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파이낸스 강의/제2강(1)

영어가 주 언어인 부서

by 화상 바오로

2-1. 영어가 주 언어인 부서


이번 강의까지는 일반적인 얘기를 조금 더 이어가고자 합니다. 보다 기술적인 내용들은 다음 회차 강의부터 차차 다루고자 합니다.


수출입은행의 설립 목적이 ‘아국 기업의 수출 및 해외투자‘인 만큼 기본적으로 영어가 광범위하게 사용됩니다. 부서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영어는 피해 갈 수 없는 관문이고, 영어실력1)은 업무를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할 머스트 해브(must have) 아이템입니다. 그중에서도 PF 부서는 다른 부서에 비해 영어를 쓸 일이 많습니다. 사실 그 정도가 아닙니다. 다른 부서에서는 영어가 부차적이지만, PF 부서에서는 한국어가 오히려 부차적인 언어로 기능한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PF 딜은 통상 대규모 파이낸싱이 요구되기 때문에 국제 협조융자가 일반적이기 때문입니다. 협조융자 혹은 신디케이션은 각국의 ECA2) 뿐 아니라 국제 상업은행들이나 기관투자자들이 프로젝트에 소요되는 재원 마련을 위하여 함께 자금을 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다양한 금융기관들이 딜에 참여하려면 뉴욕이나 런던 등 금융중심지에서 통용되는 방식3)이 업무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이는 다시 각각의 금융기관 PF 담당 직원들이 국제금융 업무에 능통한 직원들로 채워지는 이유가 됩니다. 국제금융 업무에 능통한 직원들은, 당연한 얘기지만, 영어도 잘합니다.


그러나 보다 더 직접적인 이유는 사업주/차주의 금융자문사(financial advisor)4)와 금융주선사(financial arranger)5), 그리고 대주단의 실사(due diligence)6)를 위해 고용되는 대주단 자문사7)들, 다시 말하면 금융협상의 전반적인 과정을 주도하는 이들이 주로 영미권 출신이라는데 있습니다. 금융협상은 참여하는 금융기관 모두가 함께 하는 것이지만, 회의 어젠다를 정하고, 각종 자료를 준비하고, 회의를 진행하며, 그리고 회의에서 논의된 내용을 바탕으로 향후 추진방향을 정리하는 일은 일차적으로 금융자문사와 대주단 자문사의 일입니다.8) (그러므로 금융자문사와 (특히) 법률자문사 비용이 많이 듭니다) 다만, 이러한 절차는 해당 딜이 개도국에 소재해 있거나 리스크 구조가 생소하여 ECA 또는 MDB 등의 pathfinder 역할이 요구9)되는 등 딜 구조 최종 확정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경우에 국한되어 있다는 점은 기억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 특히 선진국에서 표준화된 방식으로 추진되는 PF 딜이라든가 과거 추진했던 사업의 후속 시리즈 형태로 발주되는 딜의 경우 금융참여 여부는 딜 구조가 이미 거의 확정된 상황에서 ‘take or leave‘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이때 개별 금융기관에게 주어지는 자료 리뷰 시간은 1달 남짓입니다. 이처럼 짧은 시간 내에 방대한 양의 자료를 파악하고 금융참여 여부를 결정10)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수준의 영어실력이 요구됩니다. 다만, 나중에 다시 얘기할 기회가 생기겠지만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영어실력 향상보다는 PF 심사에 대한 시스템 개선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러나 제가 오늘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영어가 아니라, 영어가 주된 언어로 기능하는 업무환경과 관련된 얘기입니다. 영어가 주된 언어로 기능하는 업무환경이란 업무처리가 상대적으로 논리 정연하게 이루어지는 환경11)을 의미합니다.12) 업무처리가 논리적이어야 한다는 얘기는 너무 당연해서 오히려 추상적으로 들릴 수도 있기 때문에 쉬운 예를 들어 설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유년시절 잠시 국제학교에 다닌 적이 있습니다. 국제학교에서의 수업방식은 많은 점에서 한국학교의 수업방식과 차이가 있었지만, 그중 제 기억에 남는 수업 중 하나는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이들을 위해 학교가 개설한 ESL(English as a Second Language) 수업이었습니다. 수업내용에는 당연히 작문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수업 초기 가장 제가 힘들어했던 과제는 예컨대 다음과 같은 빈칸 채워 넣기였습니다.


