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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연수 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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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하 Oct 16. 2023

워크숍

낚시

직장생활 2년 차가 되던 해에 나는 두려움을 많이 걷어내고 있었다. 영화 ‘배트맨 비긴즈’에서는 주인공인 브루스 웨인이 트라우마를 극복하며 성장하는 이야기가 그려진다. 그는 어릴 적에 특히 무서워했던 박쥐를 똑바로 직면할 수 있게 되고 공포를 이겨냄과 동시에 내재된 분노를 다스리는 법도 배워나간다.

나는 쉽지 않았던 회사생활을 딱히 정면으로 부딪혀보려는 시도를 많이 했던 건 아니었다. 그저 자연스레 익숙해져 가는 과정에 있었다. 일도 사람도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면서 높은 선배들이 조금씩 편해졌고 어느 정도의 유대감도 형성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워크숍을 하자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 나는 이번에는 1박 2일로 멀리 떠나 보는 게 어떻겠냐는 호기로운 객기를 부리고 말았다.






우리는 금요일 저녁에 퇴근을 하고 충남 태안으로 떠났다. 이틀 간의 일정 중 첫날은 평범하게 글램핑을 했다. 팀이라고 해봐야 팀장님 포함해서 8명이었기에 숙박을 예약하고 저녁 식사와 몇 가지 게임을 진행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진정한 도전과제는 바로 다음 날에 있었다.

MT나 워크숍은 1일 차에 만취해 잠들고 느지막하게 일어나 몽롱하게 인근을 서성이고 있는 사람들을 목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우리도 가볍게 식사를 하고 깔끔하게 이별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그러나 그때의 워크숍은 이튿날 행사가 핵심이었다. 아침 일찍 기상하여 인근 바다로 장소를 옮긴 뒤 좌대 낚시를 하기로 한 것이다.


회사생활을 하며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전국 방방곡곡으로 단체행사를 떠나봤지만, 물리적으로 가장 가혹한 일정으로 기억한다. 조그마한 배를 타고 잠깐 이동을 하고 나니 바다 한 복판에 작은 섬이 나타났다. 주황색 플라스틱 부표를 잔뜩 이어 만든 이 인공섬에서는 관광객들이 낚시를 즐길 수 있는 여러 개의 좌대가 마련되어 있었고, 생선을 잡으면 그 즉시 회를 쳐서 먹을 수 있는 시스템까지 갖춰져 있었다. 가장 좋은 점은 좌대 한 칸을 한 팀이 통째로 빌리면, 그 좌대에서 헤엄치고 있던 고기들은 우리의 형편없는 실력과 무관하게 다 가져갈 수 있다는 점이었다. 공간을 대여하는 비용 안에 생선값이 다 들어있던 모양이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낚싯대를 쥐어본 적이 없던 나는 그 말에 깊이 안도했다. 다만 문제는 전날의 숙취를 넘실대는 파도가 더욱 고조시켜 싱싱한 생선을 아무리 퍼줘도 못 먹는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멀미에 패배한 사람들이 이미 주변 바다에 토를 뿌려대고 있었다. 우리 팀 역시 전 날 글램핑을 할 때 술을 조절하지 못하는 지극히 아마추어 같은 행동을 했고 부드럽게 출렁대는 물결을 온몸으로 받아냈다. 어떤 순간은 낚싯대를 던져놓고 가만히 서 있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상황이 조금 바뀌기 시작한 건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을 때였다. 망망대해였지만 낚싯대를 던져놓고 한 없이 바라보고 있는 장면 자체가 나름대로의 정취를 자아냈다. 와중에 한 마리씩 잡힐 때면 이상하게도 멀미가 싹 가시고 쾌감마저 얻었다. 그리고 그 좌대에 있는 고기들은 인간들의 이러한 행태에 이미 익숙해져 있는 존재들 같았다. 미끼를 끼워본 경험조차 없는 나의 낚시 바늘을 서비스라도 하듯 손쉽게 물어주면 나는 팔 힘을 조금만 사용해도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좌대에 얼마나 머물러 있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건, 꽤나 많은 생선을 건지며 손맛을 봤는데도 불구하고 풀어놓은 고기를 다 건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장님께서는 물속 깊은 바닥에 닿아있던 그물을 끌어올려 보여주셨다. 우리는 그렇게 많은 고기가 밑을 유영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리고 허술하기 이를 데 없는 낚시 실력으로 인해 미처 물밖을 구경시켜주지 못했던 고기들은 각자 원하는 만큼씩 손질을 해서 가져갈 수 있게 도와주셨다.

그날 나는 우럭 3마리를 자그마한 아이스박스에 담아 귀가했다. 한 마리는 바로 먹을 수 있게 회로 떠놓았고 나머지는 가볍게 손질만 된 채로 비닐에 싸서 집에 얼려놓을 작정이었다. 가끔 예능 프로그램에서 낚시가 취미인 연예인들이 하루 종일 바닷가에 앉아서 잡은 고기들을 집에 가져와 맛있게 요리하거나 선물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집에 갓 잡은 싱싱한 생선을 안겨줄 수 있다는 생각에 뿌듯함을 감출 수 없었다. 비록 난이도라는 것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한 초급 낚시터였지만 말이다. 빗줄기가 거세진 탓에 교통 상황이 안 좋았음에도 서울로 가는 길이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빗길을 3시간을 달려 집으로 돌아와 가족들과 자연산 우럭 회를 맛있게도 먹었다. 엄마는 그렇게 싱싱한 우럭은 정말 오랜만에 먹어본다고 했다. 남은 회는 숙성을 했다가 전을 부쳐먹기도 했고 얼려뒀던 친구들은 튀겨지거나 찌개의 일부가 되었다. 그렇게 워크숍은 생선을 남겼다.


워크숍은 보통 주제를 하나 정하고 그와 관련된 구체적인 성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진행되는 과정을 의미한다. 목적이 팀원들의 친목일 수도 있고 평소 골머리를 앓던 업무를 집중적으로 고민하기 위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우리가 남긴 결과물은 그리 거창한 것은 아니었다. 개인적으로는 낚시가 재미없을 것이라는 막연한 편견을 깰 수 있었다. 한 편으로는 긴 시간을 함께 몸을 쓰는 활동을 하니 서로 전우애도 조금 생겼던 것 같다. 흔히들 목표로 설정하는 사기진작, 단합 뭐 그런 비슷한 개념 같다. 타의로 시작된 도전이었고 꽤 재밌는 성취로 끝났다. 그렇게 워크숍은 생선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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