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벌이로서의 사교육 이야기 #6
열아홉일 때 전국 단위의 청소년 토론 대회를 나갔었다. 어떤 빨갱이가 소개해줬던 것 같다. 지방 선거가 있던 2010년이어서 그랬는지 논제가 마침 '청소년 참정권'이었다. 할 말이 많았다. 고등학교 자퇴생으로서 자부심이 하늘을 찌를 때였다. 토론 첫 날엔 교복 입은 놈들은 어떻게 떠드나 들어나 보자는 심산이었는데 역시나 '제도권' 놈들은 답답하기 그지 없었다. 청소년들이 미성숙하긴 하지만 그래도 청소년들의 삶에 실질적인 영향을 끼치는 교육감 선거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끄덕끄덕) 수준으로 이야기가 계속 맴도는 것이다. 듣고 있자니 너무 답답해서,
"아, 님들 2008년에 촛불 집회 나가셨죠? 그 때 왜 나가셨어요? 교육감 잘못 뽑아서 나가셨나요? 아니잖아요. 근데 왜 청소년에 대한 정치의 영향력을 교육감 선거 정도로만 한정하세요. 무슨 청소년 권리 제한 토론대회 나오셨어요?" 라고 따져 물었다. (그 때 이미 난 진보정당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지금도 죄송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이어서 한 말은, 투표권을 주고 말고 하는 성숙의 기준이 대체 어디에 있냐는 것이었다. 열아홉은 되는데 열여덟은 안 될 거 없지? 그럼 열여덟은 되는데 열일곱이 안 될 이유가 무어냐? 아니 열일곱이 될 것 같으면 열 살은 왜 안 돼 ... 그래서 그냥 다섯 살부터 투표권을 주자,고 어그로를 끌어버렸는데(다시금 죄송하게 생각한다) 결국 하고 싶은 말은 이거였다.
“일부 사람들이 아직 자유를 누릴 만큼 성숙하지 못했다는 가정을 받아들인다면, 자유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누구나 이미 자유를 획득하지 못하고서는 자유를 누릴 만큼의 성숙에 이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칸트).”
청소년 참정권의 본질은 당연한 권리이자 자유라는 것이다. 또한 그 자체가 성숙에 이르는 과정이다. 어그로를 끌기 위해 다섯 살부터 투표권을 주자고 했지만, 또 청소년들이 부모님과 선생님과 친구들과 함께 투표장에 가서 이런 저런 실수도 해보고 배워가는 것 역시 민주주의 아니겠는가(이건 선거용지에 낙서하는 성인들의 투표권을 박탈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아예 배울 기회가 없는 사람과 실수하면서 배우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이가 더 '성숙'에 이르기 수월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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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아득하지만 올해 4월 서울 시장 선거를 했다. 선거법이 바뀌었다. 고3 몇몇은 투표권이 생겼다. 떨어지는 낙엽에도 서로 치고 박는 것이 고딩들인데, 이번엔 또 너는 투표권이 있니 없니 가지고 아웅거리고 있었다. 귀여워. 그러다보니 얘기가 터져나왔다(잠깐 양해를 구하고 학생들의 말을 그대로 가져오겠다).
'오태양인가 하는 사람은 '게이 축제' 확대하자던데요?', '윽, 게이 축제래! 자기가 게이인가봐', '민주당은 페미들이잖아요. 문재인은 야동도 금지 했는데', '문빠들 대가리 깨야 함', '오세훈 되면 정시 늘겠죠? 아 씨발 수시충들 뒤졌으면'(상관 없는데), '멍청아, 그 땐 우리 대학 갔지', '병신, 넌 재수할 거임.' 가히 휘황찬란하다.
