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파이낸스 강의/제1강(1)

잔소리: A국의 모라토리움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by 화상 바오로

1-1. 잔소리: A국의 모라토리움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안녕하세요? 화상 바오로 팀장입니다. 강의를 통해 여러분을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국제 프로젝트 파이낸스(Project Finance, PF)는 우리기업의 수출 및 해외투자를 지원하는 수출입은행의 핵심 업무 중 하나입니다. 동시에 내용이 복잡하여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분야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Yescombe의 「프로젝트 파이낸스 원리(Principles of Project Finance), 제2판」라는 책의 역자 서문에서 썼듯, 매우 독특할 것만 같은 혹은 전문적일 것 같은 PF의 속성들은 사실 금융의 기초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강의의 최종 목표는 PF 전문가 양성이라기보다는 오히려 PF에 산재해 있는 금융의 구성 요소들을 함께 살펴보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다시 말해 저는 PF의 독특함이 아니라 PF의 평범함에 대하여 얘기하고자 합니다.


강의 방식은 팀장이 팀원에게 잔소리를 하는 형태가 될 것입니다. PPT 형태의 강의자료는 이미 여러 형태로 내부에서 구할 수 있습니다. 또한 유명 해외 로펌이나 MDB, 또는 국제 상업은행들이 작성한 자료들도 인터넷을 통해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PF 개요에 대한 한글 책들도 이미 몇 권 출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이러한 자료들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자료에는 행간을 채우는 ‘목소리'나 ‘경험‘이 부재하기 때문입니다. 직장에서의 그러한 ‘목소리‘나 ‘경험‘은 주로 팀장의 잔소리, 또는 실무 경험이 풍부한 동료 직원의 어드바이스 형태 등으로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PF 부서 근무 경력이 없는 이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아마도 PF 부서 팀장들의 잔소리, 경험 많은 동료 직원들의 어드바이스, 그리고 안면을 트고 편하게 지내는 외부 자문사들의 전문적인 식견 등일 것입니다. 저는 현직 팀장이니만큼 아무래도 여러분에게 잔소리를 하고자 합니다.


(PF에 국한된 것은 아닌) 간단한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얼마 전 A국이 모라토리움을 선포했습니다. 모라토리움 선언이란 한 마디로 ‘나 값을 돈 없어. 배 째‘란 뜻입니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 상황을 맞이하여 EDCF1) 소속 모 팀이 작성한 보고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차주가 모라토리움을 선언했고 차관 원리금 상환도 연체했지만, 우리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모라토리움 선언일로부터 30일이 되는 날까지는 우리기업이 이미 수행한 과업에 대하여서는 대금을 지급하겠다.”


일국의 모라토리움 선언 및 차관 원리금 연체는 상식적으로 Event of Default(EoD)2) 상황인데 어떻게 이런 결론이 도출되었을까요? 이는 EDCF 차관계약(Loan Agreement) 표준문안 및 관련 규정의 해석과 관련 있습니다. 먼저 EDCF 차관계약서 해당 조항을 살펴보겠습니다.



Section 8.02 Acceleration of Maturity


When any of the following events shall have occurred and be continuing, the Bank may, by notice to Borrower and the Guarantor, if any, suspend in whole or in part the rights of the Borrower. If any of the following events shall have continued for a period of thirty(30) days from the date of such notice, the Bank may terminate disbursement and/or may declare all the principal of the Loan then outstanding, with the interest and any other charges hereon, to be forthwith due and payable whereupon the principal, interest and other charges shall immediately become due and payable.



리고 이 section 하부에 EoD로 규정될 수 있는 사건들이 열거되어 있습니다. 당연히 차관 원리금 연체나 차주의 모라토리움 선언도 EoD에 포함됩니다. 문제는 30일이 지나야 차관 집행을 중단하거나 차주에 대한 기한의 이익3)을 상실시킬 수 있다고 되어있는 부분입니다. 이 문장 때문에 직전 문장의 의미가 크게 퇴색됩니다. 사실상 ’차주 권리의 전부 또는 일부(in whole or in part of the rights of the Borrower)’란 차주가 대출금을 정상적으로 인출할 수 있는 권리 및 기한의 이익에 다름 아니기 때문입니다.


차관계약서의 조항이 이렇게 작성된 것은 아마도 규정이 그렇게 정하고 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큽니다. 관련 규정은 살펴보니 차관 원리금 연체가 30일을 초과하지 않을 경우 지연배상금을 물리지 않게 되어있었습니다. 즉, 차관 원리금 상환일에서 30일이 경과한 시점까지는 연체로 보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러나 여기서 언급된 30일이라는 기간은 순전히 기술적인 문제(technical default)에 적용되는 유예기간(grace period)입니다. 즉, 개도국이다 보니 이러저러한 문제가 생겨 정해진 날에 차관 원리금이 상환되지 않을 수 있으니, 너무 야박하게 굴지 않고 충분한 여유를 주자는 것이 규정의 취지일 것입니다. 개도국과의 거래에서는 실제로 이런 일이 왕왕 발생합니다. 이에 반해 은행여신거래기본약관4), 그리고 대부분의 상업금융기관의 금융계약(그러니까 PF 금융계약도 마찬가지입니다)에는 이러한 유예기간이 거의 주어지지 않습니다.5) 즉, 상업적 성격이 강할수록 대출 원리금 미상환에 대하여 엄격하게 취급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30일간의 유예기간이란 말 그대로 ‘연체기간이 30일을 초과하지 않는 한 연체일수에 대하여 지연배상금을 매기지 않겠다'라고 읽어야지, ‘해당 기간 동안 추가적으로 자금 집행을 해도 된다‘라고 해석하는 것은 아무래도 어색합니다. (물론 차관계약의 해당 조항이 그러한 해석을 유도한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부도가 발생하면 금융이 최우선적으로 챙겨야 할 업무 중 하나가 부도 차주 앞 추가적인 익스포져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러한 사태가 발생할 때 침착하고 상식적으로 대응하려면 금융계약을 공부해 두어야 합니다.


