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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정하 Aug 07. 2023

억대 연봉 찍고 12개월 후, 이보다 나쁜 건 없었다

episode 12. 아홉 살 인생

봄이 오려하고 있었다.


벼락처럼 찾아온 우울증의 긴 장마는 종종 툴툴 대기는 했지만 우르릉 쾅쾅하는 굉음을 내며 겁주거나 넘실대는 수해가 되어 날 익사시키겠다고 위협하지는 않았다.


어느덧 회사를 나오고 세 번의 계절을 경험했고 이제는 해가 바뀌었다.


줄어든 연봉을 상쇄하기 위해 시작한 영어 수업은 일대일 수업을 하는 까닭에 많은 수업을 할 수도 없었지만, 제대로 홍보를 하지 못했음에도 수업이 이어졌다.


마케터로 10년 이상 밥 먹고 살았지만, 정작 나의 서비스 브랜드를 마케팅하는 것은 못하는 역량 부족을 체감하며 과연 나는 마케터 소양이 있는 사람이었는가 하는 근본적 질문에 부딪히기도 했다.


불과 1년 전에는 상상할 수 없던 밥벌이었고, 기회였다.


온전히 나를 알리고 능력을 팔기 위한 고군분투를 하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회사원 시절, 매일이 고됐지만 회사가 전쟁터라면 밖은 지옥이라는 것을 직접 경험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생계란 그토록 무서운 것이었다.


월급쟁이에게 있어 월급은 단순한 돈이 아닌, 삶이자 한 끼의 밥이었고, 때로 비굴해지고 존재를 넘어 존엄이 박살 나는 것을 참는 대가였다.


분노와 눈물, 피와 땀이 숫자로 환원되는 것, 그것이 월급이었다.


그런 월급쟁이 세계에서 밀려나 어쩌다 보니 시작했지만 이제는 결코 놓을 수 없게 된 영어 선생님의 생활이 너무 좋아서 실감이 안 났다.


내가 선생님이라니..!


새롭게 만난 제자는 통통한 볼이 아주 귀여운 9살 남자 어린이였다.


파닉스가 완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영어책 읽기 수업에 들어온 터라 천천히 알파벳부터 진도를 나갔는데 가르치는 내가 놀랄 정도로 빠른 실력 성장이 보였다.


공부란 지적 호기심을 끈기 있게 절제하며 파고드는 하나의 재능임을 9살 어린이를 통해 다시금 알게 되었다.


화상 수업으로 진행하는 영어책 읽기 클래스 시간에 맞추어 노트북 앞에 앉은 아이의 눈빛을 따라 BGM으로 '불타오르네'가 흘러나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수업에 열의를 보이던 기특하고 사랑스러웠던 아이는 첫 수업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영어책을 읽고 해석할 수 있게 되었다.


아기곰의 모습으로 찾아온 제자에게 쑥과 마늘만 주었을 뿐인데 어느덧 완전한 사람이 된 느낌의 성장이었다.


나만 바라보는 그 초롱초롱한 눈빛, 수업의 시작과 끝에 정중히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손을 흔드는 그 모습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직 생계만을 목적으로 하는 일을 할 때에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성취감이었고 보람이었다.


일이라 함은 그저 옛날로 치면 김매고 밭 가는 것이며, 일터란 작물을 거두는 논, 밭에 불과하다며 일에 그 어떤 서사를 부여하는 것도 단연코 배제하던 나였다.


수업 시작은 늘 어제와 오늘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좋았던 일은 어떤 것이었는지를 묻는 일상 이야기를 나누며 수업에 몰입하기 전의 온도를 만드는데, 그날은 ‘행복’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이는 행복이 뭐라고 생각해?

잠깐의 생각을 하는 모습도 귀여워 물끄러미 기다려주자 비장하게 어린이가 말했다.


아무 일도 없는 거예요.
음? 아무 일도 없는 게 행복이야?
네. 나쁜 일 없으면 행복한 거예요.


이럴 수가.


디오게네스의 환생인가?

원효대사의 재림인가?


내 앞에 시대의 철학자가 있었다.


내가 생각해 왔던 행복이란, 정확히 표현하면 행복 그 자체라기보다 행복이라는 손에 잡히지 않는 파랑새를 쫓는 도구들을 사들이는 행위에 초점이 있었다.


내 소유의 아파트, 통장에 쌓인 넉넉한 현금, 매달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과 누군가에게 지시할 수 있는 위치.


그것이 행복이라 믿었고 그것을 쫓았다. 끝이 보이지 않았기에 할 수 있는 한 가속 페달을 가장 세게 밟으며 냅다 달려온 지난 14년이었다.


내 옆을 지나가는 것이 무엇인지, 지나쳐온 것이 무엇인지 볼 틈이 없었고 관심도 없었다. 그저 할 수 있는 것은 달리는 것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가드레일을 들이받았고 정신을 잃었다.


그저 누운 채로 '나를 죽이려고 하는구나, 나 죽는 꼴을 봐야겠나 보구나.' 하며 불상의 대상을 향해 분노를 터뜨렸다. 이 눈물이 멈추면 한 번에 이 모든 괴로움과 지난한 삶을 끝내버릴 방법만을 생각했다. 그때 생각의 끝은 스위스였다.


다른 도착지는 없었다. 무조건 스위스였다.


불면의 밤 속에서 잠들기 위해 가장 긴 재생시간으로 읊어주는 기도문 영상을 찾던 중 알고리즘에 의해 처음 듣는 성가 하나가 흘러나왔다.


아무것도 너를 슬프게 하지 말며
아무것도 너를 혼란케 하지 말지니
모든 것은 다 지나가는 것 다 지나가는 것

https://www.youtube.com/watch?v=GqfMa_U7ucU&t=1s


지나가는 것이었다. 이 눈물도, 분노도, 굳다 못해 석회화되어 바스락거리며 부서지던 내 안의 절망도.


더 나쁜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정말 더 나쁜 일은 더 일어나지 않았다.


나쁜 일이 없는 하루, 난 이미 충만하게 행복한 중 이었다.


나는 영어를 가르쳤지만 9살 제자는 인생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아홉 살 인생은 진정 위대한 것이었다.


얼마 후 제자 어머님의 암이 재발했고, 제자는 할머니댁에 맡겨지면서 수업을 이어갈 수 없게 되었다.


항상 궁금한 마음을 품고 있다가 시간이 꽤 지난 후 치료에 차도는 있으신지 안부를 묻기 위해 어머님의 전화번호로 연락을 해 보았다.


없는 번호였다.


9살 제자가 아무일 없는 날을 살고 있기를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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