I prefer dogs over cats, because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I (do not) believe in God, because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분명 한국학교에서의 영어수업은 ‘나는 강아지를 고양이보다 좋아한다‘를 영작하는 데서 그쳤는데, 국제학교에서의 수업은 ‘왜냐하면(because)‘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습니다. 담당 ESL 선생님은 답변 그 자체보다는 답변의 논리성을 매우 강조하셨으며, 가끔씩 제가 창의적인 답변을 했을 때는 크게 칭찬을 해주셨습니다. 이러한 수업방식은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각인되어 ‘왜냐하면‘은 이후로 제 사고방식의 지배적인 체계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ESL 수업은 단순한 영어수업이 아니라, 보다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방법도 가르치는 수업이었던 것입니다.


PF 부서에서도 ‘왜냐하면‘은 매우 중요합니다. 기본적인 자료조사가 끝나면 이내 상대방과의 협상에 돌입하게 되는데, 이때 자신이 요구하는 바를 ‘왜냐하면‘에 기반하여 논리적으로 전개하는 이와 그렇지 않은 이는 협상 결과에 많은 차이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케팅 활동이 제한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PF 부서 업무 특성13)상 부가가치는 바로 이 지점에서 창출됩니다.


종종 실사 과정에서 “우리는 A 조건은 반드시 관철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부 이사회를 통과할 수 없다“라고 목에 핏대를 올리는 이를 봅니다. 잠시 협상장을 주도하는 모습으로 비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곧 상대방은 차분한 목소리로 “이사회를 통과할 수 없는 까닭은 무엇인가요? (그건 당신 내부 문제이고, 내가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해 달라)“ 하고 되물어오는데, 이때 상대방이 수긍할 수 있는 논리적인 답변을 하지 못하는 경우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나는 당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도대체 이해하지 못하겠다. 왜 그렇게 막무가내인 것이냐? “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올바른 협상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는 A 조건은 반드시 관철시켜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제안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계량화하기 힘든 해당 사업소재지국의 특정 법률 변경 리스크14)를 대주단에게 전가하는 형태인데, 이 리스크는 그 성격상 우리보다 해당국 정부가 더 잘 관리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식으로 논리 정연하게 의견을 표명하는 경우 통상 상대방은 “잘 알겠다. 당신 얘기에 일리가 있으니, 당신의 제안을 심사숙고한 다음 수 일 내에 답변하겠다“고 정중하게 얘기합니다. 협상이란 이슈 제기, 쟁점에 대한 논리적 대화15), 그리고 절충안 마련이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논리 정연하게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이는 이 과정에서 보다 나은 협상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덤으로, 분명한 논리를 바탕으로 협상 상대방으로부터 인정을 받는 경우 쉬는 시간에 말을 걸어오는 이들이 생깁니다. 게다가 다음번 협상 시 상석을 마련해놓고 앉기를 권유합니다. 나아가 협상을 마친 후 가끔 갖는 저녁자리(사실 업무 영어는 영어도 아닙니다. 떠들썩한 저녁자리에서 쓰는 영어가 제일 힘듭니다16))에서도 “오, 아까 당신 멋졌어“라는 얘기를 듣게 됩니다. 논리 없이 목소리만 높이는 이들이나 프리라이딩에 익숙한 이들(이들은 저녁자리를 두려워합니다. 아무도 아는 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 조선시대 궁형을 언도받은 이와 유사한 심정일 수도 있습니다)은 결코 누릴 수 없는 호사입니다.


