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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마귀소년 Nov 01. 2021

닥치고 시작하라

외딴방에 차린 체육관

사진 출처: www.pixabay.com



  5x5 는 잘 알려진 웨이트 트레이닝 프로그램 중의 하나이다. 단일한 운동을 웨이트로 5회씩 5세트 수행한다는 것으로, 총횟수는 25회를 넘기지 않는다. 12~15회를 한 세트로 수행하는 보디빌딩식 프로그램에 비해 횟수가 적다. 대신 간신히 5회를 할 만한 무게로 한 세트를 구성하므로 강도 면에서는 더 높다. 이러한 운동법은 근육 부피의 증가보다도 근력의 증가를 우선으로 한다. (이는 파워 리프팅을 소개하는 《남자는 힘이다》의 내용 일부를 기억에 의존해 재구성한 것이다.)


  이른바 5x5는 파워 리프팅에 흥미를 붙인 지난해 말부터 지금까지 '주 3회 운동'의 기조를 유지하게 만든 마법의 단어다. 여태 살면서 6개월을 넘길 만큼 한 우물에 관심을 기울인 분야란 만화나 게임, 공부 정도가 다였다. 원체 운동 신경이 둔하여 운동이 적성에 맞지 않음을 일찌감치 알아차렸으며 여가가 날 때마다 만화나 게임을 즐기기 위해 몸뚱이를 바닥에 붙이는 습관이 몸에 뱄기 때문이다. 더불어 무절제한 식습관으로 인해 해마다 비만해져 갔다. 골고루 먹긴 했으나 양 조절에 제한을 두지 않고 끼니마다 위장이 꽉 찰 때까지 먹곤 했다. 식간에도 침대에 엎드려 만화책이나 소설을 보며 과자나 아이스크림 따위를 1~2개 정도 해치우는 것을 행복으로 삼았다. 그러면서 운동과 완전히 연을 끊기에 이르렀다.


  작년에 피트니스를 주제로 한 책을 몇 권 사서 읽는 동안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10대까지 몸을 부지런히 움직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어릴수록 운동신경이 제대로 기능하여 어떤 운동이든 익히기가 수월하며, 호르몬이 왕성하게 분비되는 시기에 육체의 기틀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생후 20여 년 간 어떤 운동에도 진득한 흥미를 붙이지 못한 나는 중대한 실책을 저지른 셈이 된다. 남들보다 다소 모자란 것을 보완하려고 힘쓰기는커녕 유전적으로 타고난 신체능력조차 발현하지 못하도록 내버려 두었으니 말이다.


  대학에만 가면 살이 빠진다는 속설이 무색하게도 20살에 체중은 최고점을 찍었으며 더 이상 공부 핑계로 체중 조절을 멀리할 수 없는 지점까지 가서야 웨이트 트레이닝에 생각이 미쳤다. 대학의 첫 여름 방학이었던 두 달간, 집으로 돌아와 피트니스 센터에 등록해 바로 달리기와 웨이트 트레이닝을 시작했다. 고도비만 상태에서 살을 빼는 데는 퍼스널 트레이닝도, 배경 지식도 필요치 않았다. 그저 닥치고 움직이기만 해도 되었다.


  생활을 위한 최소한의 활동만을 하다가 하루 2시간, 주 6회 운동을 시작한 결과는 놀라웠다. 20년 간 늘 증가할 뿐 감소한 적이 없던 체중이 매일 0.5kg, 일주일이 지날 때마다 2~3kg가 줄기 시작한 것이다. 여름이면 달고 살던 아이스크림과 음료수, 고향 친구를 만나 하는 술 한 잔 생각이 말끔히 가셨다. 두 달 간의 관심사는 오로지 어제보다 오늘 체중계의 눈금이 얼마나 내려갔나 하는 것이었다. 체중 감소폭을 유지하기 위해 식사량도 줄였다. 식당 밥공기 기준으로 3개쯤은 먹던 식욕을 조절하고 조절해서, 1개 정도에서 과감히 식사를 마쳤다. 운동이 끝나면 힘이 빠져 낮잠을 잤을 뿐 간식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특별히 들지 않았다. 이렇게 두어 달 힘쓴 덕분에 20kg 가량을 감량하고 가을 학기가 시작된 후 두어 달을 거쳐 5kg를 추가로 감량했다.


  인간이 살아갈 동기를 계속해서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기 힘으로 일군 성취가 있어야 한다. 공부는 일단 앉아서 꾸준히 읽고 쓰고 외우면 된다는 사실을 체득했으나, 운동에 대해서도 그것이 비슷하게 적용된다는 것을 깨닫는 데 너무나 긴 시간이 걸렸다. 나이키의 오랜 카피마냥 '그냥 닥치고 시작해라'. 일단 시작해서 생긴 몫이 1이 됐든 10이 됐든 손에 잡히면, 그다음부터는 어떻게든 자기가 알아서 하게 되는 게 아닐까. 스무 살의 내게 매일 바뀌는 체중계의 눈금은 그 누구의 가르침보다도 확실한 동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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