게다가 모라토리움 선언은 상식적인 EoD사건이므로, 금융인이라면 즉각적으로 기한이익 상실 조치를 취하고 나아가 강제집행 절차를 이행할 것인지 여부를 검토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차주와의 관계, 법률적 제약 및 강제집행의 실효성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합니다. 물론, 예시로 든 이 경우는 차주가 주권국가의 정부이기 때문에 아마도 강제집행에 나서는 것은 처음부터 고려대상에 없었을 것입니다.6) 게다가 기한의 이익을 조기 상실시킬 경우 아직 상환기일이 도래하지 않은 차관 원리금에 대하여까지 소멸시효가 개시된다는 법적 부담이 발생합니다. (그러므로, 사실 국가 모라토리움 사태는 파리클럽을 통한 채무재조정 등 국제사회를 통한 해결 외엔 답이 없다고 봐야 합니다)


물론 기금 목적상 우리기업에 대한 고려가 있어야 하겠죠. 우리기업은 성실하게 업무를 수행했는데, 차주국이 모라토리움 선포를 했다는 이유로 대금을 받지 못한다면 억울한 면이 있겠죠. 무역보험공사의 해외공사보험7) 가입 등으로 이러한 위험을 회피할 수 있었겠지만, 이는 일단 논외로 하겠습니다. 그래서 정책적으로 우리 기업 피해 최소화를 위하여 현재까지 수행한 업무에 대해 기금이 대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에도 기금(=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된 돈)이 입을 수 있는 피해를 함께 고려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만약 제가 굳이 이 페이퍼 내용을 좀 고친다면 그 내용은 아마도 아래와 같을 것입니다.


”차주가 모라토리움을 선언했고 차관 원리금에 대하여서도 연체했지만, ① 이는 일시적 경제위기에 따른 것으로 동국 정부는 사태 진정이 될 경우 차관 원리금을 성실히 상환할 것을 약속했고, ② 우리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해야 할 정책적 필요성을 감안하여 우리기업이 현재까지 수행한 과업에 대하여서는 대금을 지급하겠다.”


비슷하지만 차이가 느껴지나요? 아마 여러분의 팀장님들이 여러분이 작성한 페이퍼에 대하여 수정을 할 때 위와 같은 방식으로 잔소리를 할 것입니다. 잔소리를 좀 더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1) 기획재정부가 한국수출입은행에게 위탁하여 운영하고 있는 대외경제협력기금(Economic Development Cooperation Fund)을 지칭합니다.


2) 우리말로 하면 ‘채무불이행 사건’인데, 채무를 이행한다는 것이 ‘원리금 상환’으로 좁게 이해될 수 있으므로, 여기서는 EoD라는 용어를 사용하고자 합니다.


3) 대출계약을 어기지 않는 이상, 차주가 정해진 날짜보다 빠른 날 대출금을 상환할 의무가 없다는 권리를 의미합니다.


4) 한국수출입은행 은행여신거래기본약관 제3조(이자 등과 지연배상금) ⑤ ... 채무의 이행을 지체한 경우에는, 곧, ... 지연배상금을 지급하기로 하되...


5) LMA(Loan Market Association) Single Currency Term & Revolving Facility 제22조(Events of Default) 22.1 Non-Payment 참조. 동 조항은 행정적 또는 기술적 에러 또는 결제시스템 문제 등 매우 제한적인 사유에 한하여 짧은 기간의 유예기간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6) 국가채권 관리법 제3조(적용 제외 채권) 제2항은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다음 각 호의 채권에 대하여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이 법의 일부를 적용하지 아니할 수 있다. 1. 외국 또는 국제기구를 채무자로 하는 채권, 2. 즉시 소멸하는 채권, 3. 제1호 및 제2호의 채권 외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채권. 국가채권 관리법 시행령에 따라 적용 제외를 받는 부분은 체납액 및 회수업무의 위탁(시행령 제14조의2), 강제이행의 청구 등(동 제15조)입니다. 이 외에도 담보 제공/보존(동 제18조 및 제19조), 가압류와 가처분(동 제20조), 채권자대위권의 행사(동 제21조), 사해행위의 취소(동 제22조) 등이 있습니다.


7) 해외공사계약 상대방의 신용위험 발생, 해외공사 발주국 또는 지급국에서의 비상위험 발생에 따라 손실을 입게 된 경우에 그 손실을 보상하는 제도(www.ksure.or.kr/insur/over_con01.do, ’2022. 7. 14 접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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