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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정하 Aug 06. 2023

억대 연봉 찍고 11개월 후, 친구를 끊어냈다

episode 11. 그녀와의 이별

고등학교 2학년 때 만나 나이의 앞자리가 두 번이 바뀌고 이제 곧 세번째 바뀌려 할 정도의 시간이었다.


아무것도 없던 시절부터, 무언가를 이뤄내던 시기에 이르기까지, 인생의 꽤 중요했던 시기 모두에 있던 친구였다.


마지막 말을 던진 것은 나였는데,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으나 아마도 '내가 알던 너 같지가 않다. ' 였을 것이다.


마지막 대화의 날은 20대 대통령 선거의 다음날이었다.


다툼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나를 계몽의 대상으로 보는 태도. 그로 인해 그녀와 친구관계를 유지하면서 때때로 마음의 상처를 입곤 했지만, 그녀 외 이렇다 할 친구가 없었던 내게 있어 친구에 대한 절박함이 상처를 덮곤 했다. 함께 있을 때 재미있던 시간도 매우 많았고 웃긴 추억도 많았기에 친구 사이라면 있을 수 있는 상처 주고받기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나 역시도 알게 모르게 상처를 주고 민폐를 끼쳤을 것이 분명하기에, 이 정도는 우정이라는 인간관계의 유지에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수반되는 부수적인 것들에 불과하다고 믿었다.


온 식구가 함께 식사할 밥상 하나 놓기도 어려울 정도의 작은 집에 살고 있던 스물두 살 시절. 수능 후 동물병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동생이 안락사 위기에 놓인 강아지를 안고 무작정 집으로 잠입하며 운명처럼 강아지와 가족이 되었다. 넉넉하지 못한 삶, 고단한 생계로 부모님부터 아직 초등학생이던 막내 동생까지 웃음이라고는 찾을 수 없던 집에 한 마리의 강아지가 찾아와 흑백 화면 같던 생활을 컬러로 바꿔주며 나 역시 강아지를 보고 싶은 마음에 늘 집에 일찍 귀가를 하게 되었다.


그 강아지에 대한 설렘과 기쁨을 표현하는 내게 친구가 말했다.


그 집에 강아지 키울 데가 있어?


가난한 것은 사실이었고 강아지의 자리가 마땅치 않아 바구니에 담아 키우고 있었기에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시간이 흘러 강아지의 한쪽 눈에 녹내장이 찾아와 적출수술을 하게 되었고, 악이라고는 하나도 찾을 수 없던 그 예쁜 눈이 한쪽만 남았다. 하지만 수술한 눈은 항상 윙크하는, 남다른 귀여움을 뿜어내게 되었다. 사랑스러움에는 달라짐이 없었다. 수술이 다행히 잘 끝났다고 안도하는 내게 그녀는 '애꾸눈'이라 말을 쏟았다가 재빠르게 다른 말로 화제를 돌렸다.


그녀가 때때로 실언이나 다름없는 말로 내게 상처를 주어도 무엇이라 따져 말한 적이 없었다.


그녀가 유일한 친구였기에 그럴 수 없었다.


나는 을이었다. 그런 내가 유일하게 딱 한번 매우 분노하며 화를 낸 적이 있는데, 나를 투명인간 취급하며 인사를 받지 않고 팀의 대부분의 일을 떠넘기지만 문제가 생기면 늘 책임을 내게 돌리던 상사로 인해 괴로워하던 때였다.


늘 기죽어 지내는 너의 그 모습이 우스워 더 그럴 것이라는 말에 눌러왔던 화가 터져 나왔다.


나의 이 상황에 한번 들어와 본 적 없는 그 충고가 너무나 가벼웠다. 나의 고통을 오로지 나의 문제로 이야기하는 있는 자의 시각이 누명과 무시의 반복에 눌려 얇은 합판이 되어버린 자존감을 아예 우지끈 부서뜨리는 것 같았다.


우울증 진단을 받고 휴직을 하며, 결국 퇴사로 이어져 최저임금만도 못한 급여를 받으며 일하게 되자 나를 찾던 많은 사람들의 연락이 끊겼다. 하지만 그래도 그녀는 지근거리에 있었고 집만이 유일한 우주였던 나에게 종종 연락을 주었다.


나락으로 떨어진 듯한 삶을 살며 작은 돈벌이로 생계를 이어가던 내게 우연히 수입으로 이어지는 개인 영어 수업의 기회가 찾아왔고 친구에게 한껏 들뜬 목소리로, 기쁜 소식을 전했다.


잘됐다, 열심히 해봐 라는 평범한 응원을 기대하는 그녀는 예상 밖의 말을 던졌다.


