 있다고 해야 할까? 그런데 다른 공무원 사회에서는 그런 게 되질 않아. 그렇게 안되더라고. 쌓이고 쌓여서 폭발하기 직전까지. 그런 어려움도 있었고.


그 생활들 지나고 보니 어떠세요?

24년 금방 지나가더라고, 공무원 생활 16년도 금방 지나가. 애들이 이제 커 가는 과정, 시집도 보내고. 40년을 했잖아. 그러니까 난 이제 다 늙어가더라고.


뒤돌아보니까 우리 애들이 이렇게 큰 게 보이고. 애들이 내 과정의 저~기 있구나. 나는 이제 얼마 안 남았어. 활동하려면 3~4년 지금처럼 이런 정신을 가지고, 3~4년이면 끝날 것 같아.



학교 보안관 퇴직하시면 뭐 하시고 싶으세요?

또 직업 가져야지. 안 가지면 아플 것 같아. 뭔가라도 찾아서 일해야 할 것 같아. 그렇잖아, 집에서 연휴에 쉬면 아프잖아. 자전거하고 이제 버티며 사는 거지.


배두봉님의 오랜 친구


자전거 타시는구나!

자전거를 15~16년 됐네 좋아한 지가.  자전거 동호회는 각계각층, 별 사람이 다 있어. 그 사람들이 다 모여.   거기는 왜 편하냐 하면, 저 사람이 뭐 하는지 몰라. 이름도 닉네임으로 부르고. 내 닉네임은 ‘배려'.


어디 가자고 하면 그냥 가는 거야. 직업도 안 물어 아무것도 안 물어. 그래서 동호회가 좋아. 퇴근하면 7시 정도 되잖아 성신여대에서 모여서 남산을 간다든지 북악스카이웨이를 간다든지 성산대교 거북선 나루터라고 있어 거기를 간다든지, 밤에 가는 거야.


퇴근하면 여기서 덕정리까지가 쭉 가서 집까지 가면 70km 정도 되 그러면 열시 반이나 열한시 정도 되지.  


오늘도 퇴근 후엔, 라이딩!


자전거 말고, 쉬실 때 또 뭐 하세요?

일주일에 하루는 집사람하고 같이 지내지. 집사람 태우고 드라이브하고 하루는 내 세상이고. 우리 집 사람하고는 내 차에 보면 항시 텐트가 놓여있어. 양푼하고 텐트 렌지하고 스푼 몇 개 그래서 가다가 한적하고 공기 좋은데 있으면 텐트 던져, 돗자리 깔고 놀다 오는 거야. 좋더라고 해보니까. 그렇게 요즘에 생활하고 있어.


보안관을 어떻게 지원하게 되셨어요?

 퇴직 삼 년을 남겨두고 그쪽에 있다보니까 눈에 보이는 게 있잖아. 그거 알아요? 고궁 관리. 창덕궁 창경궁 능관리사들이 있어요. 능을 관리하는 사람들.


그거 하고 학교 보안관 좋더라고. 애들하고 노는 게 좋아 보여서. 퇴직하면 저거라도 해야겠다. 그걸 퇴직 한 삼 년 전에. 마침 딱 넣었는데, 여기가 된 거야. 넣자마자.


83명인가, 84명인가 왔어. 보안관 1사람 뽑는데. 그러고 포기하고서 갔지. 야 안되겠다 근데 면접 보러 오라고 왔어 여섯 명인가 왔지만. 나 처음 면접시험을 봤거든. 있는 그대로 얘기했지. 그랬더니 '연락드리겠습니다.' 하더라고. 둘째 딸 귀염둥이 잔치 구경하고 있는데, 연락이 왔어. 오라고.


보안관은 어떠세요?

너무 좋지. 요즘에 애들이 안 와서 그렇지 애들 오면 장난치고 재미있어. 재미있어가지고, 우리 손주 영상 보여주면서 ‘ 야 예쁜이 지나가지" 해. 장난치는 거지.


눈은 카리스마 있는데, 얼굴은 너무 온화하세요.

아. 어떻게 표현할까 억지웃음이라는 것도 있어. 내가 공직생활할 때 느낀 바가 그래. 가식 섞인 행동도 할 때가 있지 만약에 지시가 잘 안 이뤄지고, 인상을 팍 쓰고 하면 무서운가 봐. 근데 그것이 좋은 게 아니더라고. 바꾸려고 노력했어 웃으려고도 하고 보는 것처럼 웃으면 상이 부드럽게 보인다고. 안 그럴 것 같은데 그렇게 보이나 봐.



오늘 인터뷰하신 내용의 제목은 뭘로 정할 수 있을까요?

내 인생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인생은 한쪽 방향으로 간다는 걸 한 방향으로 뚝심 있게 나가라. 그 말이 제일 하고 싶어.



뚝심 있게 사는 게 너무 어려워요

어렵지 어렵지. 내가 (군인을 그만두고 공무원으로) 환 직했을 때, 애들이 고등학교 다녔어. (그만두고 공무원 임명장 받기까지) 그 기간이 한 달 이였는데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잖아.


(인생이) 굴곡이 심하지. 엄청 많지. 우리가 초봉을 받으면 이천 원, 삼천 원이 한 달 봉급이 되었었다고. 그거 가지고 단칸방 하나에 방세 오백 원 내고 그렇게 살아갈 때, 애들 낳고 또 돈이 결부되고, 부부 싸움이 잦아지기도 하지. 생활고가 시작이니까. 박봉이잖아.




오랫동안 직업생활하셨잖아요. 지나고 보니 어떠세요? 2,30대에는 일희일비하기 쉽잖아요. 다 별일 같고.

나도 마찬가지. 그때에는 힘들었지. 어떻게 살아갈까 집 한 채 살려면 20년 해야 집을 사는데, 내가 평생을 모아도 못 사는데 어떻게.


근데,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아. 미래가 걱정한다고 해서, 없어지는 건 아니잖아. 미래 되면 자신도 모르게 가있을 거야. 나도 마찬가지였으니까. 어느 순간에 그 위치에 온다고. 


나도 지금 그래 손주한테 '너 공부할 필요 없어.' 진짜야. '할아버지 차 타고 놀러 가자.' 한다고. 생각 차이야. 지 엄마는 머라 하지. 할아버지 공부 잘했어 못했어 진짜 못했지. 나는 공부가 인생의 다 아니거든. 나한테 맞는 직업 찾아서 그 시절을 살면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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