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조차 해보지 않은 낯선 지역에서 장기간 생활하게 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도 공대를 졸업한 덕에 주변에 있던 선배들이 주로 어떤 곳에서 근무하고 있는지 소식을 접하기는 수월했다. 소위 현장이라 불리는 전국 각지의 공장 혹은 산업단지, 지방 공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나는 마음속에 예방주사를 놓았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서울에서 일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그리고 나는 지방 산속에 있는 빨간 벽돌로 지어진 근무지로 발령을 받게 된다.
모든 신입사원들은 부서를 결정짓는 배치면담을 거친다. 교육과정이 끝나갈 무렵에 동기들은 이미 치열하게 작전설계 겸 눈치싸움을 하고 있었다. 염세적인 면이 있었던 나는 우리끼리 이야기가 무슨 의미가 있겠냐며 심드렁한 태도로 일관했지만 실제로 의미가 없게 느껴지기도 했다. 면담은 사실상 통보에 가까웠다. 작은 회의실에 한 명씩 입장하면 과장이나 차장 정도로 추정되는 사람이 서류를 응시하며 앉아있었고, 반갑다는 인사도 없이 답정너에 가까운 이야기를 쏟아냈기 때문이다.
“00 씨는 이 직무로 지원했지만 이 일이 더 어울릴 것 같은데..”
“지방으로 조금 멀리 가면 어떨 것 같아?”
면담관과의 대화는 결코 대등한 경기가 아니었다. 공격을 하는 사람은 따로 있었고 우리는 방어만 하기에도 충분히 벅찼다. 날아오는 잽에 맞서기 위해 일부 동기들은 본인만의 카운터를 준비하기도 했다. 주로 준비한 줄거리들은 부모님이 아프시거나, 결혼을 앞두고 있어서 멀리 갈 수가 없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나에게 그런 전략은 없었지만 연고가 없는 지역에 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은 동기들과 같았다. 다만 나에게는 그런 서사가 있지도 않을뿐더러 설령 여러 재료를 버무려 이야기를 만들 수 있더라도 딱히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나는 삶에서 겪는 다양한 사안들에 대해 정면돌파 하기를 선호하는 편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못 간다기에는 스스로도 핑계라 생각했고 차라리 가기 싫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반대로 어차피 수용할 것이면 그냥 조용하고 시원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보기에라도 좋지 않을까 생각도 했다. 한 편으로는 면담 같지도 않은 대화를 하는 행태에 조금 시위를 한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인사나 총무를 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받았다. 사실 자기 객관화가 되지 않은 대학생에게 HR의 시각에서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직무를 제안하는 것은 타당하다. 신입사원은 아직 조직을 경험하지 못했고 본인의 적성과 역량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공채 10기’처럼 묶여 입사를 하긴 했지만 엄연히 내가 원하는 직무를 찍어 합격한 사람이라는 쪽으로 생각이 편향되어 있었다. 따라서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것이 마치 약속과 다르기라도 한 것처럼 다소 어리둥절하게 여겼던 것 같다. 게다가 나의 담임쌤처럼 긴 시간을 두고 지켜본 것도 아닌 처음 만난 사람이 인사기록 몇 줄만으로 판단과 제안을 하는 것에 쉽게 공감하기 어렵기도 했다.
나는 교육을 하고 싶다고 덤덤하게 이야기했다. ‘어떤 근무지로 가게 되더라도’라고 말이다. 돌이켜보면 참 잘한 일이다. 그 이후에 어떤 일을 하게 되고 여러 과정을 겪었건 반드시 벌어졌을 일이다. 본사에 남고 싶다고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거나 감정적으로 호소했다면 그에 파생된 나비효과에 의해 내가 원치 않는 직무를 맡게 되거나 후회하는 상황이 발생했을 수도 있다. 덕분에 나는 20명의 동기들 중 지방으로 내려간 4명 중의 1명이 되었다.
시간이 흘러 내가 면담관의 자리에 앉게 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면담을 잘해야지, 라기보다는 그때처럼은 하지 말자고 다짐한다. 소통에 정답은 없지만 배려는 할 수 있다. 면담이라는 단어는 서로 만나서 이야기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앞으로의 회사 생활에 대해 방향성을 제시하고 조언을 하는 것도 좋지만 더 우선시되어야 할 것은 경청하는 것이다.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알아갈 시간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 잘 인지하고 있어야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할 수 있고 그래야 직원 개인은 물론이고 회사 입장에서도 좋다. 그리고 설령 다 반영을 해주지 못하더라도 열심히 진정성 있는 태도로 들어주기라도 해야 원치 않는 결과를 맞닥뜨렸을 때 조금이나마 마음의 상처를 덮을 수 있다.
회사가 많이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된다. MZ세대는 옛날이야기를 한다며 손사래 칠 수도 있으나 나는 어느 정도 동의한다. 원래 사회는 끊임없이 눈에 띄지 않는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수많은 개인의 보이지 않는 작은 노력들이 있었기에 일방향 소통도, 통보 위주의 면담도 자취를 감췄다. 군생활 시절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던 건 자신이 당했던 가혹행위를 되풀이하는 사람이 생각 외로 많다는 것이었다. 내가 경험했던 것을 아래로는 반복하지 않고 오히려 없앨 수 있는 용기를 갖는 것이 그렇게도 어려웠을까. 물론 회사에는 군생활과 같은 폭력이나 부조리가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어떤 지점에서는 과감히 관습을 끊어내거나 변화를 줄 수 있다. 그런 삶의 작은 양식들은 실무자로서 과감히 수면 위로 올려 직면하고 바꿔보려는 용기를 많은 사람들이 간직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