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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마귀소년 Jan 24. 2022

식탁의 전사

소심한 도시인도 이 순간만큼은 전장에서 돌아온 전사가 된다

사진 출처: pixabay



  왕은 하루에 쌀 세 말과 꿩 아홉 마리를 들었는데, 경신년(660)에 백제를 멸망시킨 후로 점심은 그만두고 조석만 들었다. 그러나 하루를 계산해보면 쌀 여섯 말, 술 여섯 말, 꿩 열 마리였다. -『삼국유사』


  공이 일찍이 진관사에 놀러 갔을 때에 떡 한 그릇, 국수 세 그릇, 밥 세 그릇, 두부국수 아홉 그릇을 먹었고, 산 밑에 이르러 또 삶은 닭 두 마리, 생선국 세 그릇, 물고기 회 한 쟁반, 술 40여 잔을 먹었다. 세조가 이를 듣고 장하게 여겼다. 그러나 보통 때에는 밥을 먹지 않고 음식가루와 독한 술을 먹을 뿐이었다. 뒤에 홍주에서 폭음하다가 죽으니 사람들은 그의 배가 썩어서 죽었는가 의심하였다. -『필원잡기』; 『연려실기술』  


  조선사람들의 또 하나의 큰 결점은 폭식이다. 이 점에 있어서는 부자와 가난한 사람, 양반과 상민 사이에 조그마한 차이도 없다. 많이 먹는 것은 영예스러운 일이고, 식사의 큰 공은 회식자에게 내는 요리의 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양에 있다. 그러므로 식사 중에는 거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말 한마디 하면 그때마다 한두 술씩 잃어버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밥통에 할 수 있는 한의 모든 탄력성을 주는 데 전심한다. 흔히 어머니들이 무릎 위에 어린아이를 올려놓고 밥이나 그 밖의 음식을 마구 먹이고, 배가 넉넉히 팽팽한가 보기 위하여 때때로 숟가락 자루로 배를 두드려 보고, 그 이상 부풀게 하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게 되어야만 먹이는 것을 그친다.  
 -샤를르 달레, 『한국천주교회사』

내용 출처: 송기호, <시집가고 장가가고>



  

  한민족은 신분 고하 대식大食의 민족이었다 한다. 나는 대식 민족의 후예로서, 끼니마다 푸짐하게 차려 배불리 먹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한때는 식사를 삶의 가장 큰 즐거움으로 알고 거의 무제한으로 추구하기도 하였다. 나의 비활동성과 무절제한 식탐, 부모님의 용인이 협업해 이뤄낸 결과는 소아비만이었다. 아버지는 자식이 날로 비대해져 감을 걱정하면서도 성장기가 끝나면 자연스레 해결될 성질인 줄로 알고 식탁에서 핍박하지 않으셨다. 어머니는 음식 솜씨도 솜씨려니와 손이 크셨다.


  저녁놀이 질 무렵, 부엌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기름진 냄새와 부글부글 끓어넘는 소리에 홀려 식탁에 앉으면 자리마다 고봉으로 꾹꾹 퍼 담은 밥이 있고, 국과 찌개와 김치를 빼놓고도 구첩쯤은 되는 풍성한 식사가 차려져 있었다. 시골에서 어렵게 자란 아버지는 그 광경을 볼 때마다 일식一食에 삼찬三饌이면 족하다고 잔소리를 하시긴 했지만, 나의 먹성은 다다익선으로서 반찬의 수가 많을수록 많이 먹을 수 있었다.   


  어디 식사뿐일까. 침대에 엎드려 만화책을 읽다가, 소파에 누워 TV를 보다가, 겨우 소화가 될 만한 시간이면 뭔가를 또 먹고 싶다. 생각이 동하기 시작하면 몸을 한자리에 가만히 둘 수가 없다. 지갑을 들고 슈퍼마켓으로 나는 듯이 달려가서 과자 봉지, 아이스크림 두어 개를 사 와서는 희희낙락 먹어치운다. 하굣길에 교문을 나서면 떡볶이며 핫도그를 파는 분식집, 불량식품을 포함한 온갖 군것질거리를 파는 문방구가 보이지 않는 손을 흔든다. 당시 나와 분식집의 대결 전적은 백전 중 승리가 잘 쳐줘도 5번이요, 나머지는 죄 패배였다.   


  어린 날 대식의 벽癖과 식탐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도 불쑥 튀어나오곤 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 같은 학급의 동무 한 명이 생일 파티를 당시로서 드물게 학교 앞 패스트푸드점에서 한 날이었다. 당시 용돈으로는 일주일에 하나를 사 먹기 어려웠던 햄버거를 맘껏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기대가 부풀대로 부푼 나는, 그 자리에 동석한 친구 어머니로부터 '먹고 싶은 만큼 마음대로 시켜도 된다'라는 예의상 말씀을 곧이곧대로 듣고, 추한 욕심을 부린 것이다.


