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파이낸스 강의/잔소리 또는 책문

글을 시작하며 - 중생심

by 화상 바오로

동일한 주제로 다시 글을 쓸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것도 「프로젝트 파이낸스 원리(Principles of Project Finance), 제2판」 번역서를 출간한 같은 해에 말입니다.


「프로젝트 파이낸스 원리(제2판)」는 크게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책임에도 불구하고 좀 더 편안하게, 그리고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한편, 이제는 타인의 글을 번역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글을 써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유하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저는 그때마다 ”어휴, 적자나는 사업은 그만할래요” 또는 ”그 내용이 기존 글과 크게 다르지 않아 사회적으로 부가가치가 높지 않은 글쓰기는 지양하려고요" 하고 말씀드렸습니다. 다만, 해외 인프라 프로젝트 및 해외 구조조정에 대해 친절하게 안내해 주는 책이 국내에는 없어 기회가 되면 E.R.Yescombe/Edward Farquharson이 쓴 「Public-Private Partnerships for Infrastructure」, 그리고 Bob Hedger/Chris Howard의 공저인 「Restructuring Law and Practice」를 번역해 보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이들 책 번역사업 또한 적자를 볼 것이 뻔하기 때문에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회사 연수팀으로부터 프로젝트 파이낸스 업무 강의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이런 제안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었고 그래서 일찍이 거절의 의사를 밝힌 바 있기 때문에, 또 연수팀의 연수 방향에 동의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저라는 사람은 언제나 말보다 글이 편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요청을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또다시 조직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사안에 대하여 강하게 ‘노‘라고 하지 못하는 저의 성향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몇 해 전 갑자기 미국 에이티넘 프로젝트 매각 업무를 맡게 된 때처럼 말입니다. 그때도 ”조직이 저를 필요로 하신다면...” 하고 우물우물하다 해당 업무 담당 의사를 물어온 당일 인사발령이 난 적이 있습니다. 이 얘기를 나중에 전해 들은 제 동기는 ”으이그... 물어보는 사람이 듣고 싶어하는 얘기를 그렇게나 시원하게 얘기해 주다니” 하면서 낄낄 웃었습니다. 해서 강의를 준비하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책을 한 권 출간한 이후의 강의가 그 전과 같을 수는 없었습니다. 기존에 마련되어 있는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조금 수정해서 제가 하고 싶은 얘기나 경험을 덧대는 방식의 강의는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해서, 백지상태에서 목차를 잡아봤습니다. 처음 프로젝트 파이낸스 부서에 발령받은 직원이 자료를 검토하고, 여신을 승인하고, 금융계약을 체결하며, 그리고 사후관리를 하는 통상적인 과정을 떠올리며 전체적인 흐름을 만들었습니다. 강의 대상은 대부분 팀원급 직원들이 될 것이라는 점, 그리고 저의 현 직급이 팀장이라는 점을 감안해 문체를 정했습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제가 이들의 가상의(virtual) 팀장이 되어 업무 잔소리를 하는 상황이 눈앞에 그려졌습니다. 그렇게 ‘라떼‘ 잔소리를 가득 떠올리다 보니, 강의안은 어느새 글이 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이 글에서 프로젝트 파이낸스 업무에 대한 모호한 이미지를 벗겨내고, 이 업무를 취급하는 금융기관 직원들에게 필요한 핵심 역량이 무엇인지 제시하고자 했습니다. 또한 프로젝트 파이낸스 업무를 해당 업무 전문가의 영역으로 좁게만 볼 것이 아니라, 금융의 큰 틀에서 조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도 강조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이론이 아닌 실무에 대하여 감을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프로젝트 파이낸스가 쉬운 업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렵기만 한 업무는 아니라는 점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한편, 쉽게 쓰려고 했지만 글 중반 이후는 수월하게 읽히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그럴 의도는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프로젝트 파이낸스 업무 내용의 전반을 담아야 했고, 이 글의 목표가 지식만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과 인사이트를 전달하는 것이다 보니 많은 내용은 이미 다른 책이나 업무 경험을 통하여 파악하고 있다고 가정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업무를 소개하는 방식에 저 개인의 경험과 의견이 강하게 투영되어 있습니다. Oil & Gas 부문 중심으로 기술하였으며, 채권보전장치 및 구조조정에도 많은 내용을 할당하였습니다. 한편, 프로젝트 파이낸스 업무 설명을 위하여 기업금융 및 EDCF 관련 내용도 조금씩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만, 제가 해당 업무를 담당한 기간이 길지 않아,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이들 업무에 대하여 쓸 수 없었다는 것도 한계라고 생각합니다.


해서 이 글은 교과서를 보완할 뿐이며 교과서를 대체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통해 프로젝트 파이낸스를 처음 접하는 분들은 「프로젝트 파이낸스 원리(Principles of Project Finance), 제2판」를 함께 읽으실 것을 권합니다.


그러니, 이 글의 성격은 평소 제가 직장 동료들과 (술 한 잔 하면서) 토론할 때 내뱉었던 얘기를 정리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가장 정확하겠습니다. 글을 맺고 나서 다시 읽어보니 그 내용이 당초 목표한 바에서 좀 벗어났지만, 중간중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입니다. (이 업무에 대하여 흥미가 생겼다면 그것만으로도 목적의 절반은 달성한 것이 아닐까 자위해 봅니다) 혹은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있거나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다소 적절치 않다고 판단할 수 있는 내용도 일부 포함되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시선들이 단순한 비난이 아닌 논리에 기반한 비판으로 이어질 때 업무 발전과 조직 발전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에 저의 부족함에 대한 모든 비판은 언제든지 달게 받겠습니다.


「사찰의 상징세계」 서문에서 자현 스님은 아래와 같이 썼습니다.


‘나 아니면 안 돼‘라는 생각만큼 무서운 착각도 없다. 그러나 책을 집필하고 논문으로 쓰는 데 있어서 이런 생각은 필수적이다. 이 역시 또 하나의 악착같은 중생심인 것이다. 그래도 이러한 중생심은 새로운 창조를 낳고, 또 불교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렇게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자위해 본다.


지금 저의 심경을 정확히 짚은 말씀입니다. 다만 ‘나 아니면 안 돼‘라는 생각보단 ‘나부터‘라는 마음이 좀 더 컸습니다. 또한 오래전부터 ‘나만 아니면 돼‘는 ‘나 아니면 안 돼‘ 못지않게, 아니 오히려 더 부정적인 쪽으로 조직의 발전을 저해하는 마음가짐이라고 믿어왔습니다.


어쨌거나 제가 뱉은 말들이 스스로를 다그치는 채찍이 되었습니다. 과거 담당 부서장이셨던 한 선배의 조언처럼 내친김에 한 발 더 내디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언젠가 기회가 주어진다면 혼자가 아니라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대한민국 프로젝트 파이낸스 업무를 version 2.0으로 업그레이드해 보고 싶습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