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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랑 Aug 02. 2021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

밥벌이로서의 사교육 이야기 #8


 학생들에게 학원에서 담배 피고 싶으면 부모님께 싸인 받아 오라고 말했다. 내 청소년기도 술담배에 지배 당했었는데 내 주제에 누굴 훈계하겠니. 다만 자영업자는 클라이언트를 중심으로 살아가니 아무래도 너희들의 복지보다는 부모님의 안위를 더 신경쓸 수밖에 없단다. 근데 라이터 좀 빌려줘라.


 학생 세 명이 동시에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냈다. 고... 고맙다. 부디 내 눈에만 띄지 말아줘. 너희를 본 순간 난 고객님들께 보고를 해야 돼. 학생들이 그 말은 또 잘 들었다. 이런 착한 비행청소년들 같으니라고.


근데 학생 한 명이 진짜 부모님에게 싸인을 받아왔다. 어차피 내 말은 듣지 않을 테니 차라리 통제된 곳에서나 담배를 펴라,는 심정이었을 학생의 부모님을 생각하니 갑자기 우리 엄마가 생각났다. 엄마 미안해요, 막 살았어서.


 막 산 죗값으로 막 사는 너를 만나야 했나봐. 기껍진 않았으나 약속은 약속이니 수업이 끝날 때면 같이 맞담배를 폈다. 


 선생님, 부모와 함께 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돈 있니?

 아니오.

 돈 벌 생각은 있니? 

 자신이 없는데요.

 그럼 대학을 가라. 부모에게 보증금을 얻을 길은 그것밖에 없단다.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지. 근데 또 이 이상의 말을 해 줄 자신은 없고. 어찌됐건 자식이란 결국 빚지고 산다는 것, 엄마를 영숙 씨라 부를 생각 말고 그냥 대학이나 가렴. 부모님께 너무 미안하면 학원은 계속 다니자. 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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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는 <호밀밭의 파수꾼>을 좋아했다. 김규항의 <B급 좌파>에 감동했고, 도서관에 있는 다자이 오사무의 책은 다 읽었다고 했다. 뭐야, 이거. 연결이 안 되잖아. 

 근데 다자이 오사무를 좋아하다니 너의 중2병은 내가 알 만하다.

 선생님, 그건 아니죠. 제가 선생님은 무라카미 하루키나 좋아한다고 놀리면 좋겠어요?

 야, 이제는 하루키가 똥을 싸도 박수 받는다지만 어쨌든 <노르웨이의 숲>은 한 시대의 고전이라고. 그리고 난 적어도 트위터 아이디를 dazai로 짓진 않았잖니.

 그건 ... 그렇죠.


 저 귀여운 다자이 고양이는 누구, 너와 트위터로 멘션을 주고 받고 있었더니 마찬가지로 사교육하는 다른 선배가 끼어들었다.

 왜 초면에 사람을 귀여워 하고 지랄.

 그냥 어른의 익살이라고 생각하렴, 재밌는 아저씨야.

 그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그럼 같이 술을 먹자.

 이제 담배로는 부족해 함께 술을 마셨다. 다행히 너는 그 자리를 즐거워 했다.


 너의 근거없는 낙관이 좋았다. 자신은 바뀌지 않겠지만, 세상은 언젠가 바뀔 거라고 얘기하는 그 신앙이 밉지 않았다. 물론 그 열정은 언젠가 부질없어 질 거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무례함과 예의를 갖춰야 한다는 마음 사이에서 방황하는 너의 태도가 솔직해 보였다. 그냥 친구나 하자. 미성년자를 받아주는 유일한 곳이라며 네가 데려온 바에서 술에 취해 말했다. 반말을 하는 건 시간이 좀 걸릴 거라고 너는 말했다.


 친구가 된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 술담배를 했다. 서로가 피던 연초를 바꿔 피기도 했고, 술을 마실 때면 서로가 쓰지 못한 소설들에 대해 이야기하다 그 구상을 한껏 비웃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대학은 가야 했다. 네가 평소 때 읽는 만큼만 문제를 풀려무나. 하지만 넌 드럽게도 말을 안 들었다. 당연히 성적은 안 나왔고, 네가 가겠다고 한 대학을 들었을 때 조금은 실망했다. 

 너, 글 쓰겠다고 한 거 아니었니. 

 아녜요, 전 세상을 바꾸고 싶어요. 글은 그 수단일 뿐이에요. 

 그 장엄함을 쉽게 만류할 순 없었다.


