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신내에서 목동은 나의 삼십대
밥벌이로서의_사교육 #13
MBTI를 맹신하는 사람들을 멀리 해야 한다고 맹신하는 사람인데, 그것마저 INTP의 특징이라는 친구의 해석을 듣고 나서는 좀 넋을 잃었다. 그렇게 따지면 애초에 그게 틀릴 수는 있는 거냐. 유사과학자의 말을 심드렁하게 듣고 있는데 친구가 "넌 '누워만 있는 독립운동가'"라고 말했을 때는 나도 모르게 어머 씨발,이라 내뱉고 말았다. 모든 걸 하고 싶어 아무 것도 안 하는 나를 그리 정확히 표현하시다뇨. 선생님, 저도 MBTI의 세계로 귀의하겠습니다.
그러니 내가 목동에 있는 국어학원으로 이직하겠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나조차도 나를 믿지 못한 것이다. 설마 지금 열심히 살겠다는 거니? 언제나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다'며 괴로워하지만 정말 다르게 살아보겠다고 각오하는 건 생경한 일이라 망설이기만 했다. INTP의 뇌내망상은 이미 인생 전체를 성찰하고 있었다. 나따위가 사교육의 최전선에서 어찌 버티나. 그런 내게 H는 이리 답해주었다.
'견디지 못하는 걸 알게 되는 것도 성과야.'
그래서 침대에서 일어나기로 했다. 다만 내 이직을 가장 주저하게 만든 건 학생들의 존재였다. 은평구에서 함께한 시간이 벌써 5년이었다. 중2때 만난 그들은 어느새 고3이 되었다. 훌륭한 예술가도 위대한 혁명가도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내도록 부정했던 내 20대의 절반을, 그들과 함께 했다. 느슨한 내 삶에 긴장감을 부여한 것은 결국 당신들이었다. 물론 나만의 짝사랑이었다 할지라도.
나는 간다. 이별은 쿨했다. 눈물의 송별은 없었다. 그래, 너희들의 생은 내 알 바가 아니니, 애써 자위했으나. 너희에게 나는 곧 잊히겠지만 당신들은 나의 글이 될 것이다. 그정도로만 놓아두기로 했다.
1월 1일이 새직장의 첫 출근날이었다. 출근하느라 버스에서 1시간 이상을 보낸 건 처음이었다. 한강을 지나고 있으니 만 서른 살의 첫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내 30대를 이렇게 시작하게 될 줄 나라고 알았을까. 사교육에 이리 진심이라니, 내 서른이 우스워 괜히 마른 세수나 한 번 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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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8시까지 목동으로 가려면 적어도 6시 반에는 나와야 했다. 제대 이후 오전에 일어나는 일을 하지 않으려 그리도 애썼건만. 출근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강사들과의 아침 조회였다. 응? 이곳은 흡사 연병장이 아닌가. 자대 배치 첫 날이 떠오르고 말았다. 우렁차게 화이팅을 외치는 강사들 사이에서 나는 얼버무렸다.
배치받은 자리에 짐을 풀었더니 옆자리의 선생이 인사를 건넸다. 알고보니 그도 이번 주가 첫 출근이었다. 수업 준비로 부산스런 그의 옆에 있으니 괜히 나도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선생이 1교시 문학 수업을 끝내고 들어왔을 때, 내 불안은 증폭됐다.
"시간이 없어서 마지막엔 말을 다다다 쏟아냈더니 학생들이 그새 클레임을 했다네요. 하하."
세상에. 여기 학생들은 이미 고객님으로서의 정체성이 확고하구나. 각오는 했었지만 정작 마주하려니 벌벌 떨렸다. 떨리는 마음을 젠 체하며 애써 감추고자 했다. 2교시 문법 수업을 들어가서는 학생들과 첫인사랍시고 이리 말해버렸다.
