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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 May 24. 2022

(1화) 주부들은 월요일이 좋다.

월요일 아침 8시 25분

#6시 30분


손목에서 '지잉지징' 스마트워치 진동이 울린다. 작은 진동이지만 혹시 옆에서 자던 남편이 깰까 봐 얼른 X 표시를 누른다. 남편은 벌써 일어났는지 옆자리가 비어있다.  그대로 다시 눈을 감는다. 혹시 몰라 다음 알람을 7시에 해 두었다. 1년 가까이 알람을 설정해 두었지만 6시 30분에 일어난 적이 손에 꼽을 정도다. 그런데도 알람 설정을 왜 안 지우고 이 시간에 해두는지 나도 모르겠다. 그냥 왠지 불안하다.   

                 

눈을 잠깐 감았을 뿐인데 다시 손목에서 '지이잉~~~'. 이번에는 일어나야 한다. 스마트폰을 켜고 제일 먼저 오늘 날씨를 확인한다. 날씨를 확인해야 딸아이 등교할 때 입을 옷을 가늠할 수 있다.





낮 최고기온 26도. 최저기온 15도. 약간 흐림.

집을 나서는 8시 25분에 반팔만 입고 가기에는 쌀쌀한 기온이다. 반팔에 얇은 후드티를 입혀서 보내야겠다. 작년에 세일해서 얇은 바람막이를 싸게 샀다. 만능이다. 안에 뭐든 반팔 입히고 이 바람막이 하나 입히면 끝이다. 매일 같은 옷을 입는 느낌이긴 하다.


화장실 앞에서 씻고 나오던 남편과 마주쳤다.


"앗. 깜짝이야!"


둘 다 귀신이라도 본 듯 놀란다. 어젯밤 잠을 설쳤다고 말해본다. 회사도 안 다니는 주부가 늦잠이나 잔다고 생각할 것 같다. 아이 키운다는 핑계로 어제 힘든 하루를 보냈다고 어필해 본다.

                  

아침으로 요플레 딸기맛 하나를 땄다. 신제품으로 나오는 새로운 맛이 궁금하지만 무난한 딸기맛으로 사야 실패할 확률이 낮다. 뚜껑에 묻은 요플레를 버리자니 아깝고 이 나이에 핥자니 궁색해 보인다. 문득 부자들은 요플레 뚜껑을 그냥 버리는지 궁금해진다. 그래 이제 이 정도는 그냥 버려도 된다.


아이를 깨우면서 갑자기 아침시간이 분주해졌다. 짧은 30분 동안 일단 챙겨서 집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생각해 두었던 옷을 입히고 아이의 머리를 빗기는 사이 남편은 출근한다. 현관까지 나가 인사하고 싶지만 손에 쥔 머리카락을 놓는 순간 다시 묶어야 한다. 고개로 인사를 대신해 본다. 남편도 이해해 줄 거다. 등교 준비로 정신없는 아이와 나에게 손을 흔들며 출근하는 남편의 뒷모습이 안됐다.      


#8시 25분                           


이제 아이도 집을 나서야 할 때. 나는 분명 1분 1초를 안타까워하며 제시간에 맞춰서 내보냈는데 창문 밖으로 걸어가는 아이는 느긋하다. 앞만 보고 걸어가야 시간에 맞을 텐데 아이의 눈이 하늘로 뒤로 마구 움직인다. 저 걸음으로는 내가 5분 일찍 내보내거나 5분 늦게 내보내도 별로 의미가 없을 것 같다. 그런 아이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사소한 것에 왜 그리 목숨 걸고 아침부터 아이와 실랑이했나 싶다.


집에 혼자다.
다 나가고 이제 혼자다.                                                                                            

일요일은 세끼 밥해먹고 아이와 놀아주고 정신없이 보낸다. 그러다 찾아오는 월요일이 나는 제일 좋다. 다 나가고 아무도 없는 혼자만의 월요일.



느긋하게 커피 한잔 내려서 핸드폰으로 <보리보리>에 들어간다. 이때 마시는 커피가 제일 맛있다.

좀 전에 걸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니 매번 같은 살구색 바람막이가 조금 초라해 보인다. 다른 색으로 하나 더 사입혀 보려고 사이트를 들어갔더니 아직 세일을 안 한다. 장바구니 쿠폰도 없고 평소 문자로 귀찮게 오던 5천 원 할인 쿠폰도 없다. 


'제값 주고 사기는 아까운데... 좀 더 기다려볼까?' 


얼마 전 세일 때 사고 못 입는 옷들이 생각난다. 쑥쑥 크는 시기라 한치수 넉넉히 샀더니 커서 못 입는다. 내년에나 입혀야 할 것 같다. 온라인 쇼핑몰을 둘러보니 크게 사둔 여름옷을 제외하고 살만한 것도 별로 없다.

갑자기 옷 사는데 돈을 많이 쓰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번 여름옷은 사지 말고 대충 보내자. 방학하면 학교도 안 가고 거의 실내복으로 지낼 텐데 뭐...'


옷도 사지 않고 뭐 한 것도 없는데 시간은 벌써 10시 반이다. 촌각을 다투던 아침 8시 25분의 상황은 뭐였지 싶다. 아무것도 얻은 것 없이 2시간이 지났다. 이렇게 노안만 얻었다. 결국 내일도 살구색 바람막이를 입혀 보내야 할 것 같다.


옷장은 꽉 차서 서랍이 안 닫히는데 입을 게 없다. 그런데 버릴 것도 없는 게 더 문제다. 그나저나 한치수 크게 산 여름옷이 내년에는 작으면 어쩌지... 적당히 옷에 맞춰 커주면 좋겠다고 생각하다가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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