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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 Aug 15. 2022

(2화) 드디어 학부모가 되다.

엄마도 1학년

#카톡이 울린다.

    

바로 들어가서 읽으면 답을 바로 해야 할 것 같아 스마트워치에 뜨는 메시지로 먼저 읽는다. 옆 단지에 사는 딸아이랑 1학년 때 같은 반 친구였던 미주 엄마다.      

  


안부 인사 답장을 할까 하다가 다음 메시지를 기다려 본다.보자고 하면 섣불리 대답하기 애매하니 일단 읽지 않은 상태로 둔다.     


1분 후 "카톡 카톡"   


역시 만나자는 얘기다. 집안을 휘~둘러본다. 싱크대에 아침 설거지가 그대로 있고 애들이 벗고 나간 옷도 널브러져 있다. 월요일이라 다들 없을 때 세탁기도 돌리고 청소기도 한번 돌려놔야 오후에 애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덜 정신없다. 게다가 아침에 알람을 끄고 자는 바람에 늦게 일어나 겨우 애들 등교시키느라 씻지도 못한 상태다. 선뜻 나갈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학기 초라 4학년 미주네 담임선생님도 어떤지 궁금하고 학교 친구들과는 어떤지, 4학년이 되니 학원은 다니고 있는지 궁금하다.


'나갈까? 나갔다 오면 오전이 통으로 날아가는데….'

'에잇 어차피 혼자 점심 챙겨 먹기도 귀찮고 주말도 애들과 종일 붙어 있어서 여유롭게 커피도 한잔하고 싶은데 잠깐 나갔다 오지 뭐.'

    

    

 카페가 대부분 11시에 오픈하지만, 초등학교 근처 브런치 카페는 아줌마들의 니즈를 잘 파악한 사장들이 9시 반에 오픈하는 곳도 꽤 많다. 코로나 이전 학기 초에는 오전 10시만 되어도 웬만한 카페들이 만석이었다.

나도 첫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하고 학기 초에 얼떨결에 초등 맘 브런치의 세계를 알게 되었다. 미주 엄마도 그때 알게 된 같은 반 엄마 중 한 명이다.      


#초등 1학년 엄마는 불안하다.   

  

아이가 처음으로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날 엄마인 나도 1학년이나 다름없다. 모든 것이 낯설고 아이가 잘 적응할지 친구들이 없으면 어쩌나, 급식은 매운 게 나온다던데 매운 걸 못 먹는 우리 애는 굶고 오는 거 아닌가. 하나부터 열까지 다 궁금하고 걱정이었다. 누구 물어볼 사람도 없고 아이와 등교를 하며 혼자서만 눈을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렸다. 혹시 아는 엄마가 있을까 해서 말이다.


그렇게 아이와 며칠을 정신없이 등교를 하고 드디어 학부모 총회가 있는 날이다.     

아이를 학교 앞까지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와 씻고 옷장을 열었다. 아이와 편하게 활동하려니 옷들이 죄다 캐주얼이다. 첫인상이 중요하니 적당한 옷을 잘 골라야 한다. 너무 튀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너무 존재감 없이 보여도 안 되고. 역시 세련돼 보이기는 블랙이지. 무릎 밑 길이의 원피스를 하나 골랐다. 거울에 비춰보니 장례식장 분위기다.


문득 남편이 하던 말이 생각난다. 옷을 살 때마다 나잇살을 감춰보겠다고 검은색만 고르니 남편은 무슨 장례식 갈 일이 그렇게 많냐며 농담하곤 했다. 블랙에 포인트가 하나 있는 옷이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옷걸이를 하나씩 넘기다 보니 잊고 있던 옷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


‘맞아 이 옷이 있었지?’ 


평소에 입는 스타일과는 달리 단정하고 고급스럽게 까만 큐빅이 박힌 벨트가 세트인 원피스다. 검정 바탕이긴 하지만 다양한 색상의 무늬가 포인트로 있어 어둡지 않고 세련되다. 옷을 정하고 나니 이 옷을 사던 날이 떠올라 '픽' 하니 웃음이 났다. 그때도 이 옷을 골랐더니 남편은 평소 잘 입지 않는 스타일인데 괜찮겠냐고 물었다. 나는 격식 차려야 될 장소나 결혼식장 갈 때 이런 옷 하나쯤 있어야 한다는 이유를 대며 산 옷이다. 그러나 이 옷을 입을 일은 좀처럼 생기지 않았고 벨트가 비닐에 싸인 채 그대로 걸려있다.

그럼 어떠리. 이 옷을 입을 격식을 갖춰야 할 날이 바로 오늘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학교로 걸어가다 보니 다들 아침 등굣길에 보던 아줌마들 옷차림이 아니다. 편안한 옷에 모자를 눌러썼던 아줌마들이 한껏 신경 쓴 듯 보이는 옷차림에 두셋씩 짝지어 이야기하며 걸어가고 있었다. 어떻게 벌써 친한 엄마들이 있지? 나만 모르는 초등학교 커뮤니티 사이트가 있나? 많은 물음표를 머리 위에 그리며 학교로 걸어갔다.   

   

강당에 모여 교장 선생님의 전체 회의를 듣고 각반으로 이동해서 담임선생님과 인사를 나누었다. 아이반 담임선생님은 여성스러운 목소리에 밝은 미소를 가진 나이가 지긋한 분이셨다. 유치원에서 바로 1학년이 되어 아직 아기티가 남아있는 아이들이다. 조금 나이가 있으신 분이라 엄마처럼 포근함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 불안한 마음이 조금 놓였다. 게다가 너무 잘 웃으셔서 아이들도 많이 웃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역시 선생님운이 좋다며 혼자 안도했다.     

 학급운영위원회를 뽑는데 녹색 대표 학부모 지원을 받는다. 다들 고개를 숙이고 선생님 시선을 피한다. 나도 1학년이 처음인데 대표가 돼서 나서는 것은 왠지 부담스러울 것 같아 시선을 돌렸다. 인터넷으로 미리 찾아보고 오길 잘했다. 인터넷 맘카페 댓글대로 대표는 말고 적당히 급식 검수나 폴리스 활동(하교 시간에 하는 교통안전 관리 봉사) 중 하나를 지원하기로 했다.      


#그중에 한 사람     


하얀 얼굴에 단정하게 차려입고 엷은 미소를 띠며 대각선에 서 있는 한 사람이 눈에 띄었다. 날씬한 체형에 머릿결이 윤기가 흐르는 걸 보니 자기 관리를 잘하는 엄마임에 틀림이 없다.      


“미주 어머니가 사서 봉사활동에 지원해주셨는데 잘 부탁드릴게요”


선생님께서 그 엄마를 보며 밝게 웃으며 말했다.


‘저 엄마 아이 이름이 미주구나.’


집에 가서 아이에게 물어봐야겠다. 미주는 어떤 친구인지. 왠지 저 엄마와 1년 동안 친하게 지낼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아니 친해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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