"여러분들은 어떠실지 모르겠지만, 전 공부하는 게 귀찮아요. 세상에 할 게 얼마나 많습니까. 빨리빨리 끝내고 누워서 유튜브나 봐야지. 공부 열심히 하고 오래 하는 게 뭐가 중요합니까. 잘 해야지. 들입다 외울 생각 말고, 어떻게 해야 더 빨리 외울 수 있을지를 고민하세요.
난 공부와 관련해서는 극강의 효율을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시험에 자주 나오고 꼭 외워야 할 것들만 짚고 넘어갈 겁니다. 집에 가서 복습할 생각 마시고, 그냥 이 수업 하나로 이 파트는 끝내세요. 시간 낭비 하지 않으려고 굳이 돈 내고 학원 오는 거 아니겠어요? 집중하시구요, 저도 한 번만 떠들 거예요. 귀찮아요."
정신없이 수업을 끝내고 나와 쉬고 있는데 부원장이 나를 불렀다. 선임에게 불려가는 이등병마냥 쭈구리가 되었다. 자리에 앉았더니 부원장이 말했다.
"재랑 쌤, 수업이 괜찮았나 봐요. 학생들이 쌤 수업이 가장 좋았다네요."
"아니, 피드백이 벌써 나옵니까?"
"그럼요, 저희는 수업 끝나면 만족도 조사를 해요."
손님들에 대한 이런 지극한 서비스라니. 다시 한 번 되뇌었다. 나는 강사가 아니다. 영업사원이다. 근데 여기 학생들은 가학적인 걸 좋아하나봐. 그래도 내 잘난 척이 먹힌 것 같아 괜히 으쓱해졌다.
"그래서 말인데, 이번 한글 맞춤법 특강을 쌤께서 맡아주시면 어떨까요? 문법 잘 하시니까."
이등병에게 과업을 거부할 권리가 있긴 한가요. 괜히 나대지 말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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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주일이 정신없이 지나갔다. 학생들에겐 많이 떠들었고 강사들에겐 많이 들었다. 대개는 귀에 너무 설은 말들이었다. 아, 여긴 한사랑산악회로구나. 밈으로나 여기던 열정, 열정, 열정이 사람으로 형상화된다면 이런 거 아닐까. 난 당신들과 달리 게으르게 살길 바라는 사람,이라는 걸 감추는 일이 가장 고되었다.
쓸어버리고 싶었다, 목동, 대치동 같은 상징은. 이곳들에서 불행의 씨앗이 싹 트는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 믿음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으면서도 이곳에 오는 걸 선택하고 말았다. 내부에서의 혁명, 같은 걸 꿈꿨을 리가 없고. 그럼 무엇을 바랐기에. 아마도 역설은 나의 힘이라서.
장엄한 척은 거짓말인게 뻔해서 굳이 하지 않으련다. 먹고 살기 위해서,라고 말하기엔 먹고 살 길은 이것말고도 많아서, 생계 운운하는 건 게으른 삶을 누리려는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토록 무시하고 비난했던 사교육으로 내 생에 많은 구멍을 메워넣었다는 것이 너무 우습다. 골방 혁명가가 현실의 모순을 가장 깊이 생각하게 된 게 사교육 현장에서의 이런저런 만남 덕분이었다는 것이 나의 한계이자 성취였다.
그 파열음을 애써 비난하지도 칭송하지도 않겠다. 그러나 솔직하게 살겠다는 각오, 정도는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SNS를 비공개로 돌릴까 한참을 생각하다 그냥 말았다. 내가 SNS를 그만 둔대도, 그게 적어도 당신들 때문은 아니라는 것이 그나마 나를 보듬는 일일 것만 같다. 나는 하찮고 보잘 것 없는 존재. 그러나 또 그러면 뭐 어떤가, 라는 생각이 뒤를 잇는다.
서른 하나가 되었다. 고작, 그렇다.
*현생에서 너무 우왕좌왕하던 한 달이었던지라 아무 것도 못했습니다만. 아무도 읽지 않는대도 나는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