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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마귀소년 Apr 05. 2022

브런치 카페 [이어]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내게 필요한 광장은

사진 : pixabay



  아무리 혼자 노는 게 좋은 사람도 평생을 혼자 놀 순 없다. 밀실에 틀어박혀 자기 일에 몰두하고 싶은 때가 있고, 광장으로 나가 누구라도 어울리고 싶은 때가 있다. 지금이 딱 그런 참이다. 방에서 너무도 오래 틀어박힌 탓에 좀이 쑤시는 나는 누구와 연결되고 싶다. 기왕이면 아는 사람과 그러고 싶지만 어쩐지 얼굴 한번 못 본 사람이라도 괜찮을 성싶다. 생각이 앞장서자 누워있던 자리서 벌떡 일어나게 된다. 낡은 티셔츠 위에 감색 윈드스토퍼를 걸치고 검은색 조거 팬츠를 입은 다음, 독일군 스니커즈를 신는 것으로 외출할 준비 끝. 전화기를 들지 않은 쪽 어깨로 외딴방의 문을 밀며 밖으로 나간다.


  어디로 가야 할까. 꽃나무가 줄지어선 울타리를 지나자마자 막막해진다. 광장은 이 도시의 어디에도 있다. 당장 생각나는 건 마트, 백화점, 지하철역, 기차역, 유원지... 그러나 경험으로 비추건대 그곳에서는 아무런 연결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 많은 곳으로 간다고 해서 연결을, 행복을 찾을 수 없다. 누군가와 조화를 이루고자 하는 시도는 모두 허사로 돌아가고 진한 외로움과 애달픔을 맛볼 뿐이다. 2020년대판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경험한 뒤 돌아올 확률이 높다.


  행정 구역명이나 아파트 이름도 무용하다. 그 이름들로는 조금 전의 나처럼 저마다의 밀실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을 불러낼 방도가 없다. 그렇다면 인터넷 광장은 어떨지? 커뮤니티, 유튜브, 뉴스 기사의 댓글창을 떠올렸다가 황급히 목록을 지웠다. 어디에서든 악다구니로 들끓어 진저리가 난다. 오가는 말과 글에 칼날이 달려 똑바로 보기 힘들 지경이다. 소설 <광장>이 발표된 지 62년, 최인훈이 타계한지도 몇 년이 지났건만 이곳은 대립과 이데올로기의 암초를 넘어서지 못했다. 그래서 새로운 궁리를 한다. 다툼의 단초조차 없는 곳, 처음 보는 사람들과도 그럭저럭 어울릴 만한 광장을 만들고 싶다.


  이제 떠오르는 건 간단한 음료를 파는 카페다. 큰길을 따라 한참 걸어서 나온 사거리의 한 지점에다 가상의 카페를 세운다. 30평쯤 되는 카페가 선 자리에서 뚝딱 만들어졌다. 외벽에 간판도 달았다. 카페 [이어](). 지금은 오후 한 시. 전지적 주인 시점으로 손님들이 들어오는 광경을 지켜본다. 여드름이 울긋불긋한 고등학생, 스타디움 점퍼를 입은 대학생, 나이가 지긋한 신사, 넥타이와 사원증을 목에 건 직장인, 집안일을 마치고 한숨 돌리려는 주부가 들어와 커피를 주문하고 제각기 한 테이블씩 차지한다. 은은한 재즈 음악이 흐르는 매장에서 사람들은 커피와 함께 오후의 여유를 누린다. 카페야말로 도시인들의 세련된 시간 소비 방법이자, 그들을 자발적으로 모이게 하는 광장이다. 평상시에 늘 혼자인 사람들이라도 최소한의 비용만 치름으로써 멋들어진 광장에 입장할 수 있다.


  카페 계산대에 앉아서 손님들이 나누는 대화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다가 허전함을 느낀다. 어떤 대화도 삼삼오오 안에서만 피었다가 사그라들 뿐 테이블이라는 영역을 벗어나지 않는다. 나는 그 테이블을 넘지 못할 것임이 자명하다. 커피 향은 손님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으는 데 성공했지만 그들과의 벽을 트는 것에는 실패하였다. 거기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김이 샌다. 주인의 권한으로 손님들을 모두 몰아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폐업합니다. 지금까지 카페 [이어]를 사랑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손님들이 매장 밖으로 모두 나간 것을 확인한 후에, 통유리창을 내고 회색톤으로 모던하게 꾸민 카페를 단매에 때려 부순다. 입으로 바람을 훅 불어 흔적까지 말끔하게 치워 버렸다. 이젠 번화가에서 동떨어진 한적한 공간으로 이동해서 브런치 카페를 세우자. 역시 규모는 30평이고, 상호商號는 전신이었던 카페의 것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주차장도 변변한 조경도 없이 땅 위에 건물만이 서 있다. 간판은 적당히 브런치 카페 다운 느낌을 내는 것으로 단다.


