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잃고 나는 쓰"는 대신, 사랑을 얻고 쓸 수 없는 불구의 사람이 되어 너무도 행복하고 비참하다. 행복은 종종 야위지만 쓸 수 없는 비참함은 흔들림 없이 확고하다.
매일 시 대여섯 편, 소설 두세 편씩 읽는다. 어떤 날은 두 배쯤, 또 어떤 날은 세 배쯤 더 읽어낼 때도 있다. 문학 애호가의 성실한 독서,일 리 없다. 시 대여섯 편과 소설 두세 편의 다른 말은 '수능 국어 모의평가'이다. 나의 독서란 매일 수능 문제를 푼다는 것이다.
생에 요즘만큼 문학 작품을 많이 읽을 때가 없었고 그래서 처음으로 시를 한번 써보고 싶었으나, 제일 먼저 <청산별곡>이 떠올라 죄다 망해버렸다. 이것은 유랑민이 부른 노래 혹은 권력에서 쫓겨난 지식인의 노래. 당신의 비애가 문학사에 남긴 영향을 골똘히 생각하다 보면 부지런히 쓰면서 살겠다던 어릴 적 꿈 따위야 금세 잊히고 만다.
그러므로 국어 강사가 되어 간다는 건 문학적 불능 상태에 빠진다는 것이다. 나의 핑계는 이처럼 치밀하다. 그것도 모르고 내 어릴 적 꿈을 상기시키려는 친구의 노력이 눈물겨워, 나는 그만 카톡을 씹었다. 그 꿈을 기꺼이 팔아 어제는 그냥 친구와 술을 먹고 싶었다. 나는 다시 읽는다. 울고 있구나, 새야. 너보다 근심 많은 나도 울면서 살고 있다. 얄리얄리 얄랴셩 얄라리 얄라.
----
"(...) 흔들리며 보채며 얼핏 잠들기도 하고 그 잠에서 깨일 땐 솟아오르고 싶었다 세차장 고무호스의 길길이 날뛰는 물줄기처럼 (...) 그런 일은 없었다 (...) 가슴엔 윤기나는 석탄층이 깊었다" 이성복, <다시 봄이 왔다>
왜 나한테 시비를 걸고 지랄일까. 모의고사를 풀다가 이 시를 보고는 잠깐 멈칫거렸다. "솟아오르고 싶었다", "그런 일은 없었다". 단 두 문장으로 삶의 전반부가 모두 설명되었다.
예술가적 기질이 있었다. 그 이유로 꿈을 꾸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지극한 오해였다. 언제 <매드맨>을 보면서 "예술가적 기질을 가졌대서 예술가가 될 수 있을 거라 착각"하고 있다는 극중 대사에 박수치며 좋아했는데, 돌아보니 착각하는 그 모습이 바로 내 것이었다.
20대 내내 나를 연민하거나 남을 비웃으며 살았다. 설익은 재주와 감각을 내보이는 자들을 힘껏 조롱했고, 여물지 못한 내 모습은 성숙의 과정인 양 굴었다. '어쩌면 예술가가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생의 유일한 추동력이었다. 그 가능성마저 부정당하면 더이상 살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설익은 자들은 부딪치고 깨지며 그렇게 성장하고 있었으나, 나는 나를 숨기기 바빠 미처 나 자신을 단련할 수 없었다.
서른이 되는 날, 내가 비웃었던 모든 것들이 내게 복수하러 왔다,고 생각했다.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던 까닭으로(기형도, <질투는 나의 힘>). 내가 동안에 비웃었던 자들은 그러나 제 삶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끈기를 보여주었고, 그 끈기야말로 실은 내가 20대 내도록 갖길 원한 '재능'이었음을, 나는 20대를 다 버리고서야 깨닫고 말았다.
"(...) 내게 어렵지 않은 시절은 없었다/ 배반 아닌 사랑은 없었다/ 솟구치는 것은 토하는 것이었다/ 마라, 나를 사랑하지 마라" 이성복, <어떻게 꽃은 잎과 섞여>
모의고사를 풀지 않아도 이성복의 시를 읽을 때가 있었다. '마라, 나를 사랑하지 마라' 단지 이 한 구절을 인용하기 위해 나는 이성복을 좋아한다고 말했었다. 스무 살의 나에게 '시'란 달콤한 인용구에 불과했다. 아포리즘으로서나 시를 소비하던 그 때와 모의고사 문제로나 시를 읽고 있는 지금이, 돌이켜보니 별반 다르지 않다.
그것이 결국 내 예술적 기질이란 것의 총체였다. 세련되게 젠체하고자 했던 무수한 실패들. 나는 그 실패마저 세련되길 바랐으나 사람들이 연민하고 동정할 만한 세련된 실패조차 내게 허락된 것은 아니었다. 화려한 몰락은 없었다. 어기적거리는 걸음걸이로 삶은 계속 이어진다. 과거는 비루하고 현재는 옹졸하며 미래는 암담하다. 시간이 흐른다 한들 딱히 달라지진 않을 것이다.
----
그제는 연시조를 가르쳤고, 어제는 체언의 특성을 얘기했다. 명사는 관형사의 수식을 받을 수 있지만, 대명사는 관형사의 수식을 받을 수가 없어. 사랑은 무슨 사랑이야, 는 되지만 당신은 무슨 당신이야, 는 될 수 없다는 이야기야. 사랑을 탓할 수는 있어도 당신을 탓할 수는 없다고.
그 엄정한 규칙을 나는 때때로 까먹는 바람에, 자주 당신 탓을 하며 나에게 주어진 반성의 몫을 미루고만 있다. 염치도 없이 나는 이야기 한다. 이것은 체언의 특징이다. 대명사는 관형사의 수식을 받을 수 없다.
어찌됐건 애써 국어 강사가 되었으니 이제는 문법을 고만 좀 까먹어야 할 텐데. 세상이 온통 입시 국어로 가득 차 있다. 이 세계에 스스로를 유폐한 것을 드문드문 자책하지만 그러나 먹고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는 식으로, 나는 오늘도 생활의 반성을 하루의 끝이 아니라 일 년의 끝으로 미룬다. 수능이 끝나면 기어코 이 생활을 청산할 것이다, 매년 그랬듯 올해도 다짐하면서.
그 때까지 쓸 수 없는 비참함은 흔들림 없이 확고하다. 행복은 자꾸 야위어만 간다.
*
한 달 동안 못 썼다는 죄책감과 뭐라도 써야한다는 조바심이 빚어낸 아무말. 이게 뭔 글인지 나도 모릅니다. 그냥 갈아넣은 시간이 아까워서 올림. 아무렇게나 지껄이는 건 밥벌이로서의 작가가 아닌 자의 특권이니 너른 양해를 바랍니다. 아, 싫으시면 안 읽으면 되잖아요.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
드디어 수능 디데이 30일이 깨졌구요, 수험생 여러분 남은 기간 동안 잘 버티시길. 어쨌든 당신들은 한 달 후에 탈출하시는 거잖아요? 제가 님들에게 부러워하는 게 있다면 딱 그거 한 가지뿐입니다. 굳이 스스로를 한 해 더 가둬두지 마세요. 재수해봐야 어차피 안 오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