 그리고 너는 대학을 갔다. 바라던 대로 부모와 떨어져 살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이 목표였으니 나쁠 건 없었다. 나는 학원에 남았다. 조만간 만나자는 친구와의 기약 없는 약속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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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에 적은 일들은 모두 실제로 있었던 일이지만, 그중 몇몇은 내 머릿속에서만 일어났다. 마찬가지로, 이 글에서 일어나지 않는 일들 역시 내 머릿속에서만 일어나지 않았을 뿐이다(제프 다이어,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


 라이터를 찾았더니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주었던 건 우리 학원 학생들 얘기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사실 내 어릴 적 얘기다. 트위터 아이디를 '다자이'로 지어버린 중2병 환자는 불행히도 열아홉의 나였다. 전의 내 글을 읽은 사람이라면 나와 함께 했던 강사가 H였다는 것을 짐작했을 수도 있겠다. H를 만난 건 실제 있었던 일이지만, 그가 나를 어떻게 바라 보았는지는 내 머릿속으로나 상상했을 뿐이다.


 내 열아홉의 그 일 년은 대부분 학원이나 학원 언저리에 있던 사람들의 일로 채워졌다. 스무 살이 되었을 때 그 강사들이 내 상사가 되었다는 것만 빼면 아무 것도 변한 건 없었다. 학원은 웃긴 곳이다. 나는 그곳에서 성적은 올리지 못하고 친구만 한껏 사귀다 나왔다. 지금도 학원 빌딩의 비상 계단에는 그걸 목적으로 하는 학생들이 드문드문 들어와 밀애를 나눈다. 나는 그 사랑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조용히 옥상으로 올라가 혼자 담배를 핀다.


 라이터를 건네주던 학생들과는 졸업 후에 술을 마셨다. 한 학생은 지방 사립대에 들어갔으나 코로나 덕에 캠퍼스는 구경도 못 하고 군대를 간다고 했다. 한 학생은 공장에 취직했다고 했다. 살짝 애틋해지려던 차에 '아빠가 하는 공장'이라고 해서 마음이 짜게 식었다. 씨발, 그걸 취직이라고 얘기하면 부당하지. 그건 그냥 후계자 수업 아니여. 그래도 힘들다고요. 아이씨, 그게 김정은이 인민군대 간 거랑 뭐가 다르냐,고 얘기하려다 그냥 참았다.


 나는 얼떨결에 학원 강사가 되었다. 학원이 내 서른까지도 지배할 줄은 정말 몰랐다. 은평뉴타운에서 학생들을 만나다 보면 마음이 묘해진다. 노동 계급의 자식으로 태어난 나는 부모가 나보다 멍청할까봐 두려웠다. 아무래도 부모가 내 인생을 책임져 줄 순 없겠다. 뉴타운에 살게 된 신흥 부르주아의 자식들은 대부분 부모보다 멍청했다. 그래도 되니까.


 그래서 너희들은 안온하니. 너희들의 생은 충분히 즐겁니. 이 뉴타운을 벗어나고 싶기는 하니. 어떻게든 부모와 떨어져 살겠다고 인서울 대학을 선택했던 나는 그들이 측은하다. 아니, 측은한 건지 부러운 건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나를 다자이 고양이라고 지칭했던 선생님과는 같은 학원에서 일하게 되었다. 주에 한 번 출강을 오신다. 수업이 끝나면 담배를 피면서 우리를 묶어준 H에 대해 자주 얘기한다. 그렇게 술 먹자는 얘기만 1년 가까이 하고 있다. 우리가 코로나를 너무 쉽게 봤다.


 이렇게도 학원에 대해 할 말이 많다. 그 얘기들을 빼면 학원에 대해 할 말이 없다. 나는 왜 이제와 과거의 학원을 추억하는가. 그 때의 신앙이 그리워서인지도 모르겠다. 가끔은 문득 슬퍼지기도 한다. "그러나 졸업식 날 아무리 서럽게 우는 아이도 학교에 남아 있고 싶어서 우는 건 아니다(박완서)." 다시 돌아가고 싶은 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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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꼼짝도 하지 않고 요가를 하기 위해 매번 잔머리를 굴린다. 보아하니 학생들도 별반 다르진 않다. 나는 요가를 한다며 글을 쓰고, 학생들은 공부를 한다며 학원을 다닌다. 어쩜 우리 삶은 한결같이 요행을 바라고만 있다니. 그러니 누가 누굴 욕하겠는가. 연애라도 하면 본전은 뽑는 거겠지.


 이번 주엔 제프 다이어의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를 재밌게 읽었다. 사실 책에 있는 단 한 대목 때문에 이 글을 썼다.


"유적은 폐허가 됨으로써만 진짜 의미를 지닌다. 그 몰락이야말로 도시의 영광인 셈이다. 그것이 폐허가 주는 위안의 일부다."


 학생들은 나의 유적, 그것은 나의 몰락이 빚어낸 마지막 영광들이다. 그 사실이 내게 종종 위안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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