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엄마들의 세계
육체노동을 한 것도 아니고 집안일을 한 것도 아닌데 피곤하다.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는데 불편한 옷을 입고 학교에 가서 반쯤 띈 미소를 몇 시간 내내 짓고 있느라 힘들었다. 평소 입꼬리를 올리고 있지 않으면 화난 사람 같다는 말을 들어서인지 습관처럼 사람들 앞에서는 일부러 항공사 승무원처럼 엷은 미소를 짓고 있게 된다. 서비스업을 했으면 잘했으려나? 얼굴 근육이 커다란 알사탕을 양볼에 물고 있었던 것처럼 얼얼하다
저녁식사 시간에 아이에게 물었다.
“하은아 너네 반에 미주라는 친구 있어?”
“응 있어 왜?”
“아~ 미주는 어때? 하은이랑 친해?”
“엉 친해. 나 우리 반 여자애들이랑 다 친한데 왜?”
“아니~~ 그래도 좀 더 가깝냐는 거지.”
“어... 친해~ 미주 배려 잘해.”
그래. 이 말이 듣고 싶었던 거다. ‘배려 잘해...’
‘그래. 엄마를 보니 아이 교육은 잘 시킬 것 같은 느낌이 들더니 역시나...’
지금 생각해 보니 아이 교육을 잘 시키는 것은 맞는데 도대체 어느 부분에서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것 같다.
내일 아침 등굣길에 우연히 마주치면 먼저 인사해봐야겠다.
아침 등굣길에 저 앞에 미주 엄마와 미주가 나란히 걸어가고 있다. 걸음을 조금 더 빠르게 걸었더니 하은이가 종종걸음으로 발걸음을 맞춘다. 미주네 모녀와 가까워지자 하은이가 다행스럽게도 먼저 미주를 보고 아는 척해 준다.
“미주야! 안녕!”
“어머 안녕하세요. 아이들이 같은 반인가 봐요^^”
나도 느닷없이 미주 엄마에게 인사를 건넸다. 미주 엄마도 놀란 듯 쳐다보더니 밝게 웃으며 인사를 한다. 아이들은 ‘까르르 까르르’ 웃으며 조잘대며 걸어가는데 반해 엄마들은 어색한 시간이 흘렀다. 서로 마음속으로 생각하느라 말이 없는 거겠지. 역시 미주 엄마는 신중한 타입임에 틀림이 없다. 안 그래도 불안한 1학년을 아는 엄마 한 명 없이 어쩌나 걱정했는데 그래도 오늘 안면을 터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을 교문 앞에서 배웅하고 10분 남짓되는 거리를 같이 걸어오며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얘기를 주고받았다.
처음 만나서 깊은 얘기를 할 것도 아니고 그저 1학년 입학시키니 힘들다는 말을 주고받았다. 어색한 대화의 시간을 만들지 않으려고 하늘 한 번 쳐다보며 이제 봄을 지나 더워질 것 같다는 겉핥기 대화만 맴돌았다.
머릿속은 전화번호라도 주고받아야 그래도 연결고리가 생길 텐데 적당한 타이밍만 살피고 있었다. 옆 단지 정문에 가까워지자 미주 엄마가 인사를 건넨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다.
“안녕히 가세요. 미주 어머니. 오늘 만나서 반가웠어요.”
작정하고 물어보는 것 같지 않게 한두 걸음 가다가 다시 뒤돌아 말을 건넸다.
“아참. 미주 어머니. 전화번호를 여쭙는 걸 까먹었네요. 호호. 애들도 친한 것 같던데 가끔 안부 인사하며 지내요.^^”
나름 어색하지 않게 물었다고 만족해하며 엷은 미소를 띠며 미주 엄마를 바라보았다. 흔쾌히 전화번호를 서로 교환하고 조금 전보다 더 밝게 서로 인사하며 헤어졌다.
모르는 단톡방에 초대되었다. 10명 정도 되는 단톡방인데 방 이름을 보니 <1학년 5반 엄마>다.
들어가 보니 반 전체 단톡방은 아니고 같은 반 엄마들 몇 명이 만든 방이었다. 한 엄마가 주축이 되어 전화번호를 아는 엄마들을 초대한 듯했다. 미주 엄마가 나를 초대한 것이다. 미주랑 같은 유치원 엄마가 만든 모양이다. 담임선생님이 반 모임을 금지하기에 녹색 대표 엄마는 단톡방을 못 만드니 이렇게라도 아는 엄마들이 방을 만든 모양이다. 모레 애들 등교시키고 커피를 마시자는 톡이 올라왔다. 이런 단톡방 모임 별로다. 그렇지만 아이가 1학년을 어찌 보낼지 궁금하니 엄마들과 안면을 터야겠다. 한편으론 미주 엄마한테 고마운 마음이다.
학교 총학부모회보다 브런치 카페로 가는 옷차림이 더 신경 쓰인다. 장롱 속 깊이 더스트백에 잘 보관되어 있던 명품백을 꺼내 들었다. 정장이 아니면서도 편안해 보이는, 신경 안 썼는데 신경 쓴 듯 보이는 그런 옷을 찾았다. 요즘 말로 꾸안꾸 스타일. 내가 하면서도 여자들 참 피곤하게 산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말로 나를 보여주는 데 한계가 있으니 겉모습으로 나의 이미지를 보여줘야 한다. 차를 타고 가기엔 애매한 거리지만 걸어서 가자니 구두 신고 명품백 들고 폼이 안 난다. 고민 없이 차키를 집어 들었다. 10년 넘은 차지만 국산차가 아닌 것 만으로 다들 쳐다보지 않는가. 올림픽 오륜기 같은 동그라미 네 개가 서로 손잡은 아우디가 앞에서 기다린다.
카페 앞에 주차하고 안으로 들어서며 쭉 한번 훑어본다. 긴 테이블에 여섯명 정도 앉아 있는 곳으로 걸어가며 미소를 장착한다.
“안녕하세요. 혹시 5반어머니...”
엄마들이 일제히 나를 스캔한다. 인사를 하면서도 눈은 제각각 머리, 신발, 옷, 가방에 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