희한하네?


나의 기쁨을 희한하게 여기는 그 말이 믿기지 않아 되물어 확인했다.

희한하다고..?
응. 희한해.


잘못 말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와의 긴 시간들의 필름을 되감아 보았다.


연애의 환희에 젖어있을 때도, 사람을 더 이상 믿지 않던 내게 누군가 다가와 함께 하자고 손을 건네었을 때도, 미국 회사로 이직하며 괜찮은 대우를 받게 되었을 때도,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나를 믿고 영어 수업을 맡기고 싶다는 분께 기회를 받게 되었을 때에 이르기까지, 나의 좋은 일에 있어서 그녀는 늘 평가절하했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평가에 많이 흔들리고 좌우됐었다. 그만큼 나에게 중요한 사람이었다. 유일한 친구였다.


정규 근무 시간에는 마케터가 되고, 퇴근 후에는 영어 수업을 하는 이중생활을 이어가며 바빴지만 살아있다는 생동감과 보람도 느끼며 희한해하는 친구의 실소 담긴 말은 흘려보냈다.


하지만, 그전처럼 유일한 친구의 존재가 절실하지는 않았다.


그즈음 눈물을 폭풍처럼 쏟아내며 누워만 있던 꽤 긴 시기, 바닥으로 떨어져 절규하며 흉해져 가는 나의 모습에도 떠나지 않고 발을 주물러주며 그 모든 것들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주던 연인이 미래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 하나 건사하기도 어려워 감히 생각하기 어려웠던 것들을 말하는 그의 앞에서 혼란과 기쁨, 두려움과 걱정이 거의 같은 비율이 섞인 무응답밖에는 할 수 없었다.


이런 나의 고민에 그녀는 펄펄 화를 내며, 네 마음이 완벽한 확신이 아니면 절대 가서는 안 되는 길이라고 했다.


나에 대한 걱정이라기에는 너무나 격렬한 화였다.


고민한다는 자체가 마음이 확실하지 않은 것이라며 헤어짐을 채근했다.


정말 헤어져야 하나..?


혼란과 기쁨, 두려움과 걱정을 연인에게 밝히자 내가 평소 자주 했던 말을 그대로 그가 돌려주었다.


머리로 하는 두려움은 마주하면 생각보다 그리 크지 않아.

우울증이 찾아온 후로 기억력이 현저히 나빠져 중요했던 몇 가지의 순간들만이 사진처럼 아스라이 남아있었는데, 그 사진들을 한 장씩 반추했다.


눈은 떴지만 정신이 없는 상태로 누워있는 내 옆에 그가 있었다. 정신의학과의 대기실 옆자리에도, 때때로 햇빛이 고파지면 웅크리고 누워있던 거실의 붙박이장 앞자리에서도 그가 있었다.


눈물만 주룩주룩 거리고 있던 나를 다그치지도 않았고, 내버려졌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의 거리로 지켜봐 주고 있던 그는 나에게 작은 기회들이 찾아올 때마다 박수를 치며 좋아해주었고 달달한 것들을 사주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환기되었다.


사랑에 속고, 돈에 울며 이리저리 치이기만 했던 나의 20대부터 30대를 한심히 여기는 줄로만 알았던 친구의 속마음이 처음으로 들리는 것 같았다.


순탄하지 않았던 지난 연애, 살아남기 위해 아득바득 달려들던 나의 시간에 비해 그녀의 삶은 그 정도의 큰 질곡이 없었다. 내가 수시로 낙석이 발생하는 비포장 도로였다면 그녀는 때로 굴곡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잘 정비된 자동차 전용 도로 같았다.


그런 그녀가 삼십대 후반에 이르러 첫 연애를 하며 애닳아 하는, 처음 보는 모습들이 낯설었다.


쿨내 풀풀의 그 모습이 아니었다. 연인과의 여러 일로 마음 아파하고 괴로워하는 나의 모습에 우유부단하다고 질책하며 따가운 말을 던지던 그 모습이 아니었다.


얼키설키 뭐 하나 제대로 된 것 없어 보였던 나의 지난 20대, 30대가 다시 보였다.


널브러진 쪼가리 더미에  불과한 것인 줄 알았는데, 시간이 한 땀 한 땀 이어 붙인 퀼트 공예가 되어 있었다.


숨어들고 싶을 때는 커튼이 되고, 추우면 덮을 수 있는 것.


내 청춘, 내 기쁨, 내 추억을 한데 모아 짜올린 한 폭의 퀼트 공예를 누더기로 보이게 한 오랜 친구.


그 이유로 난 너를 끊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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