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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랑 May 21. 2021

학원은 쓰지 못한 자들의 무덤,이다

밥벌이로서의 사교육 이야기 #1


 작가가 되고 싶었고, 사실 어느 정도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다. 열아홉에 고등학교 졸업장 대신 문체부 장관의 문학상장을 받았을 때, 드디어 내 재능이 세상에 드러나기 시작하는 거라 믿었다. 고등학교 자퇴는 내 비범한 문학 세계의 시작이었고, 술담배로 가득했던 청소년기는 내 문학적 재능이 성숙하는 과정이었다. 물론, 죄다 거짓말이다.


 그해 대입 논술 시험에는 모두 떨어졌다. 문학적 글쓰기가 아니었다는 이유로 나는 개의치 않았다. 내 논술학원 선생이었던 H는 학원 알바에 나를 꽂아주는 것으로 내 입시 실패의 책임을 대신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10년에 걸친 사교육 생활의. 나는 예술가가 되고 싶었고, 읽고 쓰면서 돈을 벌고 싶었고, 그리하여 서른 살이 된 지금 결국 사교육 자영업자가 되고 말았다.





 학원은 쓰지 못한 자들의 무덤,이었다. 하지만 학원이 제 무덤이라고 인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들 영광 비스름한 시절이 있었고, 그 영광이 곧 손에 잡힐 듯 했으므로 유목민의 마음으로 언젠가 떠날 것을 각오했다. 내가 있던 학원은 제법 큰 규모의  입시 국어/논술 전문학원이었다. 강사들의 전공은 대부분 국문학이나 문예창작 같은 것들이었다. 그런 전공들이 내뿜는 낭만 따위를 기대한 것도 같다. 스무 살이었으니까. 우습지만, 그땐 그랬다.


 물론 그 낭만이 깨지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알바 생활을 시작하면서 나는, 대학시절 촉망받는 문청이었으나 결국 등단은 안[못]한 H와 어느 지방 소재 대학의 문예창작과 박사 과정에 있는 선생 이 둘과 함께 일했다. H는 적어도 한국 문학을 계속 좋아하고 싶다면 문학가들과 교류하지 말라고 내게 충언해줬고 박사 과정의 그 선생은, 사실 이건 좀 당황스러운데, 본인이 직접 말하기 전에 자신의 카톡 프로필에 전시한 문장으로 자신이 걸어온 길에 대해 에둘러 설명했다 : "나를 찾아 떠나자."


 "그러니까 문창과 박사과정을 밟으면 이런 문장을 구사하는 건가요.", "내가 말했잖아, 문창과는 아무 소용없는 곳이라니까." 다행히도 그 선생이 참석하지 않은 술자리에서 H와 나는 그렇다면 박사가 구사하는 문장이란 대체 뭘까,에 대해 논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미처 마감하지 못한 각자의 서사를 안주 삼아 미련하게 취하고 말았다.





 학원 생활은 재밌었다. 나 따위가 입시 논술 전문가들의 문장을 따라잡는 것은 당연히 가능하지 않았으나, '고3스러운' 문장을 쓰는 건 우리보다 더 유리하다며 강사들은 나를 격려해주었다. 담배 두 갑을 놓고 어느 방 안에 앉아 학생들의 논술 답안과 자소서 따위를 내도록 고쳐댔다. 놀랍게도 그건 2011년의 모습이었는데 80년대 소설 속 상황에 들어앉아 있는 것 같아서, 나는 즐거웠다.


 그러나. 그곳에는 자신의 글을 쓰는 대신 남의 글을 봐주느라 시간을 죄 허비하고 있다는 비관 같은 것들이 안개처럼 자욱이 깔려있었다. 그 비관이 곧 내 것이 될 것만 같아 나는 가끔씩 몸서리쳤다. 여기서 보람을 찾으려 애쓰는 사람들이 있었고, 밖에서 보람을 찾고자 탈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고향을 다시 찾아야만 하는 연어들처럼, 이곳을 탈출한 사람들이 어디에선가 다시 학원 생활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왕왕 전해 들었다.


 꿈은 추상적이지만, 밥벌이는 구체적이다. 사교육의 장력은 강했다. 조선땅 최고의 고효율 직업이기 때문이었다. 배운 도둑질이 그것뿐이었던 까닭으로. 가치판단은 쉽사리 하지 않으련다. 사교육이란 전체적으로 옳지 않고 부분적으로 옳다. 먹고사는 자들을 떠올릴 때면, 아무래도 그 부분적인 것에 마음이 더 가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때의 나는 어렸으므로 내 미래를 확신했다. 나는 나의 이야기를 쓰게 될 것이다. 쓰고 말 것이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때 학원에서 만난 사람들과 다르지 않게 되었다. 내 꿈은 추상적이지만, 밥벌이는 구체적이다.


 슬프지 않다. "나는 꿈을 잃고 생활인으로 추락했다"는 식의 터무니없는 비관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스물에 상상한 '서른 즈음에'와는 많이 다르다. 이 노래를 부르던 서른 살의 김광석은 너무도 어른이었는데, 나는 아직 어른이 되지 못했다. 생은 혼돈으로 가득 차 있다. 확실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친구들에게 괜히 이런 이야기를 하고 말았더니 더없이 다정스러운 모습으로 내 말에 공감해주다가는 금세 각자의 밥벌이를 향해 뛰쳐나갔다. 그러니 나만 흔들리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것은 밥벌이에 관한 이야기이다. 친구들이 어떻게 먹고살고 있는지 궁금한 까닭에 내가 먹고사는 이야기를 먼저 해보기로 했다. 대개는 빡치는데 더러는 보람도 있다. 모든 먹고 산다는 것이 그럴 것이다.


 학원은 자신의 글을 쓰지 못한 자들의 무덤,이었다. 그 무덤 속에서 나는 부지런히 쓰는 자들을 가득 질투했다. 그러나 돌이켜보니 나도 나름대로 쓰고 있었다. 사교육은 밥벌이의 방편이었지만 그 속에서 나는 무수히 깨지고 또 깨쳤다. 그것이 나의 20대라는 것이었고, 다른 청춘들의 20대 역시 그런 이야기로 가득할 것이다. 적당히 우습고 적당히 진지한. 적당히 개같고 적당히 소중한.


 여전히 우왕좌왕 흔들리지만, 그러나 우울해지지 않으려 애쓴다. 이것은 어른이 되지 못한 자의 투정이다. 그러나 어른으로 살겠다는 노력이 되길 바란다. 그리하여 나는 오늘도 쓰기를 각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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