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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정하 Aug 05. 2023

억대 연봉 찍고 10개월 후, 닥치는 대로 살기로 했다

episode 10. 립스틱 짙게 바르고

벼락처럼 찾아왔던 우울증을 끼고 살아낸지 어느덧 10개월.


시작이었던 쏟아지는 눈물에 묵묵히 버티자 우울증은 곧 입을 막았다. 그 어떤 감정 표현도 뱉어낼 수 없는 지경이 되었음에도 기어나가는 나를 괘씸히 여기듯 이어서 귀를 막았고, 그럼에도 발버둥 치며 살아보겠다고 악다구니를 치자 가소롭다는 듯 글을 읽지 못하게 만들었다.


무슨 내용인지 눈에 들어오지 않는 몇 가지의 서류에 서명을 하고 우울증으로 인한 병가, 무급 휴직으로 한 달의 시간을 받았으나 복귀에 대한 거대한 공포로 퇴사를 하고 먼지처럼 집에 있다가 그래도 먹고살기 위해 최저임금 일자리를 찾고, 그러다 우연히 아르바이트 자리까지 겸하며 숨통을 틔울 수 있었다.


비빌 언덕도, 믿을 구석도 없는 내게 생계는 우울증 만큼이나 두렵던 것이었다.


그렇게 움직여지지 않는 몸을 달래고 겁주며 일으켜 세웠고 돈을 벌며 앓으며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10개월이 지났고, 마케팅 아르바이트는 4대 보험이 되는 직장이 되었다.


완전 재택에서 주 2회의 출근으로 변경은 있었지만, 다른 직원 없이 혼자 일하는 자리었고, 자그마한 회의실을 개조한 사무실이었기에 누군가와 마주치거나 할 두려움도 없었다.


무엇보다 건강보험의 주체가 될 수 있어 안도했다.


퇴사를 하고 무엇도 할 수 없어 누워만 있을 때에도 일단 국민연금 납입 예외 신청과 건강보험 피부양자 등록은 처리해야 했다.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를 겨우 끌어내며 건강보험공단에 전화하여 환갑이 넘은 아버지의 건강보험의 피부양자에 오르는 몇 가지 행정업무를 하며 아버지 직장 위치를 거리뷰로 찾아보았다.


어릴 적 그토록 나를 심하게 미워했던 아버지의 직장은 작다 못해 시골의 농막 같았다.


그런 아버지의 등에 이 나이가 되어 얹혀있다는 자괴감이 자뭇 괴로웠다.


실업자가 되고, 바닥으로 내팽개쳐져 이도저도 아닌 사람이 된다는 것은 가난해지는 것 이상으로 불시에 슬퍼질 일이 많아진다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10년 전 급여보다도 작아진 수입.

나의 연락을 반가워하지 않는 인간관계들.

분주함, 사람들, 처세, 감정연기 같은 것들에 대한 형언할 수 없는 공포감.


이것은 대가였다.


당장의 행복을 무시하고, 폄하하며 교만했던 나에게 스스로가 내린 형벌이었다.


처음에는 억울했고, 분했으며, 원망스러웠다. 극도의 분노가 타오르고 꺼지기를 반복했다.


그 시간만 버티면 행복해질 것이라 믿었기에 상사와 동료들의 미움과 따돌림도 견딜 수 있었지만 행복은 저축 보험이 아니었다. 몇 년간 꾸준히 저축만 하면 원금에 이자에, 추가로 보장되는 플러스 알파 따위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계획이란 웃긴 것이었다.

계획대로 되는 것은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제 하고 싶은 것 하고, 먹고 싶은 것 먹으며 나도 닥치는 대로 살기로 했다.

행복을 유예하지 말고, 그때 그때 바로 새콤달콤 까먹듯 꺼내먹기로 했다.


얼마 후 담당 브랜드의 첫 번째 VIP 행사 날이 다가왔다.


바비리스로 머리를 말고, 냉장고 깊은 곳에 처박혀 있던 씨씨크림을 찾아 바르며 오랜만에 화장을 하고 행사장으로 향했다.


립스틱 짙게 바른, 나에게도 낯설 만큼의 다듬어진 예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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