자, 이번에는 ‘왜냐하면‘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예를 한 번 살펴봅시다.


과거 국내 가스발전 프로젝트 금융지원을 검토한 적이 있습니다. 이 사업의 경제성을 판가름하는 핵심 요소는 사업주가 얼마나 저렴하게 천연가스를 도입할 수 있는가에 있습니다. 그 얘기는 금융기관 실사의 핵심이 가스도입계약 조건에 대한 검토인데, 우리나라 사업주들은 영업비밀이라는 내용으로 계약내용을 잘 공개하지 않습니다. 국제 거래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죠. 그래서 “공개가 어려운 까닭이 무엇입니까? 비밀이 누설될 것이 우려되면 비밀유지약정17)을 체결하면 어떻겠습니까?“라고 제안했더니, 상대방은 “아니, 하기 싫으면 관두면 되지, 뭘 꼬치꼬치 물어요?“라고 퉁명스럽게 답했습니다. 그 결과 실사 부족이 이유가 되어 금융지원이 이루어지지 못했는데, 저는 바로 이러한 관례18)가 국내 프로젝트 파이낸스 발전을 막는 요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봤습니다.


자, 지금까지 개인의 업무성과 제고뿐 아니라 대한민국 금융발전을 위한 필요충분 요건으로서의 ‘왜냐하면‘의 중요성을 함께 살펴봤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아래와 같은 방식으로 ‘왜냐하면‘의 생활화를 연습해보면 어떨까요?


배럴(barrel)의 약자는 왜 bbl인가요?(왜 r이 아니라 b가 두 개인가요?)19)
원유 거래단위에 부피(배럴, 갤런, 리터 등) 외에도 무게(톤 등)을 쓰게 된 연유는 무엇인가요?20)
전쟁으로 파괴된 일부 전력망을 복구하는 사업도 상업성21)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이건 PF가 아닌 구속성 원조와 관련된 사안입니다)


보다 쉬운 질문부터 시작해도 되구요. (관점에 따라 쉽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왜 팀장님은 칼퇴근을 고집하나요?22)




1) 영어실력은 learning curve 차원에서도 중요합니다. 비슷한 실력의 직원들이라도 매일 100페이지의 영어문서를 읽을 수 있는 직원과 50페이지의 영어문서를 읽을 수 있는 직원은 수년 후 많은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매일매일 외국 상대방과 영어로 효과적으로 소통하려면 영어에 상당히 능숙해야 합니다.


2) Export Credit Agency의 약자로 공적 수출신용기관을 의미합니다. 우리나라의 공적 수출신용기관은 수출입은행과 무역보험공사입니다.


3) 예컨대 금융계약은 LMA(Loan Market Association) 표준양식을 사용하는 것 등입니다.


4) 사업주를 위하여 최적의 프로젝트 파이낸스 금융조달 방안을 자문하는 회사입니다.


5) 프로젝트 파이낸스 금융을 인수(underwrite)하고 시장에 이를 매각(sell-down)하는 회사입니다.


6) ‘실사(due diligence)’와 ‘심사(credit review)’는 유사하지만 서로 다른 개념입니다. 실사는 사업주가 대주단에게 소개하는 프로젝트의 구조와 리스크 분배 형태 등이 실제로 그러한지 경제적, 기술적, 법률적 측면에서 살펴보는 것이라면, 심사는 실사를 통해 확인한 프로젝트의 리스크를 해당 금융기관이 받아들일지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7) 법률자문사, 시장자문사, 기술자문사, 사회환경자문사, 회계 및 세무자문사 등이 있습니다.


8) 경험이 많은 직원이라면 예비투자설명서(Preliminary Information Memorandum) 및 Term Sheet만 읽어도 실사의 핵심, 즉 사업주와 집중적으로 협상해 나가야 할 부분이 어떤 부분이라는 것을 대강은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협상의 논리를 제시하고, 또 최종적으로 협상 결과를 계약서에 반영하는 것 등은 전문가들의 능력이 요구되는 영역입니다.


