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한 삶

사실에 기반한 삶. 감정과 멀어진 삶실에 기반한 삶. 감정과 멀어진 삶

by 쩨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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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너 자신에게 진실하라.

그러면 낮이 가면 절로 밤이 오듯이, 너는 누구에게도 거짓될 수가 없을 테니까.

-윌리엄 셰익스피어, <햄릿>-


나는 언제나 좋은 삶을 꿈꾸는 사람이다. 그 답을 위하여 여러 책을 읽는다. 소위 영적 성장이나 깨달음에 관한 책도 많이 있는 편이다. 최근에는 비중이 좀 더 늘었다. 그런 책을 보면 누구나 예상하는 명상에 관한 내용도 있지만, '진실을 추구하라'는 부분도 많이 나온다. 맨 처음에 이런 부류의 책을 읽을 때는 그냥 지나친 부분인 데, 반복되다 보니 이 부분에 관심이 생기게 되었다.


진실되게 사는 건 어떤 걸까? 이 질문의 답을 제미나이와 클로드에 반복적으로 서로의 답변을 넣어가면서 그리고 나의 답변과 관점을 넣어가면서 공부를 해보았다. 오늘은 그 내용을 정리하면서 어떻게 나의 삶을 진실되게 살 수 있을지 고민해 보려고 한다.


내가 처음 GPT들에게 넣은 질문은 "솔직과 진실" 차이였다. 내가 생각하기에 솔직은 타인을 향하는 것이었고, 진실은 나를 향하는 것이었다. 그 내용을 정리해 보면,


진실은 객관적인 사실로서, 나의 생각과 무관하게 실제로 벌어진 일이나 변하지 않은 이치를 말한다. 거짓의 반대말에 해당한다. 솔직은 주관적 태도로서, 나의 생각, 감정, 욕구를 숨김없이 드러내는 태도를 말한다. 숨김, 가식의 반대말에 해당한다.


결국 진실된 삶은 사실에 기반한 삶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나의 감정과 분리된 사실을 인지하고 수용함으로써 진실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그러기 위하여는 첫번째, 나와 나의 감정을 분리하는 자기 객관화가 필요하다. 솔직한 것은 나의 감정에 충실한 것있다. 나의 감정은 내 중심적으로 만들어진 이야기에 불과하다. 그러니 감정에 솔직한 것보다는 사실에 기반한 객관적으로 사는 삶은 진실된 삶, 진정성있는 삶이라고 할 수 있다. 두번째로, 나에게 일어난 모든 일이 나의 책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모든 결과가 나의 선택임을 인정하는 삶이 필요하다. 회파하는 삶, 예를 들어 상사가 이상해서, 경기가 안 좋아서, 부모님이 반대해서 등 외부의 원인으로 돌리는 삶은 진실된 삶이라고 볼 수 없다. 어떠한 외부 요인에도 결국 결정은 내가 한 것임을 받아들여야 진실되고 진정한 삶을 살 수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먼저 "자기 기만 멈추기"이다. 햄릿이 말했던 적어도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는 솔직해야 한다. '내가 바라는 나'와 '실제 나'를 구분해야 한다. '내가 바라는 나'와 '실제 나'가 다르더라도 내 안의 부족한 모습을 포장, 합리화하지 않고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


결국 진실되게 사는 것은 불편하고 외로운 과정이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해야 하고, 불편한 사실을 직면해야하며,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내가 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 불편함을 감수할 때, 비로소 내 삶이 진실되고 진정성있는 삶이 될 것이다. 이러한 삶은 나에게 자유를 보상할 것이다.


그럼 어떠한 삶이 거짓된 삶일까? 진실된 삶을 위하여 거짓된 삶을 아는 것이 필요하다.

첫째,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 하기)

가장 흔하고 강력한 거짓된 삶이다. 내 안에서 솟아난 욕구가 아니라, 외부에서 주입된 욕망을 따르는 것이다. "이 정도 차는 타야지", "이 정도 집에는 살아야지", "이런 직업은 가져야지", "이 나이에는 결혼을 해야지" 등등 사회적 자아를 통해서 형성되는 경우가 많다.


두번쨰, 자신의 감정을 억업하는 것(나는 괜찮아)

사실을 싫지만 괜찮다고 말하는 것. 화가 났는데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 등등 사회적으로 '쿨한 사람', '착한 사람', '능력있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실제 느끼는 감정을 부정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감정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에 기반하여 정확하게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필요하다.


세번째, 합리화하는 것(어쩔 수 없었다)

이런 합리화는 나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기제로 사용된다. 두려움을 논리로 포장하는 경우이다. "지금 회사를 그만두면 경력에 흠이 갈거야(사실은 변화가 두려운 것)", "저 사람을 위하여 참는 거야(사실은 갈등이 두려움)" 등등 합리화하는 경우이다.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 후, 자신의 감정을 억압하여 참고, 마지막에 자신의 선택을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합리화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겪는 거짓된 삶의 형태일 수 있다.


네번째, 과거에 따라 함부로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규정하는 것

과거의 경험이나 습관을 나의 정체성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변화의 기회 앞에서도 "나는 그런거 못해", "내 성격상 안 맞아"라며 자동적으로 거부하는 경우를 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나는 내향적이야", "나는 수학을 못해" 등등이다. 이렇게 스스로에게 한계를 긋는 것은 거의 대부분 거짓된 삶으로 삶을 향하게 한다.


다섯번째, 해야한다는 것(당위성)

하고 싶다가 아니라 해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의무감으로 채워진 삶은 성실해 보일지 몰라도, 내면의 성장의 관점에서 본다면 거짓된 삶이다. 예를 들어, "가족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 "성공하려면 잠을 줄여야 한다" 등이 있을 수 있다. 진정한 헌신은 사랑이나 열정에서 나오는 것이지, 의무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거짓의 삶의 공통점은 "불편한 사실을 견디지 못해서 그 위에 이야기를 덮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즉, 진실해 진다는 것은 결국 스토리텔링 작가로서의 자아를 해체하는 과정이다. 우리는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 끊임없이 상황을 편집하고 각색하는 것을 중지해야 한다.


그럼 어떻게 하면, 우리는 자신의 보호하고자 하는 에고로 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가장 중요한 것은 내 맘대로 만든 "인과 관계" 끊는 것이다. 사람들은 손쉽게 결과를 의도였던 것처럼 바꾼다. 예를 들어, 그 분야는 내 적성에 안 맞아서 그만뒀어라고 말한다. 팩트는 하다보니 힘들고 성과가 안 나와서 도망쳤어일 수 있다. 우리는 그냥 벌어진 일들을 객관적으로 보아야 하고, 인관관계를 억지로 만들어 자신을 합리화하기 때문이다.


과연 나는 얼마나 진실된 된 삶을 살았을까? 꽤 오랜 시간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면서 살았다. 지금부터라도 오늘 정리한 내용을 바탕으로 진실된 삶을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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