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연애 소설 연재_사랑하지 않은 자의 고통
오랜만에 경험하는 이별임에도 폭풍처럼 휘몰아지는 감정의 파도도 소나기 같은 눈물의 질주도 없었다.
놀랍도록 평화롭고 고요하며 똑같은 일상의 반복이었다.
오히려 Y의 부재가 주는 편안함에 새삼 놀라는 K였다.
더 이상 샤워 후 미처 닦지 않은 욕실 타일 물기에 스트레스받을 일도, 퇴근 후 돌아온 Y에게 저녁식사로 뭘 만들어 주어야 할지 고민할 일도, 수시로 화장실 변기 뚜껑을 떨리는 마음으로 들어볼 일도 없었다.
설날과 추석에 Y의 본가에 가서 영업 미소를 띠며 상차림에 동참하고 세상 참한 신붓감의 다소곳한 모습으로 예비 며느리 코스프레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이 일었다.
Y와 함께한 일상의 시간은 일종의 결혼 전 수습기간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 기간을 거쳐 K는 Y와의 결혼에 더 등을 돌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헤어짐은 K가 아닌 Y에 의해 종결됐다.
오랜 시간 Y의 나약함에 아쉬워했지만 진정 강한 사람은 K가 아니었다는 팩트의 허망함에 K는 그저 허탈했다.
생각해 보니 표면적으로 일어난 일은 오랜 남자친구와의 이별뿐, 득이 되는 상황이 더 많다고 안도했다.
예상보다 고통스럽지 않았고 아무렇지 않았다.
처음 독립을 선택해 먹고 싶을 때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자고 싶을 때 자던, 다시 만난 자유.
생각보다 크지 않은 이별의 후폭풍에 안도하며 이 자유를 만끽하기로 했다.
Y는 K가 처음으로 함께 살았던 남자였다. 그간의 연애와는 확연히 달랐던, 서로의 생활에 각인이 되어버린 사람이었다.
그 각인이 짙어지기까지 각자의 삶의 영위 방식을 알고 받아들이며 서로를 익혔고 그 시간 속에 다투기도 하고 웃고 떠들던 시간이 분명히 있었다.
그 순간은 분명 좋은 것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헤어짐으로 찾아온 편안함 역시도 분명 좋은 것이었다.
그러나 나눠하던 집안일을 오롯이 혼자 하게 되는 고단함과 불시에 몰려오는 외로움과 괴로움은 만만치 않은 것이었다.
예상보다 더욱 강렬한 것. 이토록 강렬할 줄 감히 몰랐던 것.
그중에서도 가장 괴로운 것은 오로지 K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후각의 기억’이었다.
Y에게는 그 어떤 향수, 비누에서도 맡을 수 없던 아이의 맑음, 소년의 순수, 청년의 청량이 뒤섞인 젊은 남자만이 가질 수 있는 체취가 있었다.
Y는 K보다 5살이 어린 남자였다. 그리고 그와 7년을 함께 보냈다. Y의 나이보다 더 어렸던 시기에 만났던 그 어떤 남자친구들에게서도 느낀 적 없던, 가장 강렬했던 페로몬 그 자체였다.
그 향기 때문이었을까, 거듭된 그의 사고와 잘못에도 스스로 눈과 입을 가렸던 것은.
앞으로는 맡을 수 없을 Y 체취의 탑노트는 시간의 저 편으로 소멸했고 이제 애써 노력해야만 환기될 미들노트.
그 무엇으로도 만지거나 간직할 수 없는 그것.
Y의 체취를 향수 삼아 매일 머금고 싶다던 말들은 더 이상 로맨틱이 아닌 허공에 매달려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바늘이 되었다.
헤어진 연인의 향기에 대한 추억이 너무 괴롭다며 후각을 마비시켜 달라고 병원을 찾아가는 여자가 등장하던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며 K 역시 이건 후각이 환각화된 일종의 정신착란 이라며 머리를 흔들었다.
스무 살 이후로 쉼 없이 누군가를 만나 연애라는 것을 해온 K에게 연애란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는 식의 일상이었고, 사랑이란 배고프면 밥을 먹는 것과 같은 생존을 이어가는 하나의 본능적 행위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한 번의 연애가 끝나고 다음 연애가 시작되기까지의 시간이 길든, 짧든 괴로웠다.
사람으로 받은 상처는 사람으로 치유한다고 하지만 치유란 없는 것이었다. 흐려지는 것일 뿐.
스스로의 껍질을 벗어던지면 심장 언저리에 여러 개의 생채기가 있을 것임을 알았다. K가 누군가에게 받은 것의 수만큼 K를 사랑했던 지난 연인들의 그곳에도 그러할, 그 당연한 사실들.
이 모든 생각의 물결에 떠밀려 숨이 가빠질 때쯤 무엇이라도 해야 함을 알았다. 일을 하고 청소를 하고 쓰레기를 버리는 행위가 아닌, 가장 비생산적이면서도 시간을 흘려보낼 일. 그것이 필요했다.
한동안 제쳐두던 넷플릭스에 접속해 접속해 가장 유치해 보이는 일본 드라마 시리즈를 한편 고르고 맥주를 준비해 그 유치함에 피식거릴 준비를 했다.
머리 위로 언제 후드득 떨어질지 모를 헤어짐을 환기시킬 추억의 바늘들에 대한 경계를 잠시 거둘 수 있는 잉여로운 시간의 수혜.
몇 편째인지 세지 않고 물끄러미 정주행 하며 어느덧 맥주 3캔째.
취기는커녕 오히려 더 강렬해진 Y의 체취가 정체한 구름처럼 코끝에 머물러 있다.
누군가 맥주를 마시면 빵냄새가 난다고, 맥주는 역시 마시는 빵이랬는데 왜 이토록 흩어지지 않는 Y의 향기만이 머물고 있는지 코끝을 찡그리며 짜증을 내보지만 어림없는 후각의 환각화에 괴롭다.
제법 더워진 온도 속에서 몸이 떨린다.
분명 슬프지 않은데 몸이 떨려온다. 부들거림을 억지로 견뎌보다 밀려오는 뻐근함을 인정하고 뜨거워진 눈을 문질러 닦았다.
그리 슬프지 않은데 왈칵 터져 나온 눈물이 새삼스럽다.
7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했으나 그의 사라짐이 슬픔이 아니라 허탈함이라는 것이 고통스럽다.
뜨거워진 눈과 얼굴을 연신 닦아내며 고통의 이유가 무엇인지 분명해졌다.
K는 Y를 ‘그렇게까지는’ 사랑하지 않았다.
7년의 시간을 그저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의 견딤으로 보냈다는 한심함.
사랑했다면 달랐을, 감히 상상도 안 되는 시간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음에 대한 처절한 미련으로 몸은 떨리고 눈은 뜨겁다.
K와 Y가 끝낸 것은 사랑이 아니었다. 관계였다.
더위는 한층 더 뜨거워졌고 떨리는 K의 몸의 체온도 그러해졌다.
사랑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주는 괴로움의 떨림, 그 속에 높아져가는 공간의 온도.
여름이 깊어져가고 있었다.
Y 없는 Y와의 시간에서 가장 뜨거운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