9) 시장에서는 ECA가 참여하여 딜 구조를 확정시킨 사업을 ‘ECA blessed deal’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10) 여신의향서(letter of interest)가 아니라 금융참여 확약서(letter of commitment)가 요구되는데, 이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이사회의 승인을 득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11) 한국어로 소통을 하다 보면 상대방이 내뱉은 단어 하나에 감정이 상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그러나 영어로 소통을 하는 경우, 영어가 제2외국어인 우리들은 아무리 화가 나도 ‘I am very disappointed...’ 정도로 표현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쩔 수 없는 언어의 장벽은 이처럼 감정이 개입될 수 있는 여지를 상당히 제한하는 순기능(?)도 있습니다.


12) 물론 모든 해외 딜이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PF 딜은 대개 ‘선수’들이 참여하기 때문에 어처구니없는 떼를 쓴다거나 하는 일은 흔치 않습니다.


13) ‘업무량의 상당 부분이 실사에 배분되어 있는 수출입은행 PF 부서 사정상’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습니다.


14) 일반적인 법률 변경 리스크는 사업주 또는 대주단이 부담할 수 있으나, 특정 섹터 또는 해당 사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법률 변경 리스크는 사업소재지국이 지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15) 제가 법률가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느낌을 받는지 모르겠지만, 법률가의 장점은 복잡한 사안을 논리 정연하게 정리하고 이를 바탕으로 쟁점 또는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 싱가포르 JAC 사업 관련 대주단이 BP 및 Glencore를 상대로 소송을 한 적이 있는데, 판결문을 읽고 처음 들었던 생각은 다른 수많은 문서 읽어보는 것보다 이 판결문을 읽어보는 게 훨씬 더 낫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아, 물론 대주단이 승소해서 이런 기분이 들 수도 있겠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제8강을 참조하세요.


16) 수출입은행 전무이사를 역임하신 홍영표 전무님의 일갈입니다.


17) LMA에는 표준 비밀유지약정을 공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통상 대주단간 계약(Intercreditor Agreement)에 이러한 비밀유지약정이 첨부됩니다.


18) 우리나라 발전 PF를 가장 많이 자문하는 회사 중 하나인 NICE신용평가 담당자와 상담을 한 적이 있는데, 그는 “우리나라의 발전 프로젝트 관행과 PF의 요건이 서로 잘 안 맞는다. 향후로도 PF 방식으로 계속해서 금융이 이루어질지에 대하여 의문이다”라고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19) 1860년대 배럴이 42갤런의 표준단위가 된 직후 Standard Oil Company가 42갤런짜리 용기를 최초로 제작하였는데, 다른 용기와 구분하기 위하여 통에 파란색(blue) 페인트를 칠하였습니다. 이 파란색 통(blue barrel)으로 석유 거래가 이루어지면서 barrel의 약자가 bbl이 된 것입니다. (「Oil & Gas Production in Nontechnical Language」, Martin S.Raymond, William L.Leffler)


20) 초창기 미국 원유 채굴업자들은 원유를 포도주통 등에 담아 마차로 운반하였습니다. 그러나 산유국이 아닌 경우 원유를 배에 실어 수입하여야 하므로, 배가 가라앉는 등의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맞이하지 않으려면 무게를 잘 측정하여야 했기 때문입니다. (「Petroleum Refining」, William L.Leffler)


21) OECD가 발간한 ‘Ex-Ante Guidance for Tied Aid’는 전국 전력망에 연결되는 사업은 기본적으로 상업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Article 8. a) Power Projects (Electricity)) 그러나, 과연 전후 복구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규정을 이렇게 해석하여야 할까요?


22) 애들 저녁밥 지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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