그 와중에 내 눈치를 보는 학생들은 내가 정의당 당원이라는 걸 이미 알고(난 말한 적 없다. 학생들이 내 번호를 추가하면서 내 SNS를 함께 털었을 뿐이다) "쌤, 이번에 정의당은 누구예요? 있으면 찍으려고 했는데"하고 말한다. 부러 떠올린 그 '예의범절'이 가상하여 나는 피식거린다. 가끔 과하다 싶으면 "나도 퀴어 축제 확대 찬성하는데?"하고 갑분싸하게 만들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학생들은 다시금 자신들의 세계로 돌아가 열심히 떠들어댄다.
이들의 모습을 '혐오 세력의 준동' 같은 말로 일컫고 싶지 않다. 물론 이들의 발화는 명백한 '혐오 발언'들이다. 그러나 이런 것 역시 배움과 성숙에 이르기 위한 지난한 과정,이라고 생각지 않으면 이미 말했듯 가르친다는 내 존재이유는 사라진다. 차라리 이들에게 이리 격 없이 떠들 기회를 갖게 해준 투표권 확대에 감사한 마음을 가질 따름이다.
이들의 이념적 지향에 내가 동의할 리 없다. 그러나 이렇게 드러내지 않으면 깨뜨릴 수도 없다. 그저 숨어서 야금야금 혐오를 키울 뿐이다. 강사의 권위도, 협박도, 논리적 설득도, 감성팔이도 각각 필요할 때가 있다. 투표권이 더 많은 학생들을 향해 내려앉아야 그 모든 이야기를 '시작'이나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득하긴 하다. 학생들의 생각은 이미 저만치 나가 있다. 교과서에서 '삼권분립' 같은 거나 떠들어대는 동안, 학생들은 인터넷 커뮤니티 등지에서 모든 혐오 섞인 말들을 흠뻑 흡수한다. 거의 정치중독자들이다. 뭐, 나도 디씨 진갤러였으니 딱히 할 말은 없는데 ...
그런 까닭에 현안에 대한 논쟁 없는 '민주 시민 교육'이라는 게 과연 유효할까, 의아하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민주시민교육'의 교과 도입은, 그 취지가 무색하게 '옳은 말 대잔치'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저 혐오 발언들을 논쟁에 부치지 않고 그저 '교육'하게 되는 순간, 학생들은 침묵하거나 숙면을 취할 것이다. 혹은 뒤에서 '페미 묻었다'거나 '전교조 빨갱이' 교육이라는 어디선가 줏어들은 말들로 혐오나 야금야금 키우겠지.
옳음을 일방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다름의 논쟁과 연대의 확대가 필요하다. 그게 가능한 방법은, 나도 열심히 공부해야 알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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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냉정할 순 없다. "공감각적 '심상'"을 설명하는데 "대표 님(심상정)이 떠오르네요"라는 학생의 말을 들었을 땐 좀 울컥해서(?) 민주 사회에서 당원이라는 건 국회의원이나 쫓아다니는 게 아니라고 쏘아부쳤다. 여가부 얘기가 나왔을때는 화가 나서 실컷 떠들었더니 한 학생이 "방학 때 정치 특강 만들어주시면 안 돼요?"라는 농담으로 되레 내 흥분을 가라 앉혔다. 흥분한 게 민망하여 '그건 수능 과목이 아니라서 돈이 안 된다'고 나 역시 농담으로 맺었다.
물론 여당, 야당을 구분 못하는 학생들도 쌔고 쌨다. 보고 있으면 답답해서 내 청소년 때의 총명함을 자랑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래봐야 뭐하겠는가. 천천히 가르칠 일이고 배워야 할 일이다. 대체 무엇을 위해. 민주주의를 위해.
그래서 나는 가끔 '입시 공부는 민주주의를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배움을 향한 동력이 사그라져선 안 된다. 다른 말로는 교육이다. 학생들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렇게 한다면, 포기하지 않는다면 모든 형편 없는 것들 속에서도 우리는 결국 나아가고 말 것이다. 그리 믿는다.
다섯 살을 위한 민주주의를 향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