  불고기버거 10개, 데리버거 10개, 새우버거 10개, 리브샌드 10개 시켜주세요!


  아무리 친구들과 함께 먹을 양이라 해도 어른 앞에서 지나친 말이었다. 친구의 어머니는 적잖이 당황해서는 많이 시켜줄 테니 먹고 나서 더 먹거라, 와 같은 말씀을 하셨던 듯하다. 40개까지는 아니었어도 제법 많은 햄버거를 시켜주셨고 생일 파티는 더할 나위 없이 즐거웠다. 과욕으로 인해 먹다 남긴 햄버거를 친구들과 내가 더 많이 가져가니 네가 더 많이 가져가니 옥신각신하는 장면까지가 식탐으로 얼룩진 그날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학교에 가보니 친구들은, 먹을 것이 풍요롭다고 해서 대식하거나 비만하지 않았다. 적당히 밥을 먹고 나면 운동장에 나가서 공놀이를 했다. 일시적으로 살이 붙어도 시간이 지나면 적정 체중을 찾아갔다. 하지만 그들과 달리 실컷 먹는 것만이 좋았고 움직이는 것은 극도로 싫었다.  


  10여 년쯤 몸을 망가뜨렸다가 뒤늦게 회복했고, 이제는 몸을 어떻게 가꾸어야 할지도 고 있다. 진리는 단순하다. 무엇이든 적당해야 한다. 식사도 활동도 운동도 휴식도.


  이론이야 어쨌든 대식은 삶의 즐거움이므로 그만둘 수 없다. 섭식 장애를 일으키거나 고도 비만으로 돌아가지 않는 선에서 낙을 오래 추구하기 위해 대식의 룰을 정했다.


1. 하루 두 끼만 제대로 먹는다.
2. 일주일에 3번 운동한다.  
3. 식탁에서 이성을 유지한다.




  퇴근하고 옷을 갈아입는 동안, 먼저 집에 돌아온 아내의 분주한 준비로 저녁 식사가 금세 차려졌다. 집안이 훈기와 음식 냄새로 가득하다. 오늘의 메뉴는 온 가족이 좋아하는 등갈비찜과 뜨거운 국물, 그리고 새로 담근 김치다. 이제 밥만 푸면 된다. 아내와 아이는 밥그릇에, 나는 국그릇에 방금 취사가 끝난 밥을 담는다. 아내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리고 식사가 시작된다.


  소심한 도시인도 이 순간만큼은 전장戰場에서 돌아온 전사에 빙의된다. 김이 펄펄 나는 밥을 한 숟가락 가득 입에 넣고, 등갈비를 손으로 집어 거칠게 뜯고, 얼큰한 국을 그릇째로 들고 꿀꺽꿀꺽 마신다. 아내가 오늘 있었던 일을 미주알고주알 늘어놓고 아이는 물을 떠달라 반찬을 잘라 달라 한다.


  나 홀로 말이 없다. 대답을 하는 잠깐의 틈 말고는 우걱우걱 쉼 없이 먹지만 양이 많다 보니 가족의 식사 속도는 이렇게 맞춰진다. 배가 작은 아이가 먼저 식사를 끝내고 거실로 물러난다. 아내는 적당히 먹은 다음 배가 부르다며 숟가락을 놓는다. 그러는 사이에 밥솥에서 밥을 한두 차례 더 퍼서 먹고 반찬, 국물까지 모조리 먹어치운 내가 보통 마지막이 된다.


  아내는 연인으로 데이트를 할 때부터 먹성을 타박하지 않았다. 음식점에서 3인분을 시키면 아내는 고작 0.5인분에서 1인분이나 먹었을까. 내가 2인분에서 2.5인분쯤을 먹는 데도 그만 먹으라든가 보기 흉하다든가 하는 말이 없었다.


  날씬하던 아내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체중이며 턱선을 걱정하는 사람이 되었다. 예전의 양만큼도 마음 놓고 먹지 못하는 반면에, 고봉밥 한 그릇을 다 먹고도 모자라 재차 삼차 밥솥으로 향하는 남편이 미울 만도 하다. 밥을 퍼서 자리에 앉는 나를 향해 또 먹어?라는 듯한 눈흘김을 보내는데.. 가만 보니 입꼬리는 올라가 있다. 휴우.




  나는 식탁의 전사다. 싸움을 끝내고 돌아온 전사처럼 씩씩하게 많이 먹고 배를 가득 채우고 싶다. 그러나 이성을 잃어 몸을 스스로 해치고, 식탁이며 바닥을 어지럽히고, 나와 함께 앉은 사람들의 눈살까지 찌푸리게 만드는 광狂전사만큼은 되고 싶지 않다. 문명인의 본분과 식탁의 룰을 엄격하게 지키면서 대식의 습관을 이어나가겠다.


  위장으로부터 '먹은 것 같이 먹었다'라는 신호를 받았다. 이제는 전사에서 도시인으로 돌아올 시간이다. 어지러운 부엌을 식사 전의 상태로 되돌려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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