  외관이 그저 그러니 인테리어라도 신경을 써야지. 의자 대신 푹신하고 등받이도 있는 소파를 띄엄띄엄 놓는다. 테이블이 너무 높거나 낮지 않은 것으로 둔다. 통유리와 바닥을 깨끗하게 닦았다. 여기까지 하는 것으로 벌써 힘이 부쳐서 그 외의 내장재와 소품들은, 인기 있는 브런치 카페 여기저기서 조금씩 빌려다가 꾸몄다.


  작은 규모라 종업원 없이 주인뿐이다. 게으른 주인은 브런치 메뉴를 미리 정한 바가 없다. 그날그날 수급되는 재료를 가지고 의 마음대로 지지고 볶아서  것이다. 오픈 준비를 마친 지금은 오후 아홉 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얼굴들이 생각난다. 소파에 풀썩 소리가 나도록 앉아서 노트북을 꺼내 작정하고 공지 문자를 쓴다.


<안녕하세요? 브런치 카페 [이어]를 열었습니다. 시간 되면 잠깐 들러주십시오. 나누고 싶은 이 있습니다.>


  그리고는 시 주인 시점으로 돌아가 손님들이 들어오는 광경을 지켜본다. 대역 없이 아까와 똑같은 손님들이다. 고등학생, 대학생, 신사, 직장인, 주부가 들어와 제각기 한 테이블씩을 차지하고 앉았다. 아, 노래가 빠졌네. 벗에게 추천받은 턴테이블을 갖다 놓고 레코드를 올린다. 60년대 유행한 재즈다. 지지직 거리는 소리와 함께 음악이 흐르는 것을 확인하고는 손님들에게 오늘의 메뉴를 낸다. 


  서빙을 마친 바 너머로 손님들이 먹고 마시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본다. 잔과 접시가 비어가는 모습이 흐뭇하다. 내가 고안한 레시피대로 만든 메뉴를 먹고서도 인상을 찌푸리지 않는 그들이 고맙다. 그들이 아니었으면 모든 재료가 냉장고 속에서 쓸쓸히 잊히거나 부패해서 쓰레기통으로 들어갔을 .


  묵묵히 앉았다 떠나감이 그 자체로 충분히 고마운 일인데, 때때로 숙고에 잠겼다가 일어서서  쪽으로 건너오는 일 있다. 들고 있던 나는 그들로부터 몇 마디 마음을 건네받는다. 기쁨과 보람으로 잔이 차오르고, 이내 넘쳐서 잔굽을 타고 흐른다. 대낮에 지었던 카페에서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담이 소리 없이 녹아내려 자취를 감췄다.


  마음이 벅차오르는 오늘 밤, 나는 서둘러서 집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여길 방문해준 분들이 저마다의 장소에 만든 브런치 카페에도 차례차례 들러 남은 하루를 멋지게 보낼 것이다.




  내겐 이런 광장이 필요하다. 브런치를 팔고 있으니 그냥 카페가 아니다. 노래방 시설이나 접대부가 없어서 단란주점도 아니다. 오래 알은 벗을 불러 주안상 앞에서 지난 추억을 곱씹는 자리는 더더욱 아니다. 술을 못하는 사람이 무안하지 않도록 무알콜 음료가 준비되어 있다. 들어와서 앉아있다가 말없이 나가도 되지만 팁을 주고 나가면 더 좋다. 문은 언제든지 열고, 닫는 시간은 없다. 손님이 오는 것도 가는 것도 막지 않는다. 누구든 원하는 만큼 머무르다 떠난다.


  심상 속 브런치 카페는 도시인들의 순수한 친목을 위해 열린 아늑한 광장다. 카페의 주인과 방문하는 사람들이 서로 위로하고 삶의 가능성과 희망을 발견하도록, 남은 땅